서울 증시에서 또다시 내부정보 유출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사의 제휴 사실이 발표일 훨씬
전부터 증권가에 파다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한 국회의원이 국가 현안에
대한 비공식 브리핑에서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제휴내지는 합병 사실을
언급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하이닉스 주가는 강세를 보였다. 일부에서는
하이닉스와 협상을 벌이기 위해 마이크론 관계자가 방한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제휴설은 결국 합병설까지 발전했고, 하이닉스는 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에 대해 "합병은 사실무근"이라는 답변 공시를 냈다. 하이닉스
주가는 이내 하락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불과 열흘만에 제휴 소문이 결국 사실로 확인되자 투자자들은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됐다. 한 개인투자자는 언론사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조회공시의 의미를 넓게 해석한다면 최소한
'제휴관계를 검토중'이라는 언급 정도는 있었어야 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하이닉스측은 "공시를 낼 당시엔 채권단이나 구조조정특별위원회와 전혀
의견을 나누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정도의 대규모
제휴시도라면 업무연락에만도 최소한 한달 이상 걸린다는게
증시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업의 내부정보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보력이 떨어지는 개인투자자들만
당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정보없이 하이닉스 주식을 거래한
250만명의 개인투자자들만 '눈가리고' 투자한 셈이라는 얘기다.

◆ 꼬리를 무는 내부정보 유출 의혹 =하이닉스반도체 건 이전에도 기업
내부정보 유출 의혹은 끊이질 않고 있다.

LG전자가 지난 11월15일 발표했던 기업분할 정보도 사전유출 의혹에
휩싸였다. LG전자가 지주회사인 LGEI와 사업 자회사인 LG전자로
분할한다는 정보가 발표 전주부터 일부 외국인투자자들에게 누출됐고,
이에따라 외국인들이 대거 선취매에 나섰다는 루머가 증권가에 나돌았다.
실제로 외국인들은 발표 직전에 집중적으로 LG전자 주식을 사들였고,
발표 직후인 16일과 19일엔 LG전자 주식을 대거 매도했다.

그러나 LG전자 전명우 부장은 "분할 주간사(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를
제외하고는 분할정보를 먼저 알려준 사실이 전혀 없으며,
살로먼스미스바니와도 비밀유지 협정을 체결해 놓았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밖에 일본 아사히글래스 지분을 유치한 전기초자나 골드만삭스의
투자를 받은 국민은행의 경우에도 외국자본 유치 사실이 외국인 투자자를
비롯한 일부 투자자들에게 미리 새나갔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내부정보 유출문제는 비단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1월에 있었던
S&P의 한국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 때에도 일부 외국인에게 사전정보가
누출됐다는 의심의 눈길이 쏠렸었다.

◆ 공정하게 정보 공개해야 =내부정보 유출 의혹이 계속될수록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투자자들의 몫일 수 밖에 없다. 정보력이 떨어지는
개인들이 뒤늦게 정보를 접하고 주식을 사기

시작한다면 미리부터 알고 주식을 사모은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의
이익실현 물량을 받아내는 역할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보가 곧
돈'이라는 증시에서 정보가 특정 집단에게만 유리하게 유통된다면,
공정한 게임의 룰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고려대 경영학과 조명현
교수는 "강의 본류를 억지로 막으면 지류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의 비밀주의와 은폐주의가 내부 정보를 밖으로 왜곡
유출시켜 투기꾼을 길러내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런 불공정게임을 막기 위해선 작년 10월부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도입한 '공정 정보공개 법안(Regulation Fair
Disclosure:FD)'을 국내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FD란 모든 기업
정보를 모든 투자자에게 공정하게 공개하는 것을 의무화한 법안이다.

FD에 따르면, 기업이 내부정보를 특정인에게 알렸을 경우 즉각 공시를
통해 모든 투자자에게 같은 내용을 실시간으로 공개해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 현상을 제도적으로 차단한 획기적인 조치다. FD가 효과적으로
가동되면 기업은 자사 정보를 개인투자자·애널리스트·펀드매니저들에게
같은 시간에 공개해야만 한다. 기업이 FD법안을 어길 경우, 벌금을
물어야 한다. 리젠트증권 김경신 상무는 "미국처럼 일괄적인 시행은
어렵더라도 FD의 정신을 살릴 수 있는 과도적 조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하는 IR(기업설명회)을
열기 전에 언론을 통해 관련 자료를 미리 배포하도록 한다든지, 인터넷을
활용한 직접공시 제도를 도입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일반투자자들의
정보 접근 통로를 넓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자들 자신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거짓말을 하거나 말을
바꾸는 기업에 대해서는 소송과 집단적인 주식 불매운동을 통해 이를
응징해야 한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경영 내용이 불투명한 기업이나
투자자들을 무시하는 기업의 주식은 아예 거들떠 보지 않는 투자의 기본
자세부터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의 퍼스트유니온 은행은 지난 99년 실적 전망을 제때에 수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투자자들에게서 거액의 소송을 당했다.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이를 뒤늦게 수정한 시기까지의 투자 손실액을 모두 배상하라는
요구였다. 금융전문컨설팅사인 월스트리트컨설팅그룹 로이홍 대표는
"미국 기업들은 소송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수시로 투자자들과 직간접
대화를 나눈다"고 밝혔다. IR이나 컨퍼런스콜(전화회의) 같은 정보공개
노력은 회사가 투자자에게 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투자자들에게 기업
내용을 정확히 알려주는 최소한의 '의무'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