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의 베스트 무비 1
안녕하세요.
이동진 기자입니다. 연말을 맞아 여러 매체에서 올 한해 영화, 혹은
지난 세기의 영화를 결산하는 기획이 많이 실리고 있군요. 그래서
오늘은 99년 1월1일 이후 정식 개봉한 모든 영화를 대상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저만의 베스트-워스트 영화를 뽑아봤습니다. 돌아보니 제
특별한 경험 때문에 선정된 영화도 없지 않은 것 같네요. 감안하시길.
(하지만 세상에 완전히 객관적인 평가란 불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단편 영화도 정식 개봉됐으면 순위에 포함시켰습니다.
사실 영화가 무슨 자동차 경주도 아닌데 순위를 매긴다는 것은
별점을 매기는 것 이상으로 멍청한 짓이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순위가 가진 매력이랄까, 분명히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그저 재미로 읽어보시고, 관심
있으시면 비디오 고르시는 데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신문에서는 여러 가지 여건상 이런 순위를 싣기 어렵기에 제 자신도
이렇게 결산해 보는 것이 사실 재미가 있기도 하네요.
이번 주엔 외국영화를, 다음주 화요일엔 한국영화의 순위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참, 외국영화 베스트-워스트와 별도로 맨 뒤에는
올해 가장 재미있었던 영화 12편도 포함시켰습니다. 여기선
한국영화-외국영화를 구분하지 않고 뽑아봤습니다. 여러분들
개인적인 순위표를 이메일클럽 시네마레터 게시판에 올려보시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외국영화 베스트 12
1.벨벳 골드마인
'반짝이는 것'은 모두 이 영화 속에 있다. 성장영화에서 글램록에 대한
단순한 회고담까지, 어떻게 읽어도 흥미로운 올 최고의 영화. (이 영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요즘 제가 가장 자주 듣는 음반입니다.)
2.나라야마 부시코
카메라를 통해 측정할 수 있는 삶과 세계의 깊이는 대체
어디까지일까. 똑같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마무라
쇼헤이의 작품이지만, '우나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재미와
깊이를 지닌 걸작.
3.더 월
앨런 파커의 최고작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영상도 뛰어나지만
역시 절 완벽하게 사로잡는 것은 역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 영화를
보다보면 무릎 꿇고 고개를 파묻은 채 핑크 플로이드를 들었던 10대
시절이 떠오른다. 그런데 왜 'The Wall' 음반 중 'Hey You'만 영화에 넣지
않았을까.
4.욕망의 모호한 대상
욕망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탁월한 통찰력. 자크 라캉의 욕망이론에
대한 가장 선명한 영화적 형상화. 유작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을 때
거장 루이스 부누엘의 나이가 일흔이 넘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
5.레이닝 스톤
켄 로치는 전사(戰士)의식이 투철했던 '랜드 앤 프리덤' '히든
아젠다'같은 작품들보다는 잔잔한 드라마 속에 굵은 목소리를
감춰두는 '케스'같은 영화를 훨씬 더 잘 만든다. '레이닝 스톤'은 그의
90년대 최고작.
6.부기 나이트
가장 천박한 포르노 세계를 소재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를 빚어내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재능. 인생유전에 대한 최상의 드라마. 최근
미국에서 개봉했다는 그의 신작 '매그놀리아'가 보고싶다.
7.중앙역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 할 만한 감동적 이야기. 전혀 무게를 잡지 않은
채 쉬운 이야기를 풀어놓지만 씹을수록 깊은 상징도 곳곳에
배어있다. 그런데, 이런 영화가 흥행에서 참패했다니.
8.씬 레드 라인
가장 철학적인 전쟁영화. 몰입을 방해하며 과잉인 듯한 대사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이처럼 매력적인 영화도 드물다. 전쟁을
이렇게 풀어낼 수 있는 감독이 테렌스 맬릭 말고 또 있을까. 단
'전쟁'영화를 기대하는 분은 안 보시는 게 좋을 듯. (그런데 맬릭의
다음 영화를 보기 위해 또 20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9.제너럴
처음 30분만 참고 보면 어느 곳에도 마음 둘 곳 없었던 한
대도(大盜)의 삶이 가슴 찡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게다가 군데군데
기기묘묘한 유머도 담겨있다. 브랜던 글리슨의 연기는 최고.
10.롤라 런
영화 끝날 때쯤이면 심장 박동이 4배쯤 빨라지는 영화. 리듬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 잘 말해준다. 영화 속 20분간의 순간을 세
번 변주하는 영화를 보다보면 정말 러닝타임이 2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듯 훌쩍 지나간다.
