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회장 지원요청 "집안피해" 거절/조선대 운영때 기부금 거둬 말썽
"큰산(덕산) 뒤에 큰손 이 있었다." 몰락한 덕산그룹 박성섭회
장의 영욕에는 모친 정애리시씨(71)가 함께 해왔다. 그의 뒤안에서
항상 정씨가 보이지 않는 힘 으로 작용했기 때문. 경기고-서울법대에
보낼만큼 아들(성섭)을 잘 가르치고 기업군까지 떼주었지만, 이번 부
도사태에선 더이상의 자금지원을 딱잘라 거절한 것도 바로 정씨였다는 것
. 고려시멘트 계열기업을 이끌고 있는 막내 성현씨에게도 정씨의 영향
력은 절대적이라고 한다. 성현씨가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우연히 던진 말
은 정씨의 위상을 새삼 확인해주고 있다. "고려시멘트 법정관리결정을
단독 결정했는가"라는 물음에 "가족과 상의했으며 가장 중요한 분 이
결정했기 때문에 실행 가능하다고 본다"고 답변했다. 가장 중요한
분 은 어머니 정씨를 말한다는 것. 박성섭회장은 부도직전 정씨를 찾
아가 긴급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씨는 더이상의 화가
가내에 미치지 않게 막으려고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박회장은 지난달
7일부터 27일까지 성현씨가 이끄는 고려시멘트 계열기업에서 3백20
억원을 지원받았다. 지원을 지시한 것도, 최종 지원중단 결정도 모두
고려시멘트의 대주주인 모친 정씨의 결정이라고 한 측근은 전했다. 정
씨는 5남3녀(1명은 사망)중 차남과 막내인 성섭과 성현을 경쟁시켰다
. 이른바 투 톱 작전을 쓴 셈. 80년대말 자녀들에게 사업군을 물
려주면서 무슨 이유에선지 장남 성철씨를 주력기업군에서 제외시키고 차남
과 막내를 전면에 내세웠다. 정씨는 이화여전 음악부를 졸업한 평양출
신. 대학시절 일본공연때 이를 지켜본 박철웅 전조선대총장이 프로포즈,
결혼하게 됐다는 것. 그녀는 5.16 직후인 61년, 총장과 이사장
겸직을 금지하는 규정이 생기면서 남편 박철웅씨(82) 대신 조선대이
사장으로 취임, 80년까지 재임했고 이후는 이사자격으로 학교운영에 참
여했다. 호남-제주권 7만2천여명의 성금으로 설립된 것으로 알려진 조
선대학교의 초대총장으로 취임한 박철웅씨는 60년대 중반이후, 학생들로
부터 "학교를 비민주적으로 운영한다"는 비난을 받아오다 학교를 내주게
됐고 88년 2월 관선이사진이 파견되기에 이르렀다. 정씨의 축재는
조선대 경영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한 예로 80년 8
월 국보위가 정씨를 연행, 조사하며 기록한 조서에 보결학생을 받아들이
고 22억원의 기부금 을 거둬들였음을 일부 자인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