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새벽 3시 30분, 경기도 용인민속촌의 외곽에 마련된 가마
터. 최주(64·KIST)박사는 후배 연구원들과 인부들에게 고래고래 고함
을 치고 있었다. "철광석은 숯하고 차례차례 포개야지." "불 땔 준비는
다 된거야." 고사까지 마친 뒤였다.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화로위로 시뻘건 화염이 타올랐다. 송풍
기 속도가 빨라지자 이내 화로는 1,500도까지 달아올랐다. 기세등등한
불꽃은 꼬박 24시간이상 타고 21일 새벽에야 꺼졌다. "성공이야." 노과
학자는 불꽃처럼 붉게 충혈된 눈을 부비며 비로소 잠자리에 들었다.

최박사는 이곳에서 전통제철가마를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궁극

적으로는 이곳에서 뽑아낸 순도높은 전통철로 무쇠 가마솥이나 전통 검

을 만드는 게 꿈. 전통 철가마나 제철기술은 1930년대 이후, 일제시대

를 거치면서 거의 맥이 끊겨져 가고 있다.

최박사팀이 복원한 철가마는 크게 2종류로,철광석을 녹여 잡쇠덩이
를 뽑아내는 쇠부리가마(즉 용광로)와 잡쇠덩이에서 정제한 쇠를 녹여
내는 무질부리가마(즉 주물로). 외벽지름은 모두 1.5m로 높이는 쇠부리
가마가 3m, 무질부리가마가 1.5m다. 벽 두께는 30㎝정도. 노벽은 짚을
이긴 진흙과 자갈로, 불이 닿는 가마 안쪽은 고령토와 숯으로 마감했다.

"불은 꼭 숯으로만 때야지, 편하다고 석탄을 쓰면 안돼. 석탄엔 유
황이 있어 철을 쉬 녹슬게 하거든.".

최박사팀은 24일 아침 불이 꺼진 쇠부리가마에서 60∼70㎏의 잡쇠덩
이(무쇠와 숯 고령토 등이 뒤범벅인 상태)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이
번주 안으로 무질부리가마를 가동할 계획.

최박사는 "전통제철법으로 뽑아낸 철은 녹도 슬지않으면서 잘 늘어
나고 절삭성도 현대철보다 우수하다"고 말했다. 발굴되는 전통 철기 제
품들은 천년이상 됐어도, 녹이 슬거나 벗겨지지 않아 그 우수성이 입증
되고 있다는 것.

최박사는 "일본은 이미 60년대말에 전통 장인을 불러 전통로 복원실
험을 거친 후, 77년부터는 시마네켄(도근현)에 '다다라 제철소'라는 전
통로를 운영하고 있다"며 "여기서 나온 쇳덩이로 일본도를 만들고, 톱-
면도날-가위-칼-주전자등 생활용품까지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고 지적
했다. 아울러 이지역이 '철의 마을'으로 지정되면서 세계 금속학자들의
필수 견학코스이자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마땅한 장소가 없어 쫓겨다니던 최박사는 민속촌측과 접촉, 가마터
를 얻어냈다. 앞으로 2000년쯤까지 이곳에서 각종 전통 제철실험을 한
뒤 모든 시설을 민속촌에 기증한다는 게 조건. 민속촌측은 전통 제철로
와 함께, 대장간 등을 복원, 이곳을 '철의 마을'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