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여행을 하다가 젖은 휴지를 말리는 곳이 나타나면 그 곳이 바로
네덜란드다." 유럽인들조차 네덜란드 사람들의 근면·검소함에 혀를
내두르면서 하는 소리다.

네덜란드는 '따로따로 계산'이라는 의미의 '더치페이(Dutch Payment,
정확하게는 Dutch Treatment)'의 원조다. 더치(Dutch)는 '네덜란드
사람'이란 뜻.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에 기자를 마중나온 암스테르담
무역관 슈워드 오리(27)씨. 손을 흔들어 '반갑다'는 수인사를 마친 후 곧바로
지하철로 안내한다.

짐이 많아 "택시가 좋겠다"고 했더니 "지하철이 싸고 더 좋다"고

매표소로 끌고 갔다. 그러더니 자기 표만 살짝 끊고 손님(?) 표는 안중에도

없다. 할 수 없이 잠시 기다리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지폐를 꺼내 표를

끊을 수밖에…. 며칠 후 '손님표를 왜 안 끊어 주었느냐"고 묻자 "손님

마중은 정신적인 예우이지 돈과는 상관없다"라는 답이 나왔다. 한국인이

현지인들과 식사 후 한꺼번에 돈을 치르면 문 밖으로 나와 돈을 거둬주는 통에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현지 한국주재원들의 얘기다.

'더치 페이' 전통은 '물 한 방울이라도 아끼겠다'는 근검절약의 정신에서
나온 것. 대표적인 게 화장실문화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시내에서 가장 즐겨 찾는 곳이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다.
이유는 무료화장실이 있기 때문. 대형건물은 물론이고 '고객서비스'가 생명인
백화점들도 0.5길더씩 화장실 사용료를 받는다. 암스테르담의 유명 관광지인
'풍차마을(Zaanse Schans)'. 이곳 화장실은 선진국답지 않게 모두 유료다.
한번 사용에 1길더(500원 정도)를 내야 한다. "화장실 유지비용마저 최대한
줄이겠다는 절약정신 때문이지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송병옥 부관장의
설명.

네덜란드인들에게 동전지갑은 필수 지참물이다. 동전 한닢까지 반드시 계산을
하기 때문. 화폐단위도 유별나게 많다. 동전이 6가지(5·10·25센트,
1·2.5·5길더)에 지폐는 5가지(10·25·100·250·1000길더). 1000길더
(50만원)짜리 고액권은 '수령거부'하는 상점이 많을 정도로 안 쓰이고
푼돈인 5센트, 지폐로는 1길더짜리가 가장 즐겨 사용되는 화폐 단위다.

네덜란드인들의 근면·검소함은 어렸을 적부터 몸에 밴 것으로 유명하다. 4월
30일은 네덜란드 국왕의 생일. '국가 공휴일'인 이 날은 초등학교 학생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날이다. 모든 상점은 철시하고 대신 초등학생들은 안 쓰는
물건을 가지고 나와 어른들에게 팔아 자신의 용돈을 마련한다. 아침부터 학교
인근이나 암스테르담 중심가의 '본델공원(Vondel Park)' 앞에는 목좋은 곳을
찾으려고 치열한 신경전을 펼친다.

"이웃집 아저씨라고 인심좋게 사주는 어른도 없고, 먼저 팔겠다고 헐값에
덤핑하는 아이들도 없어요. 흥정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장사꾼(?)입니다"
(이종호 KOTRA 관장).

초등학생들은 이어서 중학생 때 신문배달부로, 고등학생 때는 수퍼마켓
종업원으로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다. "대학교 이후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까지 방학 때나 휴가 때 외국여행을 다니지만 학생 때는 현지
아르바이트로, 지금은 텐트 치고 직접 요리하는 짠돌이 전략으로 돈을 거의
안 써요." 현지인 슈워드씨의 얘기다. 여행 때 돈을 안 쓰다 보니 인근
유럽국가 비즈니스맨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네덜란드 학생들이라고.

고등학교 의무교육 후 대부분 독립하는데 만일 집에 남게 될 경우 생활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만일 부모가 생활비를 요구하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최고의 부모라고 자랑한다고 합니다"(현대상선 로테르담 최홍원 지점장).
다소 과장(?)섞인 얘기지만 대체로 사실이다.

학생들 생일잔치도 검소하기 이를데 없다. 최 지점장은 "생일을 맞은 아이가
새우깡 같은 과자 서너 봉지를 학교에 갖고 가 친구들과 나눠먹는 게
끝"이라고 말했다. 직장에서도 생일을 맞은 직원이 케이크를 돌리고 동료들은
1000원씩 거둬 꽃다발을 안기면 만족스러운 생일 파티다.

네덜란드는 "골프 티샷 때 훅(Hook)이 나면 독일 땅이고, 슬라이스(Slice)가
나면 벨기에에서 공을 찾아야 한다"고 할 정도로 좁은 나라. 하지만 '근면
절약'으로 유럽 5위의 무역강대국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 암스테르담(네덜란드)=이광회기자 / santaf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