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해봐야…"뭉칫돈 방황, 투기등급 社債까지 매입
서울 구의동의 주부 정모(39)씨는 초등학교 5·6학년인 두 아들을
데리고 곧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남편은 서울에 남아 본가로 들어간다.
"아이들을 미국에서 대학까지 입학시킨 후 돌아오겠다"는 게 정씨의
계획.
정씨 가족을 갈라놓은 것은 저금리와 고교육비다. 정씨는 "3억원의
여유자금을 굴리면 노후 자금과 애들 결혼 후 전셋값 대기에는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질금리가 1%도 안돼 원금 보전도 힘들어졌다"며
"영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영어 교육비도 덩달아 뛰고 있어 차라리
집을 팔고 미국으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가족의 별거'를 지불하고 '적극적 재테크'를 택했다.
정씨는 집을 판 돈과 여유자금을 합친 7억원으로 강남의 한 아파트
분양권(3억원), 재개발 아파트(2억원), 개포동 재건축 아파트(2억원)에
분산 투자했다. 미국에서는 일단 친척집에 얹혀 살 예정이고, 본가로
들어가 비용 지출이 줄어든 남편이 월급을 쪼개 생활·교육비를
보내준다. 정씨는 "한국에서 원금 헐어가며 공부시키기보다 미국에 가서
'더 우수한 영어'를 '더 싸게' 교육시키는 것이 낫다"며 "7~8년 후
돌아오면 큰 집과 여유로운 목돈이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춘수 조흥은행 재테크팀장은 "인생을 바꾼데 따른 희생이 얼마나
큰지는 계산하기 힘들지만, 재테크만 놓고보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평했다.
저금리 시대가 열리면서 사회 풍속도가 급속히 변하고 있다. 김우희
부동산뱅크 편집장은 "낮은 금리 때문에 집까지 팔고 부동산에 자금을
넣은 후 이민갔다 오겠다는 상담이 요사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창업이나 부업에 대한 관심도 높다. S건설사 김모(38) 과장은 30대
후반~40대 초반인 회사 선후배 9명과 함께 공동창업을 위한 '세미나'를
1~2주일에 한번씩 퇴근길에 갖고 있다. 건설현장에 주로 나가있는 이들은
현장 부근의 음식점 동향 등을 조사하고, 세미나에서는 상권 분석,
법률·세무 정보 등의 주제 발표를 한다.
김 과장은 "각자 모은 돈이 1억원씩은 있지만 은행에 넣어두면 생활에
도움이 안돼 확실한 아이템으로 공동창업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부인들도 적극 호응해 3명은 제과사·조리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고, 1명은 경험을 쌓기 위해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이경희 소장은 "과거에는 주요 상담객이 1억원
이하의 투자금을 들고온 생계형 창업 희망자였다"며 "금리가 낮아지자
최근에는 수억원대의 목돈을 들고와 '은행 이자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오는 창업을 하고 싶다'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새로운 현상. 3월의
경마 1일 평균 입장 인원은 13만4400여명으로, 작년 동기의
12만4500여명보다 1만명 가량 증가했다. 특히 1인당 마권 구입액은 작년
3월의 35만1600원에서 41만2300원으로 17%나 늘었다. 경륜도 마찬가지.
또 서울 서초동 법원의 부동산 경매 법정은 '장'이 설 때마다
300여명의 사람들로 넘쳐난다. 서울·수도권의 각 법원 경매에서 웬만한
물건은 두번째 기일까지 다 소화되고, 과거와 달리 30명 이상 입찰하는
경우도 자주 생긴다. 증시에서도 '도박'성이 강한 '주가지수 선물'
시장에 개인들이 많이 몰린다. 지난해 9월까지 40%선이었던 선물
시장에서의 개인 비중은 지난해 말 이후 50~60%선으로 높아졌다. 또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투기등급인 BBB 등급의 회사채나 어음을
매입하려는 개인 투자자들이 꽤 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창업이나 과감한 투자를 할 여력이 없는 노년층에게
저금리는 큰 타격이다. 한상언 신한은행 재테크팀장은 "정기예금
이자만으로 생활이 어려워진 노인들이 원금이라도 타기 위해 해약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며 "또 원금의 일정액과 이자를 같이 지급하는
상품에 대해 노년층을 중심으로 문의가 많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