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 못따라 방황 일쑤…"부모들은 우리 고민 몰라요" .
최근 회사원 김모(32)씨는 서울 강남역 근처 속칭 '전화방'에
들렀다. "여보세요…." 수화기 속에서는 아직 변성기도 채 지나
지 않은 듯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제 나이가 좀 어린데, 전
화하기 괜찮겠어요?" 라고 운을 뗀 그녀는 자신이 17살이라고 했
다. 그는 이내 "만나줄 수 있느냐"고 묻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요, 아저씨들 하고 여관 가면 용돈 주신다던데…." 목
소리는 앳되게 들렸지만, 말투는 '여러번 해 본' 솜씨였다. 김씨
가 "학생이냐"고 묻자,"그렇다"고 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김씨가
이것저것 물었다.
전화를 건 10대는 여상 1년생이라 했다. 부모는 계시지만, 집
을 나온지 오래됐고 학교 친구 둘과 자취방에서 산다고 했다. 그
렇게 셋이서 돈이 떨어질 때마다 전화방에 전화를 걸어 '돈을 번
다'는 얘기였다.
"그 나이에 무슨 짓이냐"는 물음에는 "뭐 어때요" 하는 대답
이 돌아왔다.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김씨가 자꾸 '엉뚱한' 질문을
하니까, 10대는 그냥 전화를 끊어 버렸다. 김씨는 "전화가 끊기
고 나서 오히려 가슴이 뛰고 멍해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10대들의 '성 패러다임'이 급속히 바뀌고 있다. '고교 졸업'
은 더이상 경계선 역할을 하지 못한다. '전화방 매춘'을 '원조교
제 상륙'으로 해석하기엔 이르지만, 극소수나마 충격적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이른바 모범생을 비롯한 대다수 10대들의 성 관
념도 한해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남자 친구와 뽀뽀하고 껴안는
건 기본"이라는 말이 멀쩡한 여고생 입에서 튀어나온다.
극단적 사례는 주로 유흥업소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지난 3월
부산 한 주점에서는 교복을 입고 40대 남자와 '2차'를 나간 여고
3년생이 적발됐다. 이 여고생은 호텔 앞에서 '남들 눈 때문에'
교복 웃옷만 잠깐 벗었을 뿐이다.
부산지검이 7월 24일 광안리 한 '호스트바'를 덮쳤을 때, 현
장에 있던 남자 접대부 9명중 7명이 10대였다. 다들 중·고교 중
퇴생인 이들중엔 16살짜리도 끼어있었다. 부산지검 형사4부 이종
환 부부장은 "교복입은 접대부나 10대 호스트 모두 전혀 죄의식
을 느끼지못하더라"면서 "대부분 학교 생활을 포기한 아이들이고,
'놀면서 돈도 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10대들의 '브레이크 없는 성의식'은 학교 현장에서도 발견된
다. 남녀간의 노골적 교제가 가출로 이어지는 사례도 종종 벌어
진다. 서울 Y중학교 한 교사는 "'문제아'였던 여학생 하나가 '육
체관계'를 미끼로 후배 세명을 꾀어 혼숙을 한 적도 있다"며 "아
무 거리낌없는 아이들이 너무 놀라워 교사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
다"고 했다.
이런 사례들을 일부 '문제 학생'들의 일로 치부하더라도, 대
부분 10대들의 성 의식이 급변하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10대들
의 성 패러다임은 과거의 '어렵고 비밀스러운 것'에서 '내가 책
임지고 즐기는 것'으로 바뀌는 양상이다. 기성세대가 이같은 변
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제대로 된 성교육도 이뤄지지 않아 10
대들은 성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 84년 서울 YMCA 청소년상담실이 문을 열었을 때는 10대
들의 성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곳 상담 내용은 신체 변
화나 자위, 혼전 순결은 지켜야 하는가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90
년대 중반 이후부터 성폭력과 성병, 임신 후유증 등을 묻는 상담
이 크게 늘었다. 90년대 초반까지 "자위 행위를 했는데 죄의식이
든다"는 전화가 왔으나, 요즘엔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 자위 행
위냐"는 전화가 걸려온다.
