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사진작가 토비 슈라펠이 2024년 크리스마스 밤에 찍은 태즈매이니아 섬 해변. 파도가 치면 바닷물에 있는 미생물이 빛을 냈다./Toby Schrapel

호주의 사진작가 토비 슈 라펠(Toby Schrapel)은 2024년 크리스마스 밤에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이날 태즈메이니아 섬 해변으로 밀려드는 바닷물은 온통 청록색 형광으로 빛났다. 돌을 던지면 형광이 불꽃처럼 튀었다.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풍경 그대로였다.

윌 스루바(Wil Srubar) 미국 콜로라도대 토목·환경·건축공학과 교수 연구진은 "밤에 해변을 밝히던 미생물을 이용해 전기 없이도 한 번에 25분씩 4주까지 빛을 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지난 6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흔들리면 빛내는 미세조류 이용

해변을 빛낸 형광은 바다에 사는 단세포 생물인 '피로시스티스 루눌라(Pyrocystis lunula)'가 냈다. 콜로라도대 연구진은 묵처럼 수분이 많은 물질인 하이드로겔에 피로시스티스를 넣고 간단한 화학 용액으로 빛 스위치가 계속 켜 있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바닷물에 사는 피로시스티스는 파도가 치면서 물리적 자극을 받으면 빛을 낸다. 몸 안에서 루시페린이라는 물질이 루시페라아제라는 효소에 의해 산화되면서 에너지가 빛으로 방출된다. 바로 생물이 빛을 내는 생물발광(生物發光·bioluminescence) 현상이다. 반딧불이가 짝을 찾을 때 내는 빛도 같은 원리이다.

파도가 치거나 지나가는 배에 흔들리면 피로시스티스에서 생물발광이 일어난다. 하지만 빛이 나는 시간은 몇 밀리초(1000분의 1초)에 그친다. 연구진은 물리적 자극을 계속 주면 발광 시간을 늘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미생물이 들어간 하이드로겔을 눌러 기계적 자극을 계속 줬지만 발광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콜로라도대 연구진은 대신 화학 스위치를 찾았다. 산성도(pH)가 다른 용액을 부어 생물발광의 변화를 추적했다. 토마토 주스 정도인 pH4의 산성 용액과 순한 비누와 비슷한 pH10의 알칼리성 용액에 노출시켰다. 둘 다 생물 발광을 유도했지만, 빛의 성질이 달랐다. 산성 조건에서는 최대 25분간 환한 빛이 났다. 알칼리성 조건에서는 발광 시간이 짧았고 빛도 퍼져 흐렸다.

산성 환경(위)과 알칼리성 환경(아래)은 미세조류에서 생물발광 현상을 달리 유발한다. 산성 조건에서 하이드로겔 구조물의 미생물이 더 밝고 선명을 빛을 냈다./미 콜로라도대

◇극한 탐사에서 광원으로 활용

연구진은 발광 미생물을 하이드로겔에 넣고 이를 잉크 삼아 3D(입체) 프린터로 다양한 모양으로 찍어냈다. 하이드로겔 구조물은 산성이나 알칼리성 용액을 만나면 파랗게 빛났다. 미생물은 하이드로겔 구조 안에서 수주간 생존했다. 특히 산성 조건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보였다. 미생물은 하이드로겔 구조물에서 4주가 지난 뒤에도 처음 밝기의 75%를 유지했다.

연구진은 발광 미생물 소재는 다양한 곳에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햇빛이 닿지 않는 심해에서는 생물 90%가 스스로 빛을 낸다. 예를 들어 심해에 사는 아귀는 이마에 난 돌기에서 빛을 내 먹잇감을 유인한다. 같은 방식으로 심해나 우주를 탐사하는 로봇이 광원으로 쓸 수 있다.

해양 오염을 감시하는 센서로도 만들 수도 있다. 연구진은 발광 미생물이 다른 화학 물질에도 반응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만약 미생물이 오염 물질을 만나면 빛을 내도록 할 수 있다면 수질 감시에 쓸 수 있다.

발광 미생물 센서는 에너지를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온난화도 막는다. 연구진은 피로시스티스가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이라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없앨 수도 있다고 밝혔다. 스루바 교수는 "다른 광원은 공간을 밝히기 위해 탄소를 배출하지만 미생물은 빛을 내면서 동시에 탄소를 저장한다"고 말했다.

물리적 자극을 받으면 빛을 내는 와편모류 미세조류들. 초승달 모양의 피로시스티스 루눌라(위)는 광합성을 하고, 야광충으로 불리는 녹틸루카 신틸란스(아래)는 플랑크톤을 잡아먹고 산다./독 트리어 응용과기대, 홍콩 과기대

◇온난화로 해양 오염 유발하기도

피로시스티스는 채찍 같은 꼬리로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며 이동한다고 해서 와편모류(渦鞭毛類)로 분류된다. 밤에 해변을 밝히는 와편모류는 또 있다. 야광충으로 불리는 '녹틸루카 신틸란스(Noctiluca scintillans)'이다. 속명(屬名)인 녹틸루카는 밤에 빛이 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야광충은 그 자체가 해양 오염의 원인이기도 하다.

생물발광을 하는 두 해양 미생물은 여러 면에서 다르다. 우선 피로시스타스는 초승달 모양이지만 녹틸루카는 사과처럼 생겼다. 또 피로시스타스는 광합성으로 영양분을 스스로 생산해 식물과 같지만, 야광충은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포식자이다. 이 때문에 야광충이 갑자기 늘면 해양 생태계를 위협한다. 야광충이 일시에 늘어나 적조(赤潮)가 일어나는 것이다.

적조가 일어나면 야광충 몸 안의 붉은색 색소 덕분에 낮에 바닷물이 케첩을 뿌린 듯 붉게 변한다. 야광충이 갑자기 늘면 갑각류인 크릴이 먹는 규조류를 다 먹어 치워 생태계를 혼란에 빠뜨린다. 수중 산소도 고갈시켜 물고기마저 폐사시킨다.

이런 이유로 과학자들은 해변이 밤에 빛나는 모습을 편안히 즐길 수 없다.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 과학자들은 2012년 태즈메이니아 해변이 밤에 빛나는 것은 지구온난화가 심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994년까지만 해도 태즈메이니아에는 야광충이 없었다. CSIRO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해류 흐름이 바뀌었고, 야광충이 사는 따듯한 바닷물이 태즈메이니아로 밀려왔다고 설명했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6), DOI: https://doi.org/10.1126/sciadv.aee3907

Journal of Plankton Research(2012), DOI: https://doi.org/10.1093/plankt/fbr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