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0여회 동안 힘없는 삶들에 '진한 웃음' 선사 .
♧ 2월 24일 서울 종로구 연강홀 '99품바' 공연장. 시작 시간 이후에도
계속관객이 들어오며 어수선한 가운데 이미 나와 앉아있던 고수가 "자,흥
이나 돋우자"며 객석에서 몇몇을 세워 일으킨다. 각설이 타령 시합이다.
고교를 갓 졸업했을 법한 젊은 여성 둘이 다리까지 흔들며 장내가 떠
나가라 노래를 부르자, 고수가 "염병, 지랄들 하고 있네"라며 일갈한 후
"자∼알 했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이 연극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법한 광경이다.
18년째 장기 공연하고 있는 품바는 3월 1일 막을 내린 이번 공연에서
그간의 모노드라마 형식을 탈피, 20여명의 '떼거지'를 등장시켰다. 또 통
일에대한 염원을 더욱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마지막 부분에 인형을 이용,
남쪽의 사내아이와 북쪽의 여자아이가 천천히 무대를 가로질러 만나게 하
는 장면이 그러하다. 한참 동안 쭈그리고 앉아 난세를 푸념하던 품바가
일어서며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한반도야" 하기도 한다.
그동안 품바를 이끌어온 기조는 거의 변함이 없다. 박수가 약하거나
따라 부르는 노랫소리가 힘없으면 "나 안해. 집에나 가" 하는 것도 똑같
고, 관객을 무대로 올려 "당신 몇살이요?" 물은 뒤 자기 나이를 쭈뼛쭈뼛
대답하면 "틀렸다. 우리 나이는 5000살이요" 하는 것도 여전하다.
밥동냥 에피소드도 빠지지 않았고, 이번에 관객들로부터 거둬들인 돈
120여만원을 모두 걸식아동 돕기에 내놓았다. 또 지난 2월 22일∼25일 나
흘 동안은 종로구청과 협력, 관내 저소득층 편부모 가정 50여명을 초청하
기도 했다.
원래 '품바'란 걸인들이 부르는 장타령의 후렴을 일컫는 말. 지난 81
년 전남 무안에 틀어박혀 시 습작을 하던 김시라(53)씨가 마을 공회당에
첫 무대를 올린 것이 연극 '품바'의 시작이었다. 김씨는 14개월 동안 거
지들을 쫓아다니며 생활을 관찰하고 은어를 수집한 끝에 작품을 완성했다
고 한다. 한 걸인 대장을 통해 일제시대와 해방, 6·25와 이후 근대사의
여러 질곡을 녹여 넣은 이 연극은 원색적인 육두문자와 남도 사투리로 표
현된 풍자와 해학으로 관객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절로 흥이 나는 각설이 타령과 "백성은 땅을 치고 우리같은 거렁뱅이
는 깡통을 친다"류의 사설이 당시 시대 상황에 억눌린 서민들의 답답한
심정에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직설적 비판으로 관객들 카타르시스 유발
품바는 곧 광주로 진출했고 83년 서울로 올라와 86년 1000회를 돌파하
며 '품바'라는 용어를 보통명사로 만들었다. 이 현대판 거지타령은 연극
계 일부에서 '연극이랄 수 없는 거지놀음'이라는 비난도 있었으나, 80년
대중반까지는 압제에 허덕이는 젊은 세대들에게 '민중연극'으로 받아들여
지며 대학가에 품바 열풍을 일으켰다. 87년 첫 미국 9개도시 순회 공연
때는 55회 공연에 3만여 관중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연극 품바의 작품 배경은 전남 무안군 일로읍의 '천사촌'. 일명 각설
이 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일제시대와 6·25 동란을 거치며 8도의 걸인
들이 한때 200여명까지 모여 살았다고 한다. 김씨는 70년대 중반 이후 자
취를 감춘 이 천사촌 얘기를 어려서부터 듣고 자랐고, 일대에서 유명했던
거지왕 천팔만(73년 사망)의 삶에 작가적 상상력을 입혀 주인공 품바를
탄생시켰다.
"거렁뱅이들이 있으니 너희들이 우쭐댈 수 있고, 나처럼 모자란 놈들
이 있으니 너희들이 웃을 수 있다. 이것만은 내가 너희들에게 적선하는
것이다"는 사설은 품바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의 하나다.
이번까지 총 4100여회의 공연에 이르는 동안 품바가 동원한 관객수는
130여만명. 이것도 추정치일 뿐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한 회 공연에
서울에서 100∼300여명, 지방 500∼4000여명이 관람했던 것을 감안한 수
치이다.
