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날개를 폈다." 30년전 아폴로 11호에서 분리된 독수리호는
닐 암스트롱 선장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전해왔다. 달을 향한
인류의 동경과 정복욕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허연 먼지를 내며
달에 첫발을 내디딘 암스트롱은 "개인에게는 작은 한 걸음, 인류에겐
거대한 도약"이라고 선언했다.

지상의 언론들은 "인식의 지평이 우주

로 넓어졌다"며 "인류는 지구공동체"라고 풀이했다. 인간의 과학기술

력이 달까지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20세기 최대사건이었다. 천문연구

원 박석재 박사는 "달착륙은 달과 화성,목성 등 태양계 탐사와 외계인

찾기로 이어지는 인류의 우주개발사의 상징적 기폭제가 됐다"며 "루나

시티(달식민지) 건설도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아폴로의 달 정복은 소련에 대한 미국의 승리였
다. 냉전분위기에서 미항공우주국과 우주인들은 자유진영을 지키기 위
한 전사였다. 적어도 1960년대 초반까지 소련은 우주 경쟁에 관한한
적수가 없는 독보적 존재였다. 소련은 이미 1957년 첫 인공위성(스푸
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 미국과 전세계를 경악에 몰아 넣었다. 미국
은 스푸트니크보다 넉달 뒤져 익스플로러 위성을 발사했지만, 그 무게
는 8㎏으로 스푸트니크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잇달은 스푸트니크 2
호는 무려 508㎏으로 미국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소련은
1961년 3월, 가가린을 태워 사상 최초로 인간을 지구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 미국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고 말았다.

40대의 혈기왕성했던 케네디 대통령은 그해 5월 의회와 미국민을
향해 폭탄선언을 했다. "60년대가 가기전 인간을 달에 보낸 뒤 무사히
귀환시키겠다"는 것. 로켓, 도킹기술, 랑데부기술, 우주유영 등 넘어
야 할산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미국은 이후 제미니 계획을 추진, 달에 가고 오는데 필요한 시간보
다 많은 330여시간의 우주체류를 경험, 소련의 주도권을 뺏기 시작했
다. 제미니 8호는 세계 최초로 우주도킹에 성공했다. 하지만 소련은
미국이 9번의 유인우주선을 발사하는 동안 단 한차례의 우주선 발사에
그쳤다. 기술적 문제들이 계속 발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달 정복은 아폴로 계획으로 완성됐다. 72년까지 당시 돈으로 250억달
러의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부었고, 미국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결
속력과 자신감을 회복했다. 미 뉴욕타임스는 최근 달착륙 30주년 특집
에서 "당시 소련은 흐루시초프나 군부 모두달정복에 회의적이어서 투
자도 적었고 협조도 되지 않았다"며 "특히 66년에 우주개발의 아버지
코롤료프가 사망하면서 큰 차질을 빚었다"고 분석했다. 소련은 69년
달을 향한 첫 로켓(N1)을 발사했으나 실패했고, 아폴로 11호가 출발하
기 바로 13일전인 7월3일 두번째 로켓을 쏘았으나 200여m도 올라가지
못하고 곤두박질, 대폭발을 일으켰다. 승리의 여신은 미국의 손을 들
고 말았다. 아폴로 우주인들이 달에서 성조기를 꽂느라 아까운 시간을
상당히 허비했던 것도 모두 소련을 의식한 것이었다.

한동안 천문학적 투자비에 비해 얻는 것이 없다는 비판여론에 밀렸
던 달 탐사가 최근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94년 클레멘타인, 98년 루
나 프로스펙터 등 무인 달 탐사선들은 달의 극지방에서 얼음흔적을 발
견, '죽은 달'을 되살려 냈다. 이달 말에는 NASA가 수명이 다한 루나
프로스펙터를 달에 충돌시켜, 물의 실재여부를 조사한다는 계획도 세
웠다.인간이 살만한 충분한양의 물을 발견해, 달에 우주기지를 세우려
는 새로운 도전들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밤 달을 한번 올려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