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에 있는 한일전기 본사에 들어가면 시간이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같은 느낌이 든다. 종업원 1천5백명에 올 매출액이 2천억원
에 육박하는 만만치 않은 규모를 가졌지만, 분위기가 가족적이고 검소하
기 때문. 칸막이도 없는 넓은 사무실에서 부사장부터 일반사원까지 서
로 얼굴을 맞대고 일한다.
근 20년 돼 보이는 철제 책상이나 의자에는 근검절약의 냄새가 짙
게 배어있다. 설립 이후 해고를 한 적이 한번도 없을 정도로 한번 들어
온 사원은 끌어주고 밀어준다. 외부에서 영입한 간부가 없다는 게 또다
른 특징.
한일은 광고모델도 오래된 '장맛'을 쓴다. 키다리 서수남과 장다
리 하청일은 약20년 전부터 이 회사가 생산하는 자동펌프와 선풍기의 광
고모델로 활약중이다.
"스캔들이 없는 한 21세기까지 두 사람은 우리 회사 광고모델로 남
을 것"이라고 한양락 영업본부장은 말하고 있다. 회사 경영방침도 이런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시적으로 크게 되기보다는 대를 이어 오래가는 회사를 만들기를
바란다"고 권태완(61) 사장은 밝혔다.
설립된 지 33년이 돼 일부에서는 '사업영역을 확장해 더 키울 수
있었지 않았느냐'고 주장하지만 권사장은 "그동안 없어진 회사가 더 많
다"고 말했다.
매출 가지고 경쟁하기보다는 회사의 내용과 수명으로 경쟁하고 싶
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일에서 만드는 웬만한 제품은 한국공업규격
(KS)은 물론 일본공업규격(JIS)보다 엄격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애프
터서비스가 필요하지 않게' 잘 만드는 게 이 회사의 품질관리 원칙.
한일전기는 지난 64년 한-일수교가 임박해지자 재일교포인 김상호
회장과 권사장이 한국으로 건너와 설립했다.
당시 일본에서 최고품으로 치던 산요세탁기를 주문자상표부착방식
(OEM)으로 만드는 종업원 3백명 규모의 회사를 경영하고 있던 김회장은
지금도 일본에 5백명 규모의 세탁기회사를 운영중이다.
김회장은 68년 일본자본을 들여와 신한일전기도 세우고 한일전기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권사장은 '생산을 통해 국가 사회에 봉사한다'는 사시를 금과옥조
같이 지키고 있다. 선풍기와 펌프 등을 주생산품으로 정한 것도 당시
한국이 이들 제품에 들어가는 모터를 모두 수입하고 있었기 때문.
현재 부천공장은 한해 1백60만대의 가정 및 농업-산업용 펌프를 생
산중인데 단일 펌프공장으로서는 세계에서 1, 2위를 다툰다.
< 심재율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