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산업으로 불리던 전당포가 대형화 ·고급화로 생존전략을 다지고 있다.전당포의 상징이던 두꺼운 철문과 철책이 쳐진 조그만 창문은 옛날 이야기다.최근 신형 전당포는 백화점 매장을 연상케 한다.단순 대출업무 외에,전당물로 흘러나온 고가 중고 명품 판매를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사진은 강남구 대치동의 전당포'캐시캐시 '의 매장.


회사원 김모(여·32)씨는 요즘 핸드백이나 보석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가는 대신, 전당포에 들른다. 김씨는 카페 같은 분위기의 전당포에서
차를 마시며, 거의 새것과 같은 중고 물품을 싼 값에 마련하고 있다. 이
곳에서 김씨는 58만원짜리 프라다 핸드백을 30만원에 구입했다. 뿐만
아니라 김씨는 이 핸드백을 구입했던 사람이 가지고 있던 '정품 표시
증서'도 함께 받았다.

김씨가 이용하는 전당포는 대출 업무 외에, 채무자들이 돈을 갚지 못해
담보로 잡은 물건과 중고 명품을 판매하고 있다. 김씨는 다음달 남편의
생일에는 '로렉스' 손목시계도 시가의 절반 가격에 장만할 계획이다.

전당포가 변하고 있다. 기존의 '교도소 철창' 같은 철문을 없애고,
카페 분위기로 변한 전당포도 등장했다. 카지노 도박장인 강원랜드
주변의 전당포들은 친숙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사무실 앞에 풍선을
달아놓았을 정도다. 온라인으로만 대출 업무를 처리하는 '닷컴
전당포', 고객에게 직접 '찾아가는' 전당포도 등장했다. 전당포도
시대에 맞춰 체질 개선 작업에 들어간 셈이다.

◆ 카페형 전당포 등장 =지난 4월 강남구 대치동에 문을 연
'캐시캐시'는 다이아몬드·고급 시계 등을 담보로 수십만~수백만원의
현금을 빌려준다. 대출 업무 외에도 중고 명품을 위탁 판매하고 있다. 이
곳은 내부 디자인을 갖가지 보석과 핸드백을 전시한 고급 명품숍처럼
꾸몄다. 반면, 주업무인 대출을 하기 위한 방은 출입문 가까이 구석에
만들었다. 사람들이 물건을 구경하는 '척' 하다 대출실로 들어갈 수
있게 동선을 설계한 것. 캐시캐시의 김태희 사장은 "대출자들의
대부분이 원래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단기 유동성'이 부족한 (잠시
급전이 필요해진) 신용카드 연체자나 자영업자, 주부들"이라며 "대출
받는 것을 쑥스러워하지 않도록 설계에 신경썼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대출과 중고 명품 판매로 벌어들이는 금액은 매달 1억5000만원
정도. 이 중 물품 판매가 1억원 가량을 차지한다. 김 사장은 "명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대출 보다는 물품 판매가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아예 채무자들과 고객들로부터 매입한
'로렉스 시계'를 이용해 '로렉스 전문 쇼핑몰'도 열 계획이다.

7년 전 설립된 강서전당포(www.ksjundangpo.com)는 최근 웹사이트를 열고
새 옷을 갈아입었다. 인터넷에서 감정가(감정가)와 이용방법을 확인 후,
직접 전당포를 방문해 대출받도록 했다. 예를 들어
시계·귀금속·모피·악기·카메라·노트북PC·자동차 중 한 코너를
선택하고, '의뢰·신청하기' 버튼을 눌러 이메일을 보내면 감정가를
알려준다.

자칭 '닷컴기업'인 국제전당포닷컴(www.kukjepawnshop.com)은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이 웹사이트를 보고 이메일로 대출
상담을 하면, 직원이 고객에게 직접 찾아가 그 자리에서 대출 여부를
판단한 후, 바로 돈을 빌려준다. 물건을 맡긴 후 찾아가지 않은 제품은
게시판에 공매로 올려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최신형 티뷰론
자동차가 1200만원에 공매에 올라있다.

◆ 미국·일본에서도 변신 바람 =현재 국내에 영업중인 전당포는 500여개
수준. 10년 전에 비해 3분의 1로 숫자가 줄었다. 신용카드가 보급되며
전당포 이용객들이 '현금 인출기'로 옮겼기 때문이다. 또한 할부금융과
일본계 사채업자가 앞다퉈 실시중인 '소액 신용대출'도 전당포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전당포는 3평 남짓한 규모에 금반지·카메라 등을
담보로 소액 장사를 하고 있다. 여의도 한신사 전당포 관계자는 "금반지
하나 맡기고 10만원 빌려 가는 사람이 일주일에 2명 정도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70년대 물건을 담보로 잡아 돈을 빌려주는 '대물
신용'이 사람의 신용도를 중심으로 돈을 빌려주는 '대인
신용'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전당포업도 쇠퇴, 많은 전당포들이
'소비자 금융업'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최근 20~30대 여성이
전당포에 고가의 물품을 맡기거나 이를 통해 물품을 구입하면서 오히려
전당포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현재 일본의 전당포수는 1500여개로,
전당포 1개 당 연간 3억엔(약 32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중
대출이 1억엔, 중고품 판매가 2억엔 정도다. 일본에서는 정기적으로
전국의 전당포가 학교 운동장 등을 빌려 중고품 벼룩시장을 열기도 한다.

미국의 전당포(pawn shop)는 뉴욕 증시와 나스닥에 상장할 만큼
대형화됐다. 미국 최대의 전당포 체인인 '캐시 아메리카 인터내셔녈'는
미국내 15개 주를 포함, 영국·스웨덴에 약 500개의 지점을 갖고 있다.
리젠트증권의 김경신 상무는 "장기불황으로 인해 전당포와 소비자
금융이 활성화되고, 명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이 일본과 닮아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