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로 치즈를 만들 때 유청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의 AI 생성 이미지.지즈나 두부를 만들고 남은 폐기물이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재료로 발전했다./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안도현 시인은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물었다. 이제 두부 만들고 남은 찌꺼기 비지도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해야 한다. 너는 한 번이라도 온실가스 잡아봤냐고.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과학자들이 치즈와 두부를 만들고 남은 식품 폐기물로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하는 물질을 개발했다고 지난 11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식품 폐기물을 이용한 이산화탄소 포집 효율은 기존 기술보다 50%까지 뛰어났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이다. 한국을 포함해 195국은 2015년 파리협약을 맺고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5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로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직접 제거하는 것이지만, 에너지 소모가 많아 실용화되지 못했다.

새로운 직접 공기 포집(DAC) 방법. 치즈와 두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식품 폐기물을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수 있는 단백질 구슬로 가공한다./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치즈·두부 찌꺼기, 탄소 잡는 스펀지로 변신

취리히 연방공대 재료공학과의 라파엘레 메젠가(Raffaele Mezzenga) 교수 연구진은 치즈와 두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식품 폐기물을 단백질 구슬로 가공했다. 단백질 구슬들은 소량의 에너지만으로도 이산화탄소를 효율적으로 결합하고 다시 방출했다.

치즈를 만들고 남은 유청이나 두부 부산물인 비지에는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다. 국가표준식품성분표에 따르면 비지 100g에는 단백질이 4g 들어 있다. 두부 100g에 있는 9.62g보다는 적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양이다. 연구진은 치즈, 두부 생산 공정의 폐기물에서 단백질을 분리해 아밀로이드 섬유소라고 불리는 길고 실 같은 사슬을 만들었다. 여기에 수산화칼륨을 주입하자 지름 0.5~1㎝ 크기의 구슬이 만들어졌다.

실험에서 단백질 구슬은 1g당 대기 중 이산화탄소 0.097g을 추출했다. 단백질 구슬 1㎏만 있으면 이산화탄소 100g 정도를 분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이는 기존 직접 공기 포집(DAC·Direct Air Capture) 기술보다 10~50% 뛰어난 결과라고 밝혔다.

단백질 구슬에서 이산화탄소를 추출하는 것은 수산화칼륨이다. 수산화칼륨은 강염기 물질로, 산성 산화물인 이산화탄소와 만나면 바로 산-염기 중화 반응을 일으켜 탄산염과 물을 만든다. 치즈·두부 폐기물에서 얻은 단백질은 이때 수산화칼륨이 흘러내리거나 뭉치지 않고 넓은 표면적에서 공기와 접촉하도록 붙잡아 주는 지지체 역할을 한다. 메젠가 교수는 "단백질 구슬은 수산화칼륨을 통해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스펀지와 같다"고 말했다.

수산화칼륨이 함유된 단백질 구슬들. 미세 구멍이 많은 단백질 구슬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스펀지 역할을 한다./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탄소 방출도 쉬워, 재료도 재활용

기존 DAC 방식은 탄소 흡수 물질에 열과 주변보다 낮은 압력인 음압을 줘야 이산화탄소를 다시 방출시킨다. 그래야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거나 다른 물질로 전환할 수 있지만, 이 과정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 이러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 경제성이 떨어진다.

메젠가 교수는 식품 폐기물로 만든 이산화탄소 흡수제는 이 부분에서도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실온에서 단백질 구슬에 약한 산과 염기를 번갈아 약 10분간 분사하면 화학 결합이 끊어져 이산화탄소를 다시 분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사용한 산과 염기, 단백질 구슬은 이후 재사용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논문 제1 저자인 둥저우(Zhou Dong) 박사는 "현재 이산화탄소 포집에 사용되는 합성 물질은 빠르게 분해되지만 이번에 만든 단백질 구슬은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이산화탄소 흡착과 방출을 30회 반복했으나, 효율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단백질 구슬도 수천 번 쓰면 교체해야 한다. 메젠가 교수는 이 역시 재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성분이 단백질이라 농업용 비료로 사용하거나 바이오 연료로 전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재료가 식품 등급이라 독성이 없어 다른 이산화탄소 포집 방식보다 환경오염도 덜 유발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탄소 집는 단백질 구슬을 상용화하기 위해 실험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실험실 환경에서 단백질 구슬 몇 g으로 이산화탄소를 50g까지 분리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아직 이산화탄소 1t당 포집 비용을 정확히 산정하지는 못했으나, 기존 기술보다 훨씬 낮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참고 자료

PNAS(2026), DOI: https://doi.org/10.1073/pnas.2535689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