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지형에 맞게 자유자재로 보행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사족 보행 로봇을 개발했다. 평지에선 대각선 방향의 다리를 동시에 움직여 속보로 움직이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앞다리와 뒷다리를 각각 같이 움직여 뛰어넘는다. 목적지를 찾는 능력까지 발전하면 앞으로 네 발 로봇이 험난한 재난, 전투 현장에서 스스로 수색구조와 탐사 임무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해원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진은 "하나의 제어기로 걷기와 달리기, 점프 등 다양한 보행기술을 실시간으로 선택, 전환하는 사족 보행 로봇의 인공지능(AI) 제어 기술을 개발했다"고 16일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이날 로봇 분야 국제 학술지인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표지 논문으로 게재됐다.
◇AI 두뇌가 가상 데이터로 보행 학습
사족 보행 로봇은 다리 네 개로 움직여 이론상 바퀴 달린 로봇보다 험지를 이동하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실제 환경은 지형이 계속 바뀌고 장애물이 많아 예상만큼 빨리 이동하지 못했다. 걷기나 달리기, 점프 등 각각의 보행 기술을 각각 따로 제어해 실제 네 발 동물처럼 달리면서 보행 방식을 자연스럽게 바꿀 수 없었다.
연구진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APT-RL(Action Pretrained Transformer-based Reinforcement Learning·행동 사전학습 기반 트랜스포머 강화학습)이라는 제어 기술을 개발했다. 네 발 동물의 움직임을 일일이 촬영하지 않고 컴퓨터 시뮬레이션(모의실험)으로 사족 보행 로봇의 AI 두뇌가 강화 학습할 15시간 반 분량의 데이터를 만들었다.
강화 학습은 강아지에게 특정 행동을 계속 가르치기보다 우연히 그 행동을 했을 때 칭찬을 하거나 먹이 같은 보상을 주는 훈련 방식이다. TV 예능 프로에서 반려견의 행동을 교정할 때 널리 쓰이는 방법이다. 로봇은 시행착오를 거쳐 스스로 기존 방식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다양한 보행 기술을 익히고 상황에 따라 선택했다.
연구진은 이번에 개발한 보행 제어 기술을 자체 개발한 사족 보행 로봇 'KAIST 하운드'에 탑재해 성능을 검증했다. 실험은 실내 장애물 코스뿐 아니라 대학 캠퍼스와 숲길 같은 야외 환경에서도 진행됐다. 로봇은 계단과 잔디, 경사로가 있는 도시형 지형은 물론 나무가 쓰러지고 뿌리가 노출되거나 낙엽이 쌓이는 등 불규칙한 자연 지형에서도 안정적으로 이동했다. 장애물이 있는 험지에서 순간 최고 초속 6m(약 시속 22㎞)까지 기록했다.
◇지형에 맞춰 보법 자유자재로 전환
로봇이 험지를 이렇게 빨리 이용한 것은 상황에 맞춰 보행 방식을 신속하게 전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로봇은 평지에서는 대각선 방향의 앞·뒷다리를 번갈아 움직이는 트롯(trot) 보행으로 빨리 움직이고, 장애물을 만나면 앞·뒷다리를 각각 함께 쓰는 바운드(bound)로 뛰어 넘었다.
연구진은 이번에 걷기와 달리기, 점프, 단차 극복 등 다양한 운동 기술을 하나의 제어기 안에서 통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지형 파악에는 카메라와 센서를 같이 썼다. 로봇은 가까이 있는 지형은 깊이 카메라로 파악하고 먼 거리 지형은 레이저 거리계인 라이다 센서로 확인했다.
박해원 교수는 "이번 연구는 사족 보행 로봇이 실내 및 야외의 복잡하고 비정형적인 지형을 인식하고, 상황에 맞는 보행 전략을 스스로 선택·전환할 수 있음을 보여준 성과"라며 "향후 재난 현장, 국방 임무, 산업시설 점검 등 험지 환경에서 피지컬 AI 기반 보행 로봇의 활용 가능성을 넓히는 기반 기술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논문에는 국방과학연구소의 강준길 연구원과 KAIST 기계공학과 박재현 박사과정 연구원이 공동 제1 저자로, 박 교수와 고려대 기계공학부 홍승우 교수가 공동 교신 저자로 등재됐다. 연구진은 사족 보행 로봇이 실제 임무에 활용될 수 있도록 앞으로 장거리를 자율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박 교수는 "이번에는 빠르고 다양한 보행 기술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로봇이 목적지를 정하고 스스로 이동 경로를 계획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카메라로 장애물뿐 아니라 사람과 위험 물체 같은 주변 상황을 이해하는 기술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 Robotics(2026), DOI: https://doi.org/10.1126/scirobotics.adz7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