그동안의 총수익이 얼마나 됐는지는 잘 가늠이 안된다고 한다. 관람객
수가 주는 압도감에는 턱없이 못미친다고 대답하나 김씨는 동숭동에 '강
강술래' 등 소극장 2개와 한식당 하나를 마련할 수 있었다. 다만 80년대
중반에 이미 100만장 이상 팔려나갔다는 품바 테이프와 관련해서는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무명작가, 무명배우에 서울도 아닌 저 시골에서 시작된 한 연극이 18
년 이상 장기공연되고 있는 인기의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 우선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고통과 정치의 왜곡을 신랄하게 풍자한 점. 부정부패에
따른 빈부격차, 위선 등에 대한 가차없는 직설적 비판으로 관객들의 카타
르시스를 유발하며 '민초의 시대사'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극의 전개 방
식이 마당극 형식을 빌어 관객과 호흡을 나눈다는 점도 큰 몫을 했다.
관객들의 적극적 참여는 흥겨운 장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어서, 해방
후 미국과 구 소련의 점령군이 몰려와 여주인공 '수세미'를 겁탈하는 장
면에서는 객석에서 웬 할머니가 "그랬어, 그때 여자들 고생 많았어"라 호
응하기도 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가 거지"
한 연극평론가는 품바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불교의 '공수래
공수거' 사상을 보여준다"고 평하기도 했다. 주인공의 입을 통해 나오는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가 거지"라는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한국 연극의 역사를 다시 써오면서 공연을 둘러싼 그간의 에피소드는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다.
돈을 모은 김시라씨가 지난 85년 창단한 품바 전용 극단 '가가'의 이
름부터가 그렇다. 품바의 '건전치 못한' 내용 때문에 신군부에 미움을 받
은 탓인지 극단 설립 신청서를 낼 때마다 수차례 "그냥 가라"는 소리만
듣자, 홧김에 '가라 가라'의 의미로 '가가'라 지었다고 한다.
97년 8월 호주 멜버른 공연 때의 얘기 한토막. 9대 품바 최성웅(45·
극단'세미' 대표)씨가 무대에 올라 1000여명의 교민들을 모아놓고 한 공
연이었다. 평소 때 부부 관객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서로 열심히 사
랑해주라"류의 덕담(?)을 하던 최씨는 그날 따라 좀 이상한 느낌을 주는
한 중년 부부를 다짜고짜 걸고 넘어졌다. "마누라 패지 마라", "그런 짓
하면 6개월내에 죽는다"며 갖은 소리를 다했는데 관객들이 박장대소를 하
고 난리였던 것. 나중에 알고보니 실제 부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해 교포사
회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던 인물이어서 본인도 놀랐다고 한다.
이렇듯 4000회 이상의 공연으로 여전히 '관객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연극계에서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는 품바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각설이 향수' 탓인지 40∼50대 관객이 많아
진 것도 변화를 요구하는 징표다. '99품바'에 최종원씨와 더블 캐스팅됐
던 13대 품바 박철민(33)씨는 "90년대 이후 품바는 80년대에 누렸던 생명
력을 잃어버린 감이 있다. 20년 가까이 공연하면서 한번 이상 본 사람이
늘어난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놀이 구조는 유지하되 내용의 질적인 변
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역대 품바들
모두 13명…3대 박동과씨 9백여회로 최다 공연
--------------------------------------------
연출가 김시라씨가 내세우는 '품바' 주인공의 요건은 모노 드라마의
속성상 '카리스마'다. 관객을 휘어잡아 이끌어야지 주춤거리거나 관객에
게 도리어 끌려가면 그야말로 끝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무대에 선 최
종원씨에게 김씨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강력한 독설'과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의 흡인력이 탁월하다는 평가.
김씨의 고향 후배인 초대 품바 정규수씨는 거지들에게 장타령을 익혀
소리며 짓거리가 진짜 거지 뺨칠 정도였다. 천부적 놀이꾼으로 극의 템포
를 잠시도 늦추지 않아 2시간이 언제 가는지 모를 정도로 관객들을 빨아
들였다. 역대 품바중 가장 많이 기억되고 있는 이로서 초연 무대서부터 85
년 3월까지 560여회 출연을 했고, 93년 미국 7개 도시 순회공연 때도 참
가했다.83∼85년 품바를 맡았던 2대 정승호씨는 '연극적 요소'가 짙은 배
우였다.
김씨에 의하면 '강온'을 모두 겸비한 배우로 주인공의 두령으로서 강
인한 면모와 가장 밑바닥 계층으로서의 애환을 두루 표현했다. 순발력도
일품. 역대 품바중 가장 많은 공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배우는 박동과이
다. 그는 미국공연을 포함, 86∼89년, 90∼91년 기간 900여회 무대에 섰
다. '계산된 자연스러움'이라 표현되는 철저히 계산된, 그리고 한치의 오
차도 없는 연기를 펼쳤다고 김씨는 평한다.