11.푸줏간 소년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잔혹한 유머가 이어지는 끝에 구원의 순간이
온다. 가장 고통스런 성장영화 중 하나.
12.라이브 플래쉬
일반 대중과 호흡을 같이하기 시작한 페드로 알모도바르. '키카'로
극단을 때린 그의 영화세계는 뛰어난 치정극 '라이브 플래쉬'에 이어
걸작 '내 어머니의 모든 것'으로 이어진다.
외국영화 워스트 10-순서 없음
?폴라 엑스
못 만든 예술영화의 전형. 극히 모호해 보이지만 사실 도식적이기
짝이 없는 구조를 지녔다. 자라지 못한 자의식과잉을 영상화하는데
이만큼 많은 돈을 들였다는 것은 죄악이다.
?불워스
한 남자의 정치적 야심이 영화를 어떻게 망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정치영화. 세상과 정치를 보는 수준이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워런
비티가 출마하더라도 미국민들은 그에게 표를 던지지 않는 것이
현명할 듯.
?엔드 오브 데이즈
가장 졸렬한 세기말 영화. 배금주의를 경계하는 인물 설정이지만 이
영화의 제작방식이야말로 배금주의적이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최악이지만, 개인적으론 매력적인 배우 가브리엘 번의 실족을 보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
?쇼킹 아시아 2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브로크다운 팰리스
'레드 코너' '리턴 투 파라다이스' 등 지난 1-2년 사이 나온 '미국인의
외국 감옥 투쟁기'는 미국이 아시아를 그저 '성적인 열락'과 '미개한
문명' 두 가지 키워드로만 파악하고 있음을 잘 말해준다. '브로크다운
팰리스'는 그 중에서도 최악. 등뒤로 스멀스멀 벌레가 기어가듯 기분
나쁜 영화.
?비트시티
불쌍한 클레어 데인즈. 제법 매력적인 소녀였던 그가 '브로크다운
팰리스'와 '비트 시티'같은 졸작에 연달아 출연하다니.
?천선지연
유치찬란.
?벨리
뮤직비디오와 영화는 다르다. 스타일 과잉에 도식적인 세계 이해가
끝내 자극에 무감각하게 만든다.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시대착오적인 블럭버스터. 게다가 재미도 없다.
?아스테릭스
이런 '대작'으로 프랑스가 할리우드와 대결하려 한다면 프랑스 영화의
미래는 없다. 18세 이상 성인 중에 '아스테릭스'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
있을까.
가장 재미있는 영화 12-순서 없음
?스크림
공포영화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 장르에 대한 지식이 장르
영화를 만드는 가장 훌륭한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 희한한 장르
영화. 그러나 웨스 크레이븐의 최고작은 '뉴 나이트메어'가 아닐까.
?신장개업
이 영화를 보다가 너무 우스워서 두 번 울었다. 스님과 격투하는
장면과 짜장면 시식 장면.
?매트릭스
스타일 자체가 얼마나 뛰어난 오락거리가 될 수 있는지 입증하는
사례. 게다가 다루고 있는 가상현실 주제도 만만치 않게 흥미롭다.
?와일드 씽
반전의 연쇄폭발이라고 할 정도로 수도 없이 일어나는 반전을 즐기는
재미가 대단하다. '헨리, 연쇄살인자의 초상'같은 극사실주의적
섬뜩함은 없지만 존 맥노튼 감독의 세상을 보는 차가운 시선은
여전하다.
?롤라 런
그냥 영화의 리듬에 푹 빠져보시길. 그 의미는 나중에 생각해도 좋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올해 내게 이 영화만큼 재미있는 작품은 없었다.
?록 스탁 투 스모킹 배럴즈
복잡한 이야기가 비비 꼬여있지만 참으로 유쾌한 영국영화. 다만 그
많은 복선을 챙겨가며 영화를 보려면 머리가 좀 아프다.
?노팅힐
올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로맨틱 코미디가 환상을 먹고사는
장르라는 사실에만 동의하면 이처럼 매력적인 영화도 드물다.
?오스틴 파워
지저분하고 끔찍하다. 그래도 독창적이고 재미있다.
?식스 센스
그간 90년대 최고 반전으로 손꼽혔던 '유주얼 서스펙트' 라스트신의
충격을 능가하는 반전의 매력. 누구라도 영화를 보고 나면 다시 또
한번 보고싶어진다.
?러브레터
멜러영화의 한 대안. 이와이 ?지는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잘 알고 있다. 보고 나면 세상은 1도쯤 따뜻해진 것 같다.
?플레전트 빌
흑백과 칼라를 변주하는 아이디어가 일품. 후반으로 갈수록
무거워지는 게 흠이지만 보지 않고 지나치기엔 너무 아까운 재치
있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