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교습소로 착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요."

일본 중소기업의 메카 도쿄 오타구. 이곳 히가시코지야 지역의 골목길을
헤매다 인근 주민의 도움으로 겨우 '디스코(Disco)'란 간판을 찾았다. 명성은
일본 대기업에 뒤지지 않지만, 후미진 곳에 자리한 4층짜리 본사 외관은 역시
중소기업이었다.

'디스코'는 옛 회사 이름인 '다이이치세시쇼'와 회사를 의미하는
'코퍼레이션'의 두음을 따서 만든 이름. 우연히 춤 이름과 같아졌지만 반도체
세계에선 춤보다 유명한 업체가 디스코다.

자르는 기술만큼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절(자르고)-삭(갈고)-마

(닦고)의 외길 기업'이 디스코의 공식 수식어다. 대형 건물에서 월석까지,

자르는 데만 63년을 보냈다.

이 회사 기술력을 상징하는 유명한 실례가 있다. 지난 93년 일본
국영방송에 뒤늦게 소개돼 국민들을 놀라게 한 '머리카락 자르기'. 이 회사가
만든 얄팍한 다이아몬드 커터(Cutter)로 자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머리카락
단면이 무려 22등분된다. 5미크론(1000분의 5㎜)의 커터가 가로 세로로 6번씩
지나가면 마술이 일어난다.

이런 기술은 왜 필요한 것일까.

커터가 장착되는 디스코의 반도체 절단장치. IC(집적회로)가 새겨진
실리콘웨이퍼를 수십 조각으로 잘라내는 데 사용되는 장치다. 반도체와
반도체 사이의 절단면을 얇게 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데는 더
섬세한 절단기술이 필요하다.

이 장비의 일본 시장 점유율은 90%. 세계 시장 점유율도 80%가 넘는다.
직원 934명이 올리는 경이적인 지배력이다. 디스코의 1년 매출액
170억1900만엔(99년)을 그 해 세계 반도체 절단장치의 시장 규모로 봐도
무리가 없다. 직원 수만명의 삼성전자와 NEC의 D램 반도체는 장비만
수입하면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디스코의 반도체 절단장치 기술을
흉내낼 수 있는 업체는 거의 없는 셈이다.

일본이 보유한 대부분의 첨단기술처럼 디스코의 절단기술도 한참 전에
한물 간 숫돌(지) 제조업에서 파생됐다.

세키야 겐이치 사장의 아버지 미쓰오 초대 사장. 만주에서 일제의
관리를 지낸 미쓰오 사장이 고향으로 돌아와 디스코를 창업한 것은 63년
전인 1937년. 해군 제조창이 있던 히로시마 구레시에서 해군의 총포를
연마하기 위한 숫돌을 생산한 것이 사사의 시작이었다.

"군수용으로는 한계가 있었지요. 늘 둔탁한 제품만 요구해 왔으니까요."
겐이치 사장은 창업 3년 뒤 본사를 도쿄로 옮기면서 민간 수요를 찾기
시작한 것이 도약의 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의 요구는 끝이
없습니다. 요구에 맞추다 보면 기술은 진보하지요."

대포나 갈던 숫돌은 점점 더 얇아져 1956년에는 두께 0.13~0.14㎜의
숫돌을 일본 최초로 만들어 양산하기 시작했다. 만년필 펜촉을 두 개로
쪼개는 극박 숫돌이었다.

두번째 기술력의 도약은 창업자의 장-차남인 겐이치 사장 형제가
입사하면서 이뤄졌다. 게이오대학 출신인 이들 형제의 2세 체제가 자리를
잡은 것. 이들은 '자르는(Cutting) 기술'에 사운을 걸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뒤, 이번엔 미시의 세계인 반도체 제조업에 도전했다.

첫 결실은 1968년 있었다. 40미크론(100분의 4㎜)의 초극박 절단용
숫돌인 '미크론 커터'였다. 이번엔 '일본 최초'가 아닌 '세계 최초'를
기록해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집적화의 길을 여는 데 일조하게 된다.

"처음엔 불량품이 많았습니다. 수요가들이 커터에 문제가 있다고
항의했지요. 그러나 우리가 보기엔 커터를 장착하는 장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세키야 사장)

내친 김에 장비 개발에도 나서 1974년 도쿄 시나가와구에 커터를 돌리는
기계공장을 설립하고 극미세 절단장비의 일관체제를 갖췄다. 그 해 도쿄대가
성분 분석을 위해 미국 아폴로 11호가 달에서 가져온 월석 절단을 의뢰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현재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과 한국에도 공장을 두고 현지 생산을 하고
있다. 한국 현지공장에서는 건축물 절단장비를 제조하고 있다.

디스코의 경영 철칙은 '소비자 제일주의'로 요약된다. 이를 반영해
디스코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본사 B동의 연구개발센터에서는 디스코
연구진과 반도체 제조업체 연구진이 함께 머물면서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세계 최고업체가 가질 수 있는 오만함이 희석되고 창업가 정신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 같은 공간이기도 하다.

세키야 사장은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도 외길을 고집하겠다"고 말했다.
대신 디스코의 자르는 기술을 끝없이 신산업에 적용해 절-삭-마의 일본
발음(kiru-kezuru-migaku)을 유도 용어처럼 세계화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63년 동안 단일 기술로 세계를 제패한 외골수 기업가 집안의
장남다운 '원대한' 포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