고교생쯤 되면 이성 교제는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스킨
십도 어느 정도까지는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이 많다. 남녀 합반
학교에 다니는 조철호(15·서울 S고1)군은 "1학기초엔 서로를 남
녀로 생각해서 어색했는데, 요즘은 그냥 친구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다"면서 "아직 성인이 아니어서 스킨십은 자제해야 겠지만,볼
에 하는 키스나 가벼운 포옹 정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
기"라고 했다. 조군은 "여자 친구와 학교 벤치에 앉아 이야기하
면서 노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했다.
● "키스나 포옹은 자연스럽다"
서울 YMCA 청소년상담실에 찾아온 한 고3 여학생은 "내 남자
친구는 손도 안잡고 아무 스킨십이 없다. 우리 또래에서 이성교
제할 때 키스는 기본인데도 그 아이는 부모님 안계실 때 우리집
에 와서 자고 가면서도 내 몸에 손 하나 안댔다. 아무래도 나를
좋아하지않나 보다"며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자타가 모범생
으로 공인하는 남학생이 일기장에 써둔 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보고 깜짝놀란 어머니가 상담을 해온 경우도 있다고 한다.
10대들은 또 이성 교제를 결혼이나 사랑과 별개의 문제로 받
아들이는 경향이 짙다. 연세대 사회학과 조혜정 교수는 "결혼과
성과 사랑을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은 '오늘 일해서 나중에 성공
하겠다'는 개발시대의 사고방식"이라면서 "10대들은 현재의 가치
를 중시하는 세대이며,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의 이런 변화에 적
응하는 것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10대들의 성 관념이 빠르게 변하는 원인을 먼저
신체적 요인에서 찾고 있다. 청소년들의 발육·영양상태가 좋아
지면서 여학생은 초등 4∼5학년, 남학생은 초등 5∼6학년이면 2
차 성징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신적 발육도 예전에 비해
크게 앞당겨졌다는 설명이다.
10대들이 갖가지 왜곡된 성 관련 정보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
돼있는 것도 큰 이유다. 누구나 아무 제약 없이 인터넷 포르노사
이트에 접근할 수 있고,PC통신 대화방은 '야릇한 대화'로 가득하
다.
일부 TV 프로그램과 인쇄매체들도 10대들이 '잘못된 정보'를
얻는 소스다.
여중·고생이 주 독자층인 몇몇 월간지 최근호 목록만 봐도,
'남자들의 섹스에 대한 본심', '남자 친구에게 키스해달라는 신
호 보내는 법', '니네 고딩(고등학생)들 어떻게 화장하니?' 식이
다. 자신을 '무슨 고교 몇학년 누구'라고 밝힌 남학생이 사진과
함께, 호출기와 휴대폰 번호를 싣는 잡지도 있다.
● 청소년 잡지들도 성적충동 자극
이 밖에 무분별한 일본문화 유입도 10대들을 자극한다. 외제
악세서리를 사기 위해 몸을 파는 일본 여고생 '고갸르족' 패션은
이미 상륙했다. 짧은 교복 치마에 염색한 머리, 맨 다리에 희고
헐렁한 양말이 그것이다.
문화평론가 김창남씨는 "과거 권위주의적 정치 질서하에서 억
압된 육체와 성의 담론은 병적이고 불건강하게 변질됐고, 결국
'빨간 마후라'를 출현시켰다"면서 "신세대가 문화의 중심으로 등
장하면서 육체를 통한 자기 표현의 새로운 문화가 폭발적으로 나
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10대들의 성 문화를 올바로 이끌 기
제는 아예 없다시피 하다. 성교육은 답보 상태고, 사회적 장치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대한가족협회가 97년 한해동안 상담한 결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해 물어온 여성 상담자 1천1백24명중 20세
이하가 절반 이상(60.1%)인 반면, '피임방법'에 물어온 상담자 4
백56명중 20세 이하는 고작 12.3%였다.
