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청원 사안별로 심의…정치인·고위공직자는 거의 해당안돼 .


미국과 프랑스는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 국가이지만 우리처럼 사면권
을 남발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반면 일본은 '정치 후진
국'이라는 이름답게 우리처럼 사면권이 남발돼 비난 여론이 일고 있
다. 외국의 사면·복권 실태를 살펴본다.


미국에도 범죄자에 대한 대통령의 사면권이 가끔 행사되는 경우가
있으나 한국처럼 수천명씩 집단적으로, 또 국경일마다 주기적으로 남발
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미국 헌법 2조 2항 1절에 의하면 미 대통령은 죄를 범한 사람을 사
면할 수 있는 사면권(Presidential Pardon)을 갖고 있다. 또 이와 성격
이 유사한 대통령의 권한으로 범죄에 대한 처벌을 연기하는 집행유예권
과 형을 감면하는 감면권도 있다.

그러나 미 대통령의 사면권은 매우 제한적으로 행사되고 있다. 클린
턴 대통령의 경우 재임 6년 동안 74명에 대해 사면, 3명에 대해서는 감
면을 실시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중 정치적 거물이나 고위 공직자
들은 거의 없다.

언론에 대서 특필되는 사례도 거의 드물다. 죄목을 살펴보더라도 세
금포탈, 우편사기, 위증, 자동차절도, 예금횡령 등 다양한 잡범들이 대
부분이다.

사면 절차도 아주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개인들이 대통령에게 개별적
으로 청원을 해서 사안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처럼
정당이 사면 후보자들을 일괄적으로 추천한다거나, 법무부가 전국의 모
든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종합 심사를 해서 대상자들을 선별하는 일은
상상할 수가 없다.

미국 대통령들이 이처럼 사면권 행사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까닭은 지난 74년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얻은 교훈 때문이다. 워터게이
트사건이 터지면서 당시 닉슨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연루됐음이 드러
나자 닉슨 대통령은 의회의 탄핵 직전 스스로 사임했다.

그리고 사건 당시 부통령이자 그의 후계자인 포드 대통령은 닉슨 대
통령이 이 문제로 인해 처벌될 처지에 이르자, 범죄 사실에 대한 조사
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인 74년 9월 8일 닉슨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을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의 측근 중 37명은 유죄를 인정했거
나 유죄 판결을받았지만 오직 대통령만은 사면을 받았던 것이다.

포드 대통령의 사면은 미국내에서 엄청난 반발과 물의를 야기시켰
다. 사면 발표날 백악관에서 조차 제럴드 러호스트 대변인이 이에 항의,
사임했고 위스콘신 주민 2천여명이 즉각 항의 데모를 벌였다.

미 사법부도 이에 항의, 복역수들을 대거 석방하는 소동이 벌어졌
다. 당시 자신이 담당한 형사 피고인을 '멋대로' 석방한 캘리포니아의
한 법관은 "국가를 망칠 뻔한 사람이 사면될 수 있다면 이 피고는 석방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결국 포드 대통령 자신도 이 사면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어 76년의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조차 할 수 없게
됐다.

후임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받아 비난을 한몸에 받은 닉슨 대통령
자신도 재임기간 중 사면권을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베
트남전에서 양민을 학살한 혐의로 군법재판소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제임스 캘리중위를 감옥에서 풀어주기로 결정했던 것. 닉슨으로선 베트
남전쟁을 수행하는 군부와 국내 보수파들을 의식한 결정이었으나 국민
들과 언론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미 쉐퍼드대 이항열 교수(정치학)는 "불과 몇 십만원을 훔친 소매치
기도 몇년씩 형을 사는데 몇 십억원을 뇌물로 받은 국회의원과 고위 공
직자들을 풀어준다면 한국에 과연 정의가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
문스럽다"면서"미국에서는 정치인이 한번 중죄 판결을 받으면 정치 생
명이 끝나는데, 한국에는 정치인들에 대한 사면이 워낙 잦다보니 정치
문화를 후퇴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프랑스에는 국경일 사면이 없다. 성탄절 사면도 없다. 이들에게 최
대 국가 명절인 '카토르즈 주이예(7월 14일)', 즉 혁명 기념일에 누구
누구가 감옥에서 풀려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이날은 죄 지은
자를 감해주는 날이라기보다는 주로 표창에 의미를 많이 두고 있다.

또 정권이 바뀐 후에 정치범을 석방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원
래 정치적 보복에 의한 수감자가 없다는 이유도 있다.

