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12월 당시 경제부총리는 우리 경제 상황에 대해 경기 하
강 국면에서도 소프트랜딩이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95년 9%에 이
르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96년 7%, 97년 6%로 조금씩 낮아지면서
경제에 큰 무리가 없이 불황 시기를 지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
다. 96년 8월 자리를 이어받은 부총리는 『경제 상황이 어렵다』
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위기론을 언급했다. 7개월 뒤인 97년 3월
취임한 부총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경제가 「대단히」 어렵다』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 경제에 대한 위기 의식이 점점 심각하게
거론된 셈이다.

몇가지 거시 경제 지표가 95년 하반기 이후 경제 상황을 또렷이 드러
내 준다.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95년 3분기 9.8%이던 경제
성장률은 4분기 6.8%로 크게 떨어졌다. 이후 96년 1분기 7.9%로 약간
회복세를 보이다 2분기에 6.8%, 3분기 6.4%로 다시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교역 조건 악화로 기업인들의 체감 경기는 경기는 더욱 어
려운 상황이다.

산업 생산 증가율도 경제 성장률과 함께 95년 3분기를 정점으로 하락,
94년과 95년 각각 11.1%, 11.9%이던 증가율이 작년에는 8.4%로 떨어졌
다. 기업들의 생산 활동이 그만큼 둔화됐다는 이야기다. 건축 경기 침
체와 비싼 공장 땅값 때문에 지난해 공업용 및 상업용 건축 허가 면적
은 1년 전보다 각각 13.2%, 5.9%씩 감소했다.

●실업률·제조업 평균 가동률 『불길한 조짐』.

수출 및 수입 증가율은 95년 3분기 30%와 32%의 높은 비율을 차지하
다 4분기 이후 모두 둔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출 감소폭이 수입을
훨씬 능가해 95년 수입 증가율은 11.2%로 떨어진 반면, 수출 증가율은
3.7%까지 하락해 적자폭이 크게 벌어졌다. 금액 면에서도 93년 경상수
지는 3억8천만달러 흑자를 기록했으나, 94년 45억달러 적자로 반전한뒤
95년 89억달러, 96년 2백37억달러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국제수지 적자와 관련,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으나 외채 규모도 매
년 크게 늘어나 작년에는1천억 달러를 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95년
4.5%이던 소비자물가 증가율도 작년에는 5%로 올라 경기 불안에 한몫을
했다.

일본과 경합도가 높은 철강-조선-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 등 5대 주
요 업종은 최근 엔화 약세라는 돌출 변수를 만나 수출이 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새해 들어 노동법 관련 파업과 한보 부도 사태는 하강 국면 경제를
더욱 곤두박질치게 하고 있다. 이 발표한 지난 1월 산업 활동 동
향을 보면산업 생산은 파업 및 부도 사태에 따른 생산 차질(약 2조원)
로 1년 전보다 5.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7%로
93년 1월(76.5%)이후 4년만에 가장 낮았고, 반도체·석유 정제업 판매
부진으로 작년말 14.5%이던 재고 증가율이 15.6%로 높아졌다. 불황 골
을 반영하듯 내수용 소비재 출하도 자동차·모피·의복 등을 중심으로
3.1% 줄어 85년 2월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다.

수요 감소와 맞물려 기업체 투자 활동도 크게 위축됐다. 국내 기계
수주는 92년 8월 이후 최악 국면을 보였으며 국내 건설 수주 증가율도
1년전보다 뚝 떨어졌다. 실업도 예외는 아니다. 불황으로 일자리가 줄
어 지난 1월 실업률이 2.4%로 94년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월
현재 55만1천명이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12개월
만에 12만3천명(28.7%)이나 증가한 수치다. 이같은 각종 통계 지표들이
우리 경제 적신호를 숨가쁘게 알리고 있다.

박종원 조사국장은 『올 들어 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된 것은
노동법 관련 파업으로 자동차 기계 장비 등이 생산 차질을 빚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파업이 재발하지 않으면
경기는 오는 6월쯤 바닥에 닿은 뒤 다시 상승 국면을 탈 것이라고 전망
한다. 작년부터 시작된 경제 난국에 숨통이 터진다는 예측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 위기론은 단순히 현시점 경제 침체 원인을 자본주
의 경제의 경기 순환론적 「운명」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데 심각성이 있
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국제수지 문제. 정부는
반도체 값 하락과 자동차 업계 파업 등으로 수출이 줄어들고 원유 수입
이 계속 증가해 국제수지가 나빠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 1∼2월 반
도체 이외 품목은 수출이 2.7% 증가한 만큼 수출 감소에 「반도체 쇼크」
영향이 컸다는 주장이다.

●각종 생산 요소들, 국제 경쟁력 상실.

하지만 통산산업부 장관과 차관 등 새 경
제팀은 이러한 해명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가격이나
급격한 유가 변동은 일시적인 돌출 변수인데, 이 돌출 변수에 국제수지
가 좌우된다는 것은 경제 구조 불량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오
히려 이러한 이상 변수가 출현해도 국제수지 측면에서 흑자를 기록할
수 있도록 구조 개혁과 체질 개선, 경쟁력 강화 작업을 벌여가야 한다
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작년에 20대 사치성 소비재 수입이 95년보다
48%나 늘어난 점, 여행 수지가 급속하게 적자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점,
지난해 외채 증가율이 세계 1위를 기록한 점 등이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거론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전문가들은 국제수지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각종
생산 요소들이 국제 경쟁력을 상실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높은 임금
과 금리·땅값은 기업들의 생산 발목을 붙잡고 있다. 사람에 따라 우선
적인 해결목표를 금리 인하에 두거나 임금 상승 억제에 두기도 하지만
기업들의 국내 생산 요소 조달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 경쟁력 향상의 족
쇄가 되고 있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의 한 관리는 『낙후한 금융 산업, 비탄력적 노동 시장, 엄
격한 토지 규제에 따른 공장 용지 확보 어려움, 관료 조직 비대화와 정
부의 지나친 간섭이 경쟁력 약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엄봉성 연구조정실장도 같은 맥락에서 『경상수지 적
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물가 안정 바탕 위에 임금, 금리, 땅값 등 생산
요소비용을 안정시키는 조치가 앞서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 개혁을 위
한 여러가지 추진 대안 중 정부 인원 축소, 은행 등 금융 기관의 주인
의식 향상과 경영 건전성 확보는 가장 시급한 사항으로 꼽힌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는 조만간 대량 실업 사태라는 형태로 우리
피부를 파고들 가능성이 높다. 작년부터 상승일로인 실업률이 이같은
예측을 뒷받침한다. 정책 입안자들은 정부가 올해, 기업 도산과 실업이
냐 아니면 국제수지 방어냐 하는 양자택일 문제에 부닥칠 것이라고 전
망한다. 심각한 실업은 경기 부양책을 쓰도록 독촉할 것이고 이는 결국
물가 상승과 경상수지 악화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