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 플레이어에 내장되는 반도체 칩 설계회사인 다믈멀티미디어 주식회사는
정연홍(37) 사장을 포함해 전 직원이 7명밖에 되지 않는 초미니 회사다. 이
회사가 작년 11월 말, 일본의 산요전기에 반도체 설계 기술을 수출했다. 회사
규모를 떠나서 국내 기업이 반도체 기술을, 그것도 비메모리 반도체기술을
수출한 예는 극히 드문 일이다.

다믈멀티미디어는 직원들 사이에 관리-개발-영업 등 업무 영역별로 역할
분담이 없다. 전부가 연구-개발 인력이다. 이들은 모두 국내 굴지의 반도체
회사 연구원 출신들. 벤처기업 열풍이 우리 사회를 아직 휩쓸기 전인 98년
5~9월 사이, 이들은 차례로 거대 조직에서 뛰쳐나와 '벤처'의 길로 들어섰다.

"내가 개발한 설계 기술이 응용된 칩이 상용화돼서 끝까지 구현되는 걸
보고싶었습니다. 연구원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 아닐까요."

정 사장과 다믈멀티미디어에 합류한 이들 연구원들이 "끝까지 구현되는" 걸
보고 싶었던 것은 바로 하드와이어드(Hardwired) 방식의 MP3 복원용 칩. 휴대형
디지털 오디오기기인 MP3플레이어에는 압축된 MP3파일을 다시 풀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반도체 칩이 내장돼 있다. 하드와이어드 방식이란, 칩
회로 자체가 바로 그런 기능을 하는 것.

그 이전까지 MP3용 반도체 칩은 독일 미크로나스사가 만든 프로그램 방식의
칩뿐이었다. 프로그램 방식의 칩이 특정 프로그램을 칩에 올리면 그 프로그램대로
작동하는 범용 칩이라면, 하드와이어드 방식은 전용 칩이다. 크기가 훨씬 작고,
전력 소모도 프로그램 방식에 비해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믈멀티미디어가 칩 설계 기술개발에 착수한 98년 중반 당시에는 MP3
시장의 전망 자체가 불투명했다. 당시 MP3 플레이어가 나온 것은 한국이 유일했다.

"모험이었지만 우리는 시장성을 확신했습니다. '디지털 오디오'는 확실한
대세입니다. 꼭 MP3 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CD나 미니디스크(MD), 휴대폰 등
다른 기기와 결합된 제품 시장을 내다봤습니다."

서울 서초동 다믈멀티미디어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영화 '쇼생크 탈출'
포스트의 글귀가 모험에 나선 이들의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Fear can hold you prisoner, Hope can set you free'(두려움은 너를 수인으로
묶어두지만,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비메모리 칩 설계 기술 개발'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7개월 여를 매달린 끝에
이들은 99년 4월 회로 설계에 성공했다. 정 사장은 "사인파를 집어넣어(input)
실험해 보니 '삐―' 하는 소리가 나왔다(output). 그때 '삐―' 소리는 천상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고 당시의 감회를 밝혔다.

그때부터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대만 등 주요 반도체 회사와 접촉한 끝에
일본 산요전기와 계약이 이뤄졌다. 다믈멀티미디어는 산요전기로부터 기술이전료
50만달러를 먼저 받고, 향후 반도체 칩 매출에 따라 경상 로열티를 따로 받기로
했다.

"퀄컴의 CDMA 칩 같은 것을 우리나라에서 못 만들라는 법이 있습니까." 정연홍
사장이 살짝 열어보인 다부진 꿈의 한 자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