지난해 4000회 기념 공연에 다시 무대에 섰던 6대 품바 김규형은 현재
국립 국악관현악단 악장으로 국악풍의 품바를 도입했던 인물. 판소리와
북에 능했던 그는 현대극과 창극을 조화롭게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9대 품바인 최성웅씨는 나이 40을 넘어 맡은 품바답게 무대에서 평소
친화력이 돋보이는 인간성이 그대로 드러났던 품바다. 잔재주보다는 정직
하고 겸손한 연기를 펼쳤다.
초대 '각시 품바'였던 양가화와 김은영(더블 캐스팅)씨는 여성의 체취
가 스며든 까닭인지 '예쁜 품바'를 선보였었다. 96년 품바 탄생 15주년
기념 공연에 섰던 10대 품바 박해미씨는 캐스팅에 제일 고민을 많 이 한
케이스. 이화여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뮤지컬 배우였던 박씨의 낙점에 대
해 주위는 물론 본인도 마다했었다. "공주가 어떻게 거지 역할을 하냐"는
지적. 그러나 품바를 하면서 자신의 숨겨진 진가를 찾은 드문 케이스라고
김씨는 평가하고 있다.
박씨는 "체력은 차치하고 '염병', '지랄' 등을 입에 달고 있어야 한다
는 게 처음엔 내키지 않았다"면서 "1인 다역과 무엇보다 관객과의 호흡을
배운게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
품바 작가 겸 연출가 김시라씨
"2000년에 대형 총체극 구상"
----------------------------------------
--이번 공연은 좀 무거운 인상이다.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품바는 '상황연극'이므로 기본 줄기는 같아도 시대가 달라지면 내용
도 계속 보완해야 한다. 초창기 때는 인권 문제나 정치 폭력을 풍자하고
해학화하는데 중점을 뒀다. 90년대 이후 통일이나 환경 등 민족의 이상과
현안을 많이 담으려 노력하고 있다. 내 통일론은 한마디로 '무조건 통일
론'이다. 마음을 비우고 38선의 철조망을 걷어낸 뒤, 그에 따르는 문제
는 그때그때 풀면 된다고 본다. 그일환으로 지난해 공연때는 북한 대중
가요도 무대에서 불렀다. 물론 관에서는 아직도 달가와 하지 않는다.".
--기타 작품도 몇개 쓰고 연출했지만 품바만을 주로 해왔다. 뚜렷한 연
극관이 있나.
"한국연극과 서양연극은 다르다. 우리의 삶과, 우리 문화·역사가 극
에 스며들고 극적으로 승화돼야 한다. 서양 연극이 절제, 형식,이성에 중
점을 둔다면 우리는 과장, 마음, 감성에 호소한다고 본다. 우리는 마당극
전통이 유구하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경우,
서양에서는 대단한 연극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우
리 것이 없으면 죽는다. 요즘 미국식 뮤지컬이나 일본식 신파극 일색인데
이래서는 안된다.".
--수년 전부터 품바에 2인극을 도입하고 올해는 20여명까지 늘렸지만
품바는 계속 모노드라마였다. 배우에 따라 작품의 기복이 있었을 텐데.
"배우는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공연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면서 배우에게 연기에 대해 계속 주문한다. 관객들이 더 무섭기 때문이
다. 여러번 품바를 본 사람이 많아 내게 전화를 걸어 배우들에 대해 꼬치
꼬치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십수명의 품바를 썼지만 모노가 가능한 배우
가 있고 그렇지 않은 배우가 있다. 모노는 당연히 사람에 따라 극 자체가
달라질 수있다.이번 더블 캐스팅의 경우 박철민씨가 부드러운 연기를 통
해'재미'를 준다면, 최종원씨는 선이 굵은 연기를 통해 '감동'을 준다.나
이가 젊을수록 극에서 요구되는 성격보다 배우 자신의 성격이 많이 드러
나는 것 같다. 이번 공연은 바쁜 배우들을 불러 쓰다보니 긴 대사를 외우
게 할 시간 여유가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1인 창출극으로서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한 연출가가 20년
가까이 극을 끌어온다는 사실이 작품의 다양성을 제한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도 2000년에는 50∼60명이 참가하는 초대형 총체극을 생각하고
있다. 서양 거지를 포함, 떼로 나와 춤추고 노래하고 할 것이다. 일종의
뮤지컬 형식인데 용어가 마음에 안든다. 기자들이 말 잘 만들어내던데 하
나 지어 달라.".
목포고와 신학대학을 나온 김씨는 함께 연극 연출을 하는 박정재(37)
씨 사이에 2남 1녀를 뒀다. 딸 김추리(9)는 이번 무대에 출연, 춘향가의
일부를 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