연세대 교육학과 한준상 교수는 "10대들의 성 문제를 부정적
으로만 볼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물·사회학적으로 자연스럽게 받
아들여야한다"면서 "'내가 잘못하면 큰 피해를 보고 고생하게 된
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쓰임새 있는 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지
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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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3천명 성의식 조사
1백명중 7.5명 성경험…"학년 낮을수록 개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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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고생들 1백명중 7명 이상이 성관계 경험이 있으며,
4분의 1 이상은 키스·애무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이
성 교제를 해본 여고생의 절반 이상이 도중에 헤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가족협회가 작년말 전국 64개 여고생 3천1백34명을 상대
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4.4%가 "이성 교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중 58.2%가 "지금은 아니다"라고 대답, 이성 교제를
중단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이들은 이성 교제시 허용 가능한 스킨십에 대해 '가벼운 뽀뽀
(44.7%)', '키스와 애무(19.7%)'라고 대답했으나, 실제 키스·애
무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26.8%, 성 관계를 경험한 학생이 7.5%
여서 대조를 이뤘다.
성 경험자중 가장 많은 숫자(38.7%)가 "상대방의 강요로" 관
계를 했고, 32.3%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11.2%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첫 경험 시기는 고교때(57%)-중
학교(28.1%)-초등학교(11.1%) 순이었다.
자위 행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학생은 62.3%로 절반을
넘었으나, 15.2%만이 자위 행위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최초
자위 행위시기는 중학교(50.3%)-초등학교(28.5%) 순이었다. 또
응답자 절반 이상(61.1%)이 음란 영화나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고 대답했다.
여고생들은 그러나 잘못된 성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태아의 성은 언제 결정되는가"라는 질문에 37%가 "임신 3개월
전후"라고 엉뚱한 대답을 했으며, "모르겠다"고 한 학생도 21.3%
나 됐다. "수정과 동시에"라고 정답을 말한 학생은 26.5%에 불과
했다. 이에 따라 매겨진 여고생들 성지식 점수는 1백점 만점에
62.26점으로 낮았다. 그러나 이는 96년 성문화연구소가 조사한
남고생 성지식 점수(53.2점)보다는 높은 점수다. 대한가족계획
협회는 "여고생들 성의식은 저학년으로 갈 수록 개방적인 경향을
띠고있다"면서 "성교육이 필요의 수준을 넘어 필수과정으로 정착
돼야 하며, 특히 부모들에 대한 성교육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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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이성 교제는 어떻게
"여럿이 자연스레 어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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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이성 교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처음에는 또래 집단에
서 친구 사이로 우정을 나누다가 마음에 맞는 친구와 자연스럽게
이성 교제로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청소년들이 개방적으로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우선 학
교. 같은 학교 특별활동반에서 남자 친구를 만났다는 최선미(17·
서울 서초고2)양은 "요즘은 선생님들도 학교에서 이성 친구 사귀
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해 주신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 중학교
2천7백20곳 중 58.4%인 1천5백88곳이 남녀 공학이며, 고교는 1천
8백92곳 중 46.1%인 8백72곳이다. 교육부는 앞으로도 중고교 남
녀 공학 비율을 점차 높여나갈 계획이다.
학교 외에는 교회 등 종교단체가 대표적. 서울 서초동 '사랑
의 교회' 고등부 최영진 교사는 "교회 친구로 만났다가 이성 친
구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현재 이 교회 고교생 5백
80여명은 성가대, 드라마팀, 독서모임 등 다양한 소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10∼11일에는 경기 의정부시 수해 지역에서
남녀 고교생 1백80여명이 자원봉사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조학
수(17·서울 언남고2)군은 "교회에서 여자 친구를 사귄 뒤 다른
친구들이 불편해 할까봐 몸가짐을 더 조심하게 됐다"고 했다.
이 교회는 아예 공식적인 '만남의 시간'을 만들기도 했다. 남
녀 고교생들이 강당에 마련된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아 식사를 하
면서 정식으로 자기 소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한다. 옷차
림도 남학생은 넥타이, 여학생은 정장을 하도록 했다. 이 교회
홍정기 목사는 "학교나 종교 단체에서 남녀 청소년들이 공개적으
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