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살벌은 무서운 말벌로 오해받지만, 사람을 잘 쏘지 않고 농민에게 반가운 익충이다. 농사를 망치는 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미국 과학자들이 농업을 살리는 고마운 벌이 어디로 가는지 무선으로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등에 이슬보다 가벼운 전자태그(RFID)를 부착한 덕분이다.
지난 9일(현지 시각) 미국전기전자공학회(IEEE)가 발간하는 스펙트럼은 미시간대 공대 연구진이 쌍살벌 등에 붙일 20㎎(밀리그램, 1㎎은 1000분의 1g) 무게의 전자태그를 개발해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이 정도 무게는 물 한 방울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초경량 전자태그는 이 대학 전기컴퓨터공학과의 데이비드 블라우(David Blaauw) 교수와 김훈석 교수의 연구 성과이다. 박사과정의 션이(Yi Shen) 연구원은 2월 18일 샌프란시스코에 열린 IEEE 국제고체회로학회에서 대학 캠퍼스에서 전자태그를 단 쌍살벌을 날려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초경량 송신기로 쌍살벌을 1.45㎞ 범위에서 0.9m 오차로 추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김훈석 교수는 전자태그의 집적회로(IC) 칩 설계부터 알고리즘을 최적화해 경량화는 물론 전력을 적게 쓰면서도 넓은 범위에서 작동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알고리즘은 칩이라는 하드웨어에 어떤 절차로 데이터를 처리할지 알려주는 '두뇌'에 해당하는 소프트웨어로, 연산의 효율성과 속도를 결정한다.
◇농업에 필수적인 꽃가루받이 곤충 연구
곤충이 어디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알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곤충은 생태계 먹이 사슬의 토대가 되면서 농작물의 꽃가루받이를 돕기 때문이다. 세계식량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100대 농작물 중 71종이 꽃가루받이를 곤충에 의존하고 있다. 쌍살벌도 꽃에서 꿀을 찾다가 꽃가루받이를 도우며, 매미나방이나 파리 같은 해충의 애벌레까지 사냥한다.
문제는 곤충을 추적하는 일이다. 개미는 실험실에서 키우며 둥지 안에서 어떻게 사는지 연구할 수 있다. 벌도 등에 각각 다른 색을 칠하고 벌집에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는지 알아냈다. 하지만 곤충이 집을 떠나 날아가면 연구하기 어렵다. 과학자들은 비행하는 곤충의 등에 전자태그를 붙여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미국 셀룰러 트래킹 테크놀로지스(CTT)가 개발한 전자태그가 대표적이다.
60㎎ 무게의 CTT 전자태그는 황제나비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데 쓰였다. 황제나비는 가장 먼 거리를 비행하는 곤충으로 알려져 있다. 겨울이 되면 미국 북부와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4000㎞가 넘는 거리를 이동한다. 이듬해 봄이 되면 멕시코에서 태어난 후손들이 다시 북쪽으로 길을 잡는다.
CTT는 전자태그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배터리 대신 커패시터와 태양전지판을 붙였다. 배터리는 전하를 띤 입자들을 이동시켜 전류를 발생시키지만, 커패시터는 두 도체 사이에 전하를 직접 저장한다.그만큼 무게를 줄일 수 있다.
◇배터리 바꾸고 회로 최적화로 경량화
미시간대 연구진도 2000년 황제나비 추적용 전자태그를 개발했다. 블라우 교수 연구진이 개발한 M3 전자태그는 완전한 에너지 자급형 컴퓨팅 시스템으로, 무게가 50㎎에 불과했다. 당시 최경량 전자태그보다 10배 가벼웠다.
초경량 전자태그 개발은 한인 과학자들이 주도했다. 전기컴퓨터공학과 이인희 교수가 칩과 시스템 설계를 맡았고, 김훈석 교수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개체의 이동 경로를 재구성하는 알고리즘을 설계했다. 생태·진화생물학과의 앙드레 그린(André Green) 교수는 이동 경로를 분석해 황제나비의 생물학적 특성을 연구했다.
무게가 줄었다고 해도 50~60㎎ 전자태그는 쌍살벌에 부담이 된다. 황제나비는 날개를 펼치면 길이가 90~100㎜나 되지만 쌍살벌은 18~25㎜에 불과하다. 몸무게도 125㎎에 그친다. 이런 벌에 전자태그를 달고 날리면 사람에게 몸무게 절반쯤 되는 배낭을 메고 다니라고 하는 셈이 된다. 미시간대 연구진은 쌍살벌이 감당할 수 있도록 전자태그 무게를 3분의 1 정도로 줄였다.
미시간대 연구진도 배터리 대신 커패시터를 택했다. 블라우 교수는 "배터리는 더 작게 만들기 어렵지만 표면에 전하를 축적하는 커패시터는 소형화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쌍살벌에 붙인 전자태그의 커패시터는 무게가 0.86㎎에 불과했다. 전자태그의 태양전지판은 커패시터를 충전해 무선 신호를 보낼 정도의 에너지를 만든다. 김훈석 교수의 알고리즘 최적화도 전자태그를 가볍게 했다.
김 교수는 초경량 전자태그는 생태학 연구뿐 아니라 사물인터넷(IoT)에도 쓸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데 쓰는 애플의 전자태그인 에어태그(AirTag)보다 훨씬 작고 가벼우면서 전력도 덜 사용해 다양한 곳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훈석 교수는 서울대를 나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6년부터 미시간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8년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신진교수상, 2019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신진교수 경력개발상, 2024년 소니 교수 혁신상을 받았다.
김 교수와 같이 초경량 전자태그를 개발한 이인희 교수는 연세대를 나와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부터 미시간대 교수를 지내다가 2019년 피츠버그대 전기컴퓨터공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참고 자료
IEEE International Solid-State Circuits Conference(2026), DOI: https://doi.org/10.1109/ISSCC49663.2026.11409200
Communications of the ACM(2024), DOI: https://doi.org/10.1145/361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