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저녁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고 돌아온 남편은 조용히 아내
를 불렀다.

"이제 당신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줄게 돼. 월급도 국
회의원 시절보다 적어져 살림에 도움도 안되고 말야. 그래도 이해하는
거지?".

96년 남편이 정치에 입문했을 때, '아낙의 심정'으로 말리고 싶었던

그녀는 다시 그때처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심에 가득찬 남편 이방원을 태종으로 즉위시킨 TV드라마 '용의 눈
물' 속 여인 민씨와 현실속 그녀는 닮은 듯하면서도 이렇게 비껴서 있다.

이제 돌을 갓 넘긴 아들 어진을 돌보는 재미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는 탤런트 최명길씨. 95년 당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TV 토크쇼
진행자인 김한길씨와 화려한 결혼식을 올린 최씨는 요새 남편 얼굴을 잊
어먹을 지경이다.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발탁되고서 남편이 아침 6시면 집을 나가
밤 12시가 다 돼 들어서는 통에 어진이가 아빠 얼굴 본지도 꽤 됐다.

"어진이 돌잔치 날 청와대에 들어가 임명장을 받고 오느라 '아빠 없
는 돌잔치'가 됐죠. 저도 어진이 낳기 2주 전까지 '용의 눈물' 찍느라
고생시켰는데…. 엄마, 아빠가 돌아가며 어진이를 섭섭하게 하네요.".

최씨는 그래도 순하게 잘 자라주는 어진이가 정말 고맙단다.

서울 동부이촌동 한 아파트에 사는 그녀는 비싼 백화점보다 동네 수
퍼마켓에 자주가는 알뜰파. 반찬거리를 살 때 값이 싸지는 오후 4∼5시
에 맞춰 가는 살림지혜도 알고 있다. 집 가까운 곳에서 친언니가 운영하
는 음식점에 때때로 찾아가 야채를 도매값으로 떼가는 '깍쟁이 짓'도 한
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방송 활동을 잠시 쉬는 요즘, 아는 아주머니 집에 가서 요리를 배
우고 있어요. 배운 요리들을 그이에게 해 줘야 하는데 매일 늦으니 어떡
하죠?".

오후 5시쯤 남편이 전화를 걸어와 "오늘은 일찍 들어갈 것 같다"고 한
얘기를 믿고 식사를 준비했다가 저녁 무렵 뒤늦게 "미안하다"고 연락해
와 속상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통에 입맛이 없다며 그대로 나가는 남편에게 무얼
먹여야 하느냐가 요즘 그녀의 고민.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호박수프, 생
과일주스, 선식 등을 권해 얼마전 재료들을 잔뜩 준비해 놓은 상태다.

최씨는 "은행에 예금 맡기는 것 말고 다른 것은 모르는 재테크의 젬
병"이라고 푸념한다. 하지만 집에 잔뜩 배달되는 신문 경제면을 찬찬히
읽으며 전문용어도 공부하고 은행간 금리 차이도 알아가는 중이다.

어진이 교육은 최씨나 남편이나 '요란 떨지 않고 평범하게 키운다'는
것 말고 달리 생각해본 게 없단다. '세상 그저 어질 게 살아가라'는 의
미로 순우리 이름을 붙여줬을 때 정한 원칙이다.

"다른 집 또래 아이들 조기교육한다고 벽 여기저기 글자 써놓고 하는
것을 보면 조바심도 난다"는 게 솔직한 고백. 하지만 어진이가 살아갈
세상이 지금과 달라야 하고 남편도 그것을 위해 일한다고 말할 땐 큰 눈
이 반짝인다.

"향기가 있는 여자를 놓치기 싫었다"는 남편의 프로포즈 속의 그 향
기는 아직도 그녀 주변을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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