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주식시장의 닛케이 지수가 지난주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1만2000엔선을 깨고 16년 전 수준으로 내려 앉았다. 미국
IT(정보기술)산업의 경영 악화가 기폭제로 작용했였지만, 더 근본적
원인은 '고이즈미 개혁'의 밑천이 드러났다는 우려감
때문이다.
요즘 발표되는 각종 지표는 일본경제의 침체를 입체적으로 웅변한다.
경기동행지수가 5개월 연속 50%를 밑돌고 있고, 월별 반도체
수출량은 지난 1년새 36% 감소했다. 일본은행이 최근 발표한 7월
'단칸'(기업단기경제관측조사)도 수급판단 지수와 가격판단 지수
모두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요즘 일본 경제는 구조개혁과 경기부양의 갈림길 앞에서 고민하는
「환자」와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석 달 전 출범한 고이즈미
정권은 '성역없는 구조개혁'을 내걸었다. 그 자체는 올바른 방향
선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일본 경제가 경기 하강으로 기력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엔 실업이나 기업실적 악화 같은 통증이 수반되고, 경기침체 속에선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잃어버린 10년' 동안 시늉만
내온 구조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다. 개혁과 경기부양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셈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타협없는 구조개혁을 선택했다. 애초부터 '두마리
토끼'를 쫓는 게임은 포기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개혁없이
성장없다"는 슬로건으로 구조개혁을 천명했고, 재정 자금을 쏟아붓는
경기부양은 하지 않겠다며 "2~3년간 고통을 참자"고 호소했다.
1990년대 장기 불황 중 일본 정부가 즐겨 쓴 것은 재정 자극형
거시정책이었다. 공공사업으로 경기만 살리면, 부실채권·과잉설비 등의
구조적 문제도 자연 치유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병폐는 갈수록
심각해졌고, 재정적자는 어느덧 선진국 중 최악 수준이 됐다.
이런 전통적인 수법은 고이즈미의 경제운용 계획에는 들어있지 않다.
오히려 향후 2~3년을 '집중 조정기'로 설정, 일시적 저성장도 감수할
생각임을 밝혔다. ▲2~3년 내 부실채권 완전 정리 ▲신규 국채발행 규모
삭감 ▲공공법인 민영화와 규제완화 등이 중점 과제로 제시됐다.
처음엔 시장도 고이즈미 개혁에 호감을 보이는 듯했다. 정권 출범 직후
외국 투자자들 사이에 일본주 매입 열풍이 불어, 주가는 한때
1만4500엔대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상승세는 2주일도 못가 꺾였고, 5월
초 이후 하락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주가하락은 고이즈미 개혁의 앞날이 험난하다는 시장의 경고음이다.
그의 개혁노선은 자민당 내부에서 강력한 저항을 받고 있고, 개혁
프로그램을 착착 실행할 만큼 리더십이 확고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작년
여름 정점을 친 일본 경제는 디플레(물가하락을 동반한 극도의 경기침체)
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구조개혁에 나설 경우 앞으로 몇 년은 '제로 성장'이
불가피하다는 게 분석가들의 전망이다. 일본 종합연구소는 실업자가
흡수되지 않으면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위기감을 느낀 일본 정부는 이달 초 G8(선진7개국+러시아) 재무장관
회의에서 "제로 성장은 막겠다"고 공약했다. 올 가을 ▲주택건설 규제
완화 ▲광 섬유망 부설 ▲도시 재생 프로그램 등을 골자로 한 경제 활성화
대책을 내겠다면서, 경기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고이즈미가 조종간을 잡은 일본 경제는 현재 시계 불량의 악천후
속에서 구조개혁의 난기류 비행을 하고 있는 모습하다.
( 동경=박정훈특파원 jh-park@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