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농약-제약 업계에는 10년이상씩 '흙을 파며' 지내는 이들이 적
지 않다. 이들이 하는 일은 전국의 각종 흙을 캐내 그 안에서 새로운
미생물을 찾아내는 것. 이렇게 찾아낸 특이한 균들은 곧바로 고부가가
치의 신물질-신농약-신의약품으로 이어진다. "흙속에서 노다지를 캐낸
다"는 게 이들의 자부심.

종근당 의약연구소 천연물탐색실 김종관 팀장은 '균도사'로 통한

다. 벌써 15년째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각종 흙속 균들을 뽑아내온 그는

균모양만 봐도 종류와 쓰임새 등을 훤히 꿸 정도라고 한다.

흙 1g속에는 방선균, 곰팡이, 세균 등 각종 미생물이 최소 3백만개
이상 들어있다. 아직 인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유용한 세균들이 그야
말로 '득실'거린다고 보면 된다. 종근당 전형식 실장은 "아직도 미생물
을 무조건 병원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종근당에서는 국내외
출장자들이 현지 토양을 채취해 오는 것이 주요 임무중 하나"라고 말했
다.

제일제당 중앙연구소 이철훈 박사도 10여년이상째 '땅 파기'에 매달
리고 있다. 출장길 그의 배낭엔 지도, 흙파는 삽, 각종 용기, 그리고
각종 시약 등이 필수품으로 들어있다. 이박사는 "난지도 같은 쓰레기장
을 비롯, 호수-동굴-하수처리장-분뇨처리장 등 세균이 우글거리는 모든
곳이 바로 신물질의 '성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이박
사가 지난94년 충북 문촌에서 찾아낸 것이 '슈도모나스'라는 녹농균.유
해 곰팡이를 죽이는 능력이 탁월해 제일제당은 이로부터 새로운 농약을
개발하고 있다.

종근당도 지난 92년 지리산에서 찾아낸 'Streptomyces sp.CKD-714'
란 균을 바탕으로 '싸이폴'이란 면역억제제를 상품화했다. 94년 한라산
에서 채취한 'Streptomyces sp.CKD-722'란 균은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
돼 임상 실험중이다.

이처럼 토양미생물로 신물질-신약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
년대. 페니실린, 스트렙토마이신, 테트라사이클린, 반코마이신, 에리스
로마이신, 암포테리신 등이 모두 토양서 찾아낸 세균이나 곰팡이로 항
생제, 결핵치료제, 항암제 등으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고지혈치료제로 개발된 로바스타틴, 면역억제제로 만들어
진 타크로림스 등의 신 균류들이 등장했다. 새로운 균을 찾아내도 이것
으로부터 신물질이 만들어질 확률은 10%내외. 각종 임상실험을 통과하
는 확률은 더 낮아져 최종 4∼5%만이 신농약-신약 등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세계적인 제약-화학회사 들은 새로운 균을 찾기 위해 전세
계를 샅샅이 누벼왔다. 최근엔 남극 등 극지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는
형편. 이에비해, 국내 토양은 아직 외국 회사들의 손길을 덜 탄, 미완
의 성지인 셈.

국내에서는 한라산, 지리산 등 고산지대와 만경강, 섬진강 하구지역
의 갯벌 등이 유력한 후보지로 꼽히고 있다.

(*모태준·taimo@chosun com*)(*차병학기자·swany@chosun 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