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주라고요? 제가 보기엔 '저배당 실적주'에 불과합니다.
주주에게 배당도 해주지 않는 주식에 무슨 투자가치가 있다는
말입니까."

A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증권사들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가치주
테마'를 한마디로 일축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대표적인 가치주로 손꼽히는 롯데삼강의 경우 작년
한해동안 자본금(63억원)의 3배가 넘는 22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지만, 보통주 배당금은 주당 650원(액면가 기준 13%)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장사를 해서 거둔 수익을 회사안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고
해서 기업가치가 뛰어난 주식은 아니라는 논리다.

가치주(value stock) 논쟁이 여의도 증권가를 달구고 있다. 일부
증권사들은 지루한 박스권 장세가 이어지자 '가치주'라는 테마를 발굴,
증시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가치주란
증권사들의 장삿속에서 나온 사이비 테마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 '가치주' 목청 높이는 증권사들 =최근 증권사들의 데일리(일일
시황정보지)를 보면 온통 '가치주'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증권사들은
주가가 좀처럼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재 증시상황 속에서
'가치주' 투자가 안정적인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유용한
투자전략이라고 앞다퉈 소개하고 있다.

'가치주'는 원래 90년대 후반 이후 '성장주' 혹은 '기술주'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나온 말이다. 성장주가 기업의 현재가치보다는 미래의
성장가능성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주식이라면, 가치주는 현재의
기업가치, 즉 자산이나 수익가치가 높은 주식을 가리킨다.

가치주는 지난 5월10일 J.P 모건이 "향후 아시아시장에서는 가치주들이
증시 전체의 시장수익률을 상회하는 종목군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시장분석자료를 내면서 증권가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어 대우증권이 대한항공 현대미포조선 코오롱 등 10개 종목을 유망
가치주로 소개하고 가치주에 집중 투자하는 개방형 뮤추얼펀드 '밸류
파인더(Value Finder)1호'까지 내놓으면서 가치주 테마에 불을 붙였다.
뒤를 이어 현대·교보·동양·신한증권이 잇달아 유망 가치주를 선정
소개했다. 증권사들의 '가치주 띄우기'에 힙입어 거래소시장의
롯데삼강·신세계·농심·태평양·신도리코, 코스닥시장의
삼영열기·국순당·국민카드·LG홈쇼핑·좋은사람들 같은 종목들의
주가가 6월 이후 10~40%씩 급등했다.

◆ 가치주에 대한 비판 = '가치주'가 실제로 급등세를 타고는 있지만,
비판적인 의견도 많다. 우선 이런 종목들이 진정한 가치주인지 불확실할
뿐 아니라, 주가가 계속 오를 것 같지도 않다는 의견이다. 비판론자들은
우선 증권사들이 유망 가치주로 소개하는 종목들이 실제 기업가치가 높은
'가치주'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리젠트증권 김경신 상무는 "가치주가 원래 성장주나 기술주의 반대
개념으로 만들어진 말이기 때문에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증권사들이 내놓는 종목들은 가치주라기보다는
'경기와 관계없이 꾸준한 실적을 내고 있는 업종대표주' 정도로
이해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대형주 시세가 부진하고
종목별 장세가 전개되고 있는 와중에 코스닥이나 거래소시장의 실적호전
중소형주를 '가치주'라는 말로 포장한 데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뉴욕타임스에도 소개된 미국의 자산운용사 '케인 앤더슨 러닉'의
가치주 펀드 운용사례는 국내 증권사들의 가치주 테마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케인 앤더슨 러닉'의 경우 가치주를
발굴하기 위해 철저히 상향식(bottom-up) 투자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회사는 8000개 미국 기업 중 지속적으로 매출과 수익을 내고 있는 기업을
가려낸 뒤, 지난 10년간 산업 평균보다 높은 실적을 기록하는 기업들로
투자종목군(basket)을 선정한다. 이 종목군중에서 펀드매니저가
PER(주가수익비율)등의 평가모델을 적용, 저평가돼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에 집중적으로 장기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증권사들은 하루 이틀만에 일정한 PER나
PBR(주당순자산비율) 기준에 맞춰 종목군을 선정, 발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경우 가치주는 장기투자보다는 단타매매 대상 종목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증권사 데일리에는 '이미 오른
가치주를 팔아 이익을 실현하고 다른 가치주를 사들여라'는 식의
투자전략이 버젓이 실려 있다.

가치주의 주가가 급등한 실제 원인은 외국인이나 기관의 매수세에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6월 들어 주가가 급등했던 코스닥시장의
국순당은 외국인 매수세가 사라지면서 18, 19일 이틀 연속 큰 폭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또 가치주로 불리는 주식들이 대부분 발행주식 수
100만~200만주 사이의 중소형주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수급논리에
의해 주가가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화증권 박시진 투자전략팀장은 "가치주 투자가 저평가된 기업가치를
보고 주식을 사들이는 장기투자보다는 지루한 박스권 장세에서 단기상승
종목을 쫓아가는 투자전략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