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380여개 모은 'n-club' 결성과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성공으로 '안목' 확인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 영화 제작에
투자한 국내 최대 벤처캐피털 'KTB네트워크(network)'에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영화 제작에 7억원을 투자한 KTB네트워크는
'공동 제작자' 타이틀을 얻는 것과 함께 총수익의 10.2%를 배당받기로
돼 있어 '쉬리'가 올린 흥행 기록만 달성해도 투자 금액만큼을
벌어들이게 된다. 이 회사 권성문(39) 사장은 이번 투자로 다시
한번 벤처투자의 대부임을 확인케 했다.
권 사장의 영상사업 투자는 자신의 취미와도 관련이 있다. 권 사장은
대구 오성중과 심인고를 다닐 때부터 영화광이었다고 한다. "어떤
영화가 보고 싶으면 그 영화를 볼 때까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게 본인 설명이다. 개봉 영화를 보려고 학교 수업을
빼먹고 극장으로 달려간 적도 많아 그의 학적부에는 유달리 결석
일수가 많다고 한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연간 400편이 넘는 영화를
본 적도 있으며, 영화 전문 HBO 채널 등을 켜놓고 하루종일 8편의
영화를 감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개인적 성향과 안목이 JSA에
대한 투자를 결정한 원천이 됐다.
"국내 연간 영화 제작 비즈니스가 1000억~1500억원 규모라면
그중에서 저희가 300억원 정도를 투자하고 있습니다. 가장 비중이
큰 편입니다. 영상산업은 가장 벤처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어
앞으로도 좋은 영화를 골라 계속 투자를 해나갈 것입니다."
●벤처 투자 지속적으로 늘려
벤처업계가 최근 전반적으로 불황이라지만 KTB네트워크만은 벤처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최근 코스닥시장이 무너지는 가운데도
지난 6월 25개 업체에 신규 투자한데 이어 지난 7~8월에도 25개 업체에
투자했다. 올 들어 현재까지 투자한 업체만 모두 229개나 된다. 특히
단순한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자가 아니라 '한번 투자한 유망
벤처업체는 요람(창업)에서부터 무덤(코스닥 등록)까지 지원한다'라는
경영 방침이라든지 'KTB네트워크가 투자한 기업은 품질이 보증됩니다'란
광고 문구에서 보듯 투자 이후 지원과 컨설팅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강점. 회사 이름에 '네트워크'란 단어가 붙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KTB네트워크의 전신은 1981년 설립된 한국종합기술금융(KTB).
이 회사는 IMF 이후 발생한 금융 사고로 1800억원의 손실을 입고
재무건전성이 크게 악화돼 있었다. 정부는 98년 7월 한국종합기술금융의
완전 민영화를 결정했고 정부투자 지분을 장외시장에서 공개 입찰, 결국
99년 2월 권성문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주)미래와사람에 정부지분
10.2%를 넘겼다. 올 3월에는 회사 이름도 한국종합기술금융에서
KTB네트워크로 바뀌었다. 회사 이름은 국제화 차원에서 반드시 영어로
표기하고 있다.
회사는 민영화되면서 급격히 달라졌다고 한다.
권오용 상무는 "우리 회사는 99년부터 순이익이 급증하고 있어
공기업의 민영화 성공사례로 꼽힐 만하다"며 "민영화 초기에
임직원 급여를 20~30% 줄이고 출근시간을 9시에서 8시로 앞당겼으며
초과근무수당을 폐지하는 등 민간 회사가 됐다는 점을 직원들에게
인식시키면서 제대로 된 민간기업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벤처업계는 KTB네트워크로부터 자유로운 기업이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코스닥 벤처기업의 4분의 1이 이
회사가 투자한 기업들이고, 미래산업과 메디슨 등 거래소 상장
업체에도 투자를 하여 수익을 거두었다. 미국 나스닥 상장사 가운데는
자일랜과 소너스를 비롯한 14개 기업에 투자했다.
KTB네트워크 전체의 투자 규모는 98년에 233억원(24건)에 그쳤으나
지난해는 1630억원(99건)으로 급증했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벌써
3564억원(208건)의 투자를 집행했다. 올 한해 투자 예정 규모는
모두 7000억원 정도. 대략 국내 벤처 캐피털업계에서 22%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회사측은 앞으로 성장 기반은 우수하지만 일시적인 자금 경색 등으로
부실화된 기업에다 긴급 자금을 투입,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기업구조조정
투자도 주력할 예정이다. 지난 83년 국내 최초로 미국 벤처펀드에
투자하는 등 해외투자 역사도 긴 편이다. 회사 자체의 덩치도 단연
국내 최고다. 자기자본 7504억원, 총자산 2조1806억원, 올 상반기
순이익 2021억원 등으로 거대한 외형을 자랑한다.
