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성영화의 걸작 검사와 여선생 은/현재 원본이 훼손된 상태/
그러나 조선일보사와 한국영상자료원의/디지털복원작업이 성공하게 되면/최
근 촬영한 영화와 같은/화질을 가지게 된다 한국영화의 고전 검사와
여선생 이 47년만에 새로 태어난다. 영화탄생 1백주년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는 조선일보사와 한국영상자료원은 컴퓨터 특수효과 전문업체인
LIM과 함께 소실될 위기에 놓인 영화 검사와 여선생 (1948년작
)을 디지털기술로 복원하는데 앞장섰다. 모두 40분 길이의 흑백영화
검사와 여선생 은 무성영화라는 점을 빼곤 촬영이나 편집 등 제작기
술면에서 동시대에 개봉된 외화 애수 나 카사블랑카 에 견줄만한 걸
작으로 평가받는다. 또 당시 서울거리와 서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영상자
료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난 1월초부터 시작된 검사와
여선생 의 디지털 복원작업은 현재 20% 정도 진척을 보고 있으며,
오는 13일 개막될 시네마 & 뉴미디어 쇼에서 복원된 필름의 일
부가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건달 남편의 칼부림
을 피하려다 그를 죽이고 살인죄로 재판을 받는 주인공 영애. 운명의
장난처럼 그녀의 담당검사는 소학교 선생시절 극진히 돌봐준 가난했던 학
생이다. 결국 은혜를 잊지 않은 검사의 노력으로 영애는 무죄석방된다.
이런 줄거리는 당시 장안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마지막 재판장면이 압
권이다. 6.25전쟁 와중에 원본이 없어진 검사와 여선생 은 유명
한 변사 신출씨가 자기 집에 보관하고 있던 낡은 16밀리 복사본을 지
난 90년 영상자료원에 기증함으로써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영상자료원
은 이 필름으로 35밀리 원판을 만들고 신씨의 육성으로 변사내용도 녹
음해 놓는등 영화복원에 노력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이 필름은 상처투성이였다. 1919년에 만들어진 미국영화 국가의
탄생 을 가끔 방영하는 국내 방송사가 그보다 30년 뒤에나 만들어진
검사와 여선생 을 그동안 방영하지 못했던 까닭도 엉망진창인 화질 때
문이었다. 사실 검사와 여선생 뿐아니라, 현재 한국영화들의 보존
상태는 참담한 실정이다. 작년까지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는 모두 4천7
백여편. 이 가운데 필름이 남아있는 영화는 절반이 조금 넘는 2천5백
52편 뿐이다. 자유만세 (1946년) 이전의 작품은 하나도 남아있
지 않다. 남아있는 필름조차 제대로 보존된 것은 드물다. 제작한지
12년밖에 안된 이두용 감독의 물레야 물레야 의 경우 원본필름이 심
하게 훼손되어 더 이상 복사가 불가능한데다 그나마 양호한 복사본조차
남아있지 않은 형편이다. 국제필름아카이브연맹(FIAF)의 보고서에
따르면 원본필름을 30회 이상 복사할 경우 원본 자체의 손상을 피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일단 촬영해서 현상한 원본필름은 NG부분까지 전
혀 손대지 않은채 그대로 보관하고 다른 원본을 하나 더 만들어 편집하
는게 상식으로 돼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원본을 그대로 편집하는
데다 흥행에 성공할 기미만 보이면 마구 복사본을 찍어내고 있다. 9
3년작 서편제 의 원본필름에서 벌써 이미지가 훼손되고 필름이 휘어지
는 현상이 발생했다. 한국영화를 통틀어 미국처럼 원본을 제대로 보관하
고 있는 영화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뿐. 결국 나머지 한
국영화들을 원상태대로 감상하려면 모두 디지털 복원을 해야 한다는 결론
이다. 디지털 복원에 드는 비용은 편당 3억~5억원. 현재 정부가
영상자료원에 필름보존 명목으로 배정하고 있는 연간 예산과 맞먹는다.
만약 2천5백여편의 현존 필름들을 모두 디지털기술로 복원하려면 어림잡
아 1조원 안팎의 거금이 필요하다. 정부차원의 인식전환 없이는 불가
능한 형편이다. 설기환 영상자료원 자료부장은 "훼손된 필름을 기존 방
식대로 보관해본들 날이 갈수록 상태만 악화될 뿐"이라며 "더 이상의
손상을 막고 원상태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디지털기술로 복원하는 것이 유
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영상복원
/아날로그신호를 변환/필름이미지 완벽 재생 영화필름의 디지털 복원을
위해서는 값비싼 특수장비들이 필요하다. 미국 코닥사가 개발한 시네
온 이나 영국 퀀텔사의 도미노 등 수십억원대의 컴퓨터 특수효과 장비
들은 필름의 아날로그 이미지를 모두 디지털 신호로 바꾸어 컴퓨터에 읽
어들인 다음 일일이 보정과정을 거쳐 다시 필름으로 출력해내는 일련의
작업을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해낸다. 최근 월트디즈니가 코닥에 의뢰해
복원한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1937년작)는 시네온이 없었다면
엄청난 수작업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이번에 국내 최초로 디지털 복원
되는 검사와 여선생 도 LIM이 도입한 도미노 를 동원해 이루어진
다. 디지털 복원은 필름에 난 상처를 지우는 일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어 이전의 검사와 여선생 을 보면 당시 서울거리엔 까만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진다. 필름의 긁힌 상처 때문이다. 이런 상처들을 모두 지우
기만 해도 영화는 훨씬 깨끗해진다. 다음은 뭉개지거나 없어진 이미지
를 살려내는 작업. 눈썹 부위 검은색이 심하게 번진 주인공의 얼굴을
클로스업한 5초 짜리 장면이 있다고 치자. 거기서 그래도 눈썹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한장의 필름을 골라 마치 눈썹화장을 하듯 다듬은
다음 나머지 필름의 눈썹을 모두 지우고 새로 만든 눈썹을 남겨놓으면
된다. 흑백영화 화면의 명암을 복구시키는 일도 만만치 않다. 컬러영
화라면 색깔을 다시 칠해주는 것만으로 웬만큼 명암이 살아나지만 검사
와 여선생 은 조명이나 햇빛으로 생긴 명암을 상상력을 동원해 다시 그
려넣어야만 평면적인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있다. 현재 LIM은 이
사업에 전문디자이너 3명을 투입하고 컴퓨터 장비들을 모두 가동시키고
있지만 완전복원에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의 복원에는 40여명의 인원과 시네온 등 고성
능 워크스테이션이 총동원돼 꼬박 4주가 걸렸다. 게다가 검사와 여선
생 의 필름상태가 워낙 나쁘다는 점을 감안하면 6개월도 빠듯하다는 설
명이다.
입력 1995.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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