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 2만2000원 수준이라면 모를까 아직 살 때가 아닌데요. 좀더 지켜봅시다. 아! 잠깐만요.
전화가 왔네요." "네, 000씨세요. 조금 덜 벌고 지금 파시는 게…."

서울 명동 한복판에 있는 5평 남짓한 한 재테크 사무소의 소장이 전화 통화하는 내용이다.
여의도 증권사를 그대로 명동으로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

명동 사채시장이 지난해 코스닥시장 붐을 타면서 최근 들어서는 벤처사업가들의 자금줄로
급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사채업자들은 거래과정이 불투명한 장외거래를 이용해 주가를 한껏 띄워놓고

빠지는 수법으로 선의의 피해자를 유발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명동이

전통 사채업과 벤처투자 사이에서 명암을 드러내고 있다는 얘기다.

명동 사채시장에서만 20여 년간 잔뼈가 굵은 A씨는 매일 아침 케이블TV를 통해 미국
나스닥시장 시황을 놓치지 않고 챙긴다. 그리고 출근과 동시에 국내 증권사나 투신사의
애널리스트에게 전화를 걸어 최신 정보를 주고받는다. 직원들 앞에는 최신형 개인용
컴퓨터가 한 대씩 놓여 있고 직원들은 각기 장외주식거래를 볼 수 있는 사이트를 나눠 맡아
관심종목의 거래가격 동향을 세밀히 살핀다.

전통 사채거래만 하는 업자는 점점 줄고 사업설명서를 들고 명동을 드나드는 벤처사업가를
접하거나 장외종목 주식투자를 원하는 소액투자자를 연결해주는 업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이후 '~콤', '~텍'이란 이름을 단 이른바 인터넷 벤처사업가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던 곳이 바로 명동. 어디라 말할 수 없지만 명동에서 돈줄을 찾아 장외시장이나
코스닥시장에서 뜬 인터넷 창업가도 꽤 된다는 게 한 사채업자의 얘기다.

그래서 요즘 명동에는 사채업자가 운영하는 회사임을 알아볼 수 있는 '00기획',
'00실업'이란 이름 대신 '00파이낸스', '00재테크', '00컨설팅',
'00투자자문'이란 간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신문광고를 보면 장외시장 종목을 사고 판다는 사실을 알리는 사채회사 80여 곳 가운데
30여 군데가 명동지역임을 쉽게 알 수 있는 전화번호를 달고 있다. 대략 200~300여 개로
추산되는 명동의 사채회사 가운데 적어도 10% 이상이 드러내놓고 장외시장 종목을 거래하는
셈이다. 명동 사채업계에서는 최소 하루 1000억원 이상이 명동에서 장외시장 종목을
거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채가 벤처자금으로 건전하게 활용된다면 나라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 하지만 일부
사채업자들은 놀랄 만한 자금조성력을 이용해 장외종목 주가를 부풀려선 코스닥시장 등으로
넘기는 수법으로 거액의 차익을 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소문이다. 사채업자가 띄워놓은
장외시장 가격만 믿고 코스닥시장에 등록되는 기업에 대해 상투를 잡으며 투자, 엄청난
피해를 입는 일반투자자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채업자는 벤처사업가와의 이면계약을 통해 일종의 고리대금업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정수준 이상으로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이에 상당하는 담보권을 행사하거나
피해를 보상하도록 강요하는 등의 수법을 여전히 동원한다는 것이다.

과거 검은 돈을 주무르던 습성을 버리지 못한 일부 사채업자들의 일탈행위가 근절되지
않고서는 명동이 건전한 벤처투자시장으로 탈바꿈하기엔 멀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