따라서 투자자들이 모두 움츠리고 있는 요즘 국내 벤처업계는
KTB네트워크의 동향과 권성문 사장의 경영전략에 바짝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KTB네트워크는 공인회계사와 MBA 등 내로라 하는 250여명의
전문가들이 투자 업무를 맡고 있는데 이들은 안전성과 수익성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올 6월 현재 정보통신(38%)
인터넷(19%) 소프트웨어(10%) 화학(6%) 기계(6%) 반도체(5%)의
순으로 투자하고 있다. 물론 여러 단계의 엄격한 투자적격 심사를
거친다.
회사측은 최근 투자 회사들의 모임인 'KTB n-club'도 결성했다.
회원 업체는 380여개. KTB네트워크를 축으로 온라인 교류까지도
가능하도록 만든 벤처 커뮤니티다. 이들은 '북한 투자도 거대한
벤처사업'이라며 남북 협력사업을 위한 공동 수요 조사를 벌이기도
했고 회원업체끼리는 제품 및 서비스의 할인도 해줄 예정이다.
최근엔 n-club이 더 세분되어 'Arc'(아크)란 이름의 소모임들이
생겨나 전자·인터넷·화학생명·기계·엔터테인먼트 등 분야별로
네트워크를 이루며 공동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KTB네트워크
관계자는 "나중에는 우리 회사가 없더라도 회원사끼리 자율적인
중재와 M&A를 통해 시너지효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n클럽의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원래 권성문 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 삼성물산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다 미국에 유학가서 당시 붐을 이루던 기업
인수·합병(M&A) 분야를 전공한 것이 이 분야에 몸담게 된 계기가
됐다. 귀국 후 동부그룹과 한국종금에서 M&A업무를 담당하다 지난
95년 한국M&A라는 전문회사를 세웠다. 이후 봉제업체인 군자산업을
인수, 미래와사람으로 이름을 바꾸고 벤처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으며
IMF 이후 KTB네트워크를 인수하게 됐다. 젊은 나이에 짧은 기간
급성장한 권 사장은 교육부 차관과 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을 지낸
이영탁(53)씨를 최근 대표이사 회장으로 영입, 그의 경륜을 활용하고
있다.
권 사장은 "요즈음 벤처업계가 어렵다고 해서 걱정이 많다. 하지만
한국인의 독특한 성격에 비추어 벤처업계가 한국인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우리나라에서 벤처문화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청산과 합병이 적극적으로 일어나 M&A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년 상반기까지 M&A가 쉽게 되는 문화가
정착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우리 벤처산업의 성공이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벤처 투자가 성공하려면 "기다릴 줄 아는 문화도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기업 사냥꾼 아닌 경영인'
최근 KTB네트워크와 권성문 사장은 여러 가지 악재로 곤혹을 치러야
했다. 동원증권과는 적대적 M&A 시비에 시달렸고, 지난 98년에 있었던
'냉각캔 주가 조작사건'은 무혐의 처리되긴 했지만 기업 이미지를
훼손당한 것이 사실. 이 모든 사건들이 권 사장이 적극적인 벤처
투자에 나서다 보니 오해와 질시가 겹쳐서 발생했다는 것이
KTB네트워크측의 설명이다.
권 사장은 "우리는 적대적 M&A를 시도한 적이 없다"면서 "96년
이후엔 M&A 관련 업무를 한 적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남을 한 마디로
규정하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나를 '기업 사냥꾼'이라고 부르는데
전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M&A의 귀재' '기업
사냥꾼' '금융계의 풍운아'니 하는 부정확한 표현보다는 그냥
'경영자'로 불러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KTB네트워크는 최근 평양교예단 공연을 주최하는가 하면 100억원을
출연하여 '아이들과 미래'라는 사회복지법인을 세워 복지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특히 '아이들과 미래'는 손봉호 서울대 교수가
책임을 맡고 있는데 출연한 사람이 전혀 간섭할 수 없도록 재단이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