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在美) 한국 과학자가 바다의 해조류와 해초를 모방해 미세 플라스틱을 크기에 상관없이 모두 잡아내는 그물을 개발했다. 생태계는 물론 인간까지 골병들게 만든 미세 플라스틱을 없앨 방법을 자연이 제공한 것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화학생물공학과의 올린 벨레브(Orlin Velev) 교수와 홍혜린 박사 연구진은 "해조류와 해초에 미세 플라스틱이 엉키는 것을 모방해 담수와 해수에서 다양한 크기의 미세 플라스틱 입자를 포획하는 그물을 개발했다"고 5일(현지 시각)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7일자에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전 세계에서 해마다 800만t씩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유입된다고 추정된다. 미세 플라스틱은 이들이 분해되지 않고 크기만 5㎜ 이하로 작아진 것을 말한다. 심해에서 남·북극, 알프스 고산지대까지 지구 곳곳에서 발견될 뿐 아니라, 먹고 마시는 음식과 물, 일상용품에서도 나온다. 미세 플라스틱은 입자가 작으면 뇌혈관장벽(BBB)까지 통과할 수 있어 치매와 뇌졸중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모자반 뗏목과 해초잎 공에서 착안
홍혜린 박사는 바다를 떠다니는 모자반 뗏목과 해변에서 발견되는 넵튠 볼에 플라스틱 쓰레기와 입자들이 엉키는 데서 영감을 받아 나노미터(㎚·10억분의 1m)에서 밀리미터(㎜) 크기까지 다양한 플라스틱 입자를 한 번에 포집할 수 있는 그물망을 개발했다.
갈조류인 모자반은 공기주머니가 있어 거대한 뗏목처럼 바다 위를 떠다닌다. 그 과정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나 입자와 엉켜 가둔다. 넵튠 볼은 '포시도니아 오세아니카(Posidonia oceanica)'라는 해초에서 떨어진 잎이 파도에 쓸리면서 단단한 섬유질만 남아 공 모양으로 뭉쳐진 것이다. 포시도니아가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에서 와서 로마식 표기법인 넵튠 볼로 부른다.
연구진은 천연 고분자 물질인 알긴산염과 키토산으로 그물 구조를 만들었다. 알긴산염은 다시마나 미역 같은 갈조류에서 나오고, 키토산은 게딱지나 새우 껍질에 있는 당단백질 복합체인 키틴에서 나온다. 재료부터 수산물 가공 과정에서 나온 폐기물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먼저 알긴산염으로 복잡하게 가지를 치는 연질 수지상 콜로이드를 만들었다. 이 물질은 미세 섬유가 사방으로 뻗어 있어 표면적이 엄청나게 크다. 그만큼 다른 물질과 접촉하기 쉽다. 얼렸다 해동하는 과정을 거치면 안쪽은 콜로이드가 밀집해 단단해지고, 표면은 가지들이 노출된 구조가 된다. 마지막으로 미세 가지 표면을 양전기를 띠는 키토산으로 코팅했다. 덕분에 게코도마뱀붙이의 발바닥이나 거미줄처럼 주변 물질과 매우 강하게 결합한다.
연구진은 천연 고분자 물질로 만든 그물로 실제 해변에서 채취한 바닷물에서 다양한 크기의 미세 플라스틱을 포획하는 능력을 확인했다. 벨레브 교수는 "1㎜ 이상 입자는 그물에 걸리고, 수십 ㎚의 아주 작은 입자는 접착 방식으로 포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력한 접착제로 코팅한 그물을 바다에 내려 미세플라스틱을 모두 잡아내는 셈이다.
◇미세 플라스틱 잡는 로봇 청소기 개념도 제시
생체 모방형 그물은 자연이 하듯 미세 플라스틱 제거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스페인 과학자들은 2021년 넵튠 볼이 1㎏당 플라스틱 조각 1500개를 붙잡는다고 발표했다. 당시 연구진은 넵튠 볼이 연간 플라스틱 입자 9억개를 포집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홍 박사는 이번에 자연을 단순 모방하지 않고 공학적으로 재설계해 성능을 높였다고 말했다.
홍 박사는 지난해에는 바다에 잠수해서 플라스틱 입자를 붙잡고 다시 떠오르는 시스템도 개발했다. 이번 그물과 같은 물질을 썼지만 이동형이라는 점이 다르다. 플라스틱 입자를 포획한 뒤에는 마그네슘과 물이 만날 때 나오는 기포로 떠오른다. 홍 박사는 "작년에는 미세 플라스틱을 포집하는 로봇 청소기 개념을 제시했다면, 이번에는 자연의 구조를 모사한 그물망을 이용해 상용화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고 말했다.
미세 플라스틱을 잡는 그물이 상용화되려면 바다나 강물에서 장기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검증해야 한다. 또 미세 플라스틱 표면에 미생물이 증식해 바이오필름이라는 막을 형성했을 때도 포집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대량 생산 공정을 개발해 경제성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홍 박사는 "후속 연구가 진행되면 환경 정화뿐 아니라 산업 폐수 처리나 수처리 등 다양한 분야로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 제1 저자인 홍 박사는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20년 노스캐롤라이나대로 유학을 가서 지난 5월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번 논문에는 경북대 출신인 박사과정의 김병곤 연구원도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6), DOI: https://doi.org/10.1126/sciadv.aeg0819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2025), DOI: https://doi.org/10.1002/adfm.202423494
Scientific Reports(2021), DOI: https://doi.org/10.1038/s41598-020-793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