그렇지만 프랑스에도 '사면'은 있다. 7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이
사면을 많은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기도 한다. 그것은 임기 7년의 신
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에 베풀어지는 일종의 관례로 굳어진 행사다.

지난 95년 5월 자크 시라크 현 대통령이 고 프랑수아 미테랑의 뒤를
이어 당선된 직후 프랑스의 국내 여론은 사면과 관련돼 심각한 논란을
벌인 일이 있다. 이 논란은 사실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기 전부터 있었
던 것이었다.

요지는 신임 대통령 당선자도 관례에 따라 교통사범을 일괄적으로
'사면'하려고 할터인데 이것이 과연 민주 시민 사회에 합당한 일이냐에
관한 것이었다.

사면 찬성논자들보다는 반대론자가 많았다.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민
주 시민의 규율이 7년마다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통령 당선자가
탄생할 때마다 범법자의 명백한 범법 사실에 대해 '없던 일'로 한다면
앞으로 누가 법질서를 지키려고 하겠느냐는 주장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있기 1년 전쯤부터 주차 위반 과태료 납부 실적이 현
저히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시민들의 주차 및 교통질서 의식도 함
께 저하되는 현상이 빚어졌다. 조금만 참으면 '없던 일'로 된다는 의식
때문에 운전이 거칠어졌고, 주차 위반 스티커를 현장에서 찢어 없애는
모습도 흔히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말들이 많았다. 이번만은 교통 사범에 대한 사면이
없을 것이다, 아니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아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 때
문에 7년 주기의 교통 사범 사면이 이제는 중단될 것이다 등등…. 또
교통사범을 사면해주되 고의적 사범 및 인명사고 사범은 그대로 묶어두
고 경범만 사면하는 것이 합당하는 얘기도 있었다.

결과는 95년 하반기에 특별한 중범을 제외한 대부분 교통 사범의 사
면이었다. .



일본도 대규모 사면이 남발되는 나라에 속한다. 특히 2차대전 전에
는 사면이 천황의 전권 사항에 속해 원칙도 제한도 없었다. 전후 신헌
법 하에선 내각이 결정해 천황의 인증을 받도록 바뀌었지만 정부 또는
집권당이 사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은 전후 12차례의 사면을 실시했다. 패전한 45년 10월 대사면을
시발로 신헌법이 공포된 46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된 52년,
유엔에 가입한 56년, 메이지 유신 1백주년이던 68년, 미군 점령하의 오
키나와가 본토로 복귀한 72년 각각 대규모 사면이 단행됐다.

이와 함께 일본에선 '황실 사면'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천황 즉위
및 사망, 황태자 결혼 등 황실 경조사 때마다 '선심용' 사면이 실시돼
왔다. 아키히토 천황이 결혼한 59년, 쇼와 천황이 사망한 89년, 아키히
토천황 즉위 이듬해인 90년, 나루히토 황태자가 결혼한 93년 등 뻑하면
대사면을 실시했다.

사면 규모는 적게는 5만∼6만명에서 크게는 1천만∼2천만명에까지
이른다.

역대 최고 규모는 메이지 유신 1백주년을 기념한 68년으로 정령사면
1천9백만명, 개별사면 4천86명이었다. 붕어로 표현되는 쇼와 천황 사망
당시도 1천만명이 넘는 대사면이 단행됐다.

때문에 선거 때 위법·탈법을 자행한 전과자들을 대량으로 복권시키
는 등 사면제도를 남용한 나머지 국민의 반발을 사고 있다. 특히 93년
황태자 결혼을 즈음한 사면 때는 '대사면 폐지론'이 나올 정도로 여론
이 험악했다.

그럴 만한 게 바로 전해인 92년은 정계 실력자들이 대거 연루된 사
가와규빈 뇌물 스캔들이 터졌다. 가네마루 자민당 부총재가 5억엔 부정
헌금 수수에도 불구하고 20만엔 벌금형을 받으면서 금권부패 정치에 대
한 국민적 혐오감이 극에 달했던 때다. 이미 89년, 90년 두차례 사면에
서 2만여명의 선거법 위반자들이 '정치적 부활'에 성공했다. 법대로라
면 5년간 공민권이 박탈되지만 1∼2년 안에 '없었던 일'이 된 것이다.

결국 황태자 결혼식 때 대규모 사면 계획은 철회되고 개별 사면 케
이스로 1천270여명만이 구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