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안에 헬리콥터 날개와 로봇 팔을 숨겼다가 펼쳐 위기를 극복한 형사 가제트./DIC 엔터테인먼트

TV 만화영화의 주인공 형사 가제트는 위기를 맞을 때마다 몸에서 각종 도구를 꺼내 해결했다. 어린이 시청자들은 작은 몸 안에 어떻게 헬리콥터 날개와 로봇 팔을 숨기고 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국내 연구진이 만화의 상상력을 구현할 기술을 개발했다. 조규진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 연구진은 "줄자처럼 접거나 말아 보관할 수 있는 로봇 구조물을 개발했다"고 27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유연하면서도 완전히 펴면 무거운 물체를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한 로봇 구조물을 개발했다. 조 교수는 "확장 가능한 구조체는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로봇 시스템의 도달 범위와 기능성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동형 로봇이 이 방식으로 1.m 길이의 팔을 확장해 선반 위 물체를 조작하거나, 3D(입체) 프린터가 2.5m 높이의 우주왕복선 모형을 제작할 때 이를 지지하는 삼각대를 형성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조규진 서울대 교수 연구진이 평소 줄자처럼 말아 보관하다가 필요시 펼쳐 작업을 하는 로봇 기술을 개발했다./서울대

◇종이접기 금속 패널을 리본으로 엮어

연구진은 형사 가제트처럼 로봇 팔을 부드럽게 접고 말아 보관하다가 펼치면 튼튼한 강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접고 말 수 있는 주름 구조'를 개발했다. 줄자는 부드럽게 감기기 위해 평평한 단면 구조이지만, 펼칠 때는 처지지 않도록 주름 단면을 갖고 있다. 종이는 유연하지만, 지그재그 형태로 주름을 만들면 인접 면들이 서로 변형을 막아 훨씬 튼튼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문제는 일반적인 주름 구조를 겹겹이 접은 채 감으면 재료 두께로 인해 안쪽과 바깥쪽 층의 둘레 차이가 발생해 찌그러지거나 구김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주름 단면이 크고 길어질수록 구조적 강도는 증가하지만, 보관할 때 필요한 폭이 넓어지는 제약이 있었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주름 구조에 인터레이싱(interlacing) 원리를 도입해 해결했다. 인터레이싱 구조는 구성 요소들을 접착해 고정시키지 않고 서로 교차시켜 맞물리도록 하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길이 방향으로 평행하게 배열한 금속 패널들을 서로 붙이지 않고 리본으로 촘촘히 엮어, 고리(루프) 형태의 인터레이싱 연결부를 만들었다. 부드럽지만 튼튼한 리본으로 구성된 인터레이싱 연결부는 패널을 조밀하게 붙였다.

연구진은 "튼튼한 접이식 주름 구조를 만들면서도, 동시에 루프 틈을 따라 패널들의 국소 미끄러짐을 허용해 겹겹이 접힌 상태에서도 허브에 부드럽게 감긴다"며 "단단한 소재 패널을 리본으로 엮는 방식을 통해, 아무리 많은 주름을 가진 구조라도 겹겹이 접어 부드럽게 말아 보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봇 청소기 크기 수준의 소형 모바일 로봇이 팔을 전개하면 선반 정리와 같은 높은 위치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서울대

◇로봇 청소기, 팔 뻗어 높은 곳도 정리

연구진은 실제로 인터레이싱 종이접기 구조가 다양한 전개형 로봇 시스템에 적용 가능함을 보였다. 로봇 청소기 크기의 소형 이동형 로봇에 적용해 평소 낮은 높이로 있다가 필요하면 팔을 펼쳐 선반을 정리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로봇 청소기가 바닥 먼지만 치우는 기기를 넘어, 아이들의 장난감 정리나 세탁물 옮기기 등 집 안 곳곳에서 손이 많이 가는 일을 대신하는 '팔 달린 가사 로봇'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연구진은 지름 1m, 높이 1m의 이동형 로봇이 목표 위치에 도달한 뒤, 밑변 3.2m, 높이 3.4m의 정삼각뿔 모양으로 펼쳐져 2.5m 높이의 구조물을 출력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연구진은 "달·화성처럼 사람이 직접 가기 어려운 환경에서 로봇이 스스로 건축물을 세우고 이동하는 미래 건설 시스템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밝혔다.

이번 논문 연구의 공동 주저자인 서울대 정순필 박사와 송재영 석사(현 한국조선해양 근무)는 "직물처럼 교차·맞물리는 인터레이싱 원리를 접힘 구조에 적용해 다층 구조의 층간 둘레 차 문제를 구조적으로 흡수하도록 설계했다"며 "그 결과 접고 말아 보관하는 이중 압축 방식으로 콤팩트한 보관이 가능하면서도, 전개 시 촘촘한 엮임으로 높은 강도를 확보하는 종이접기 구조를 구현했다"고 말했다.

연구 책임자인 조규진 교수는 "우리는 종종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라는 한 가지 형태에 해법을 기대하지만, 현장의 많은 문제는 환경과 과업에 따라 달라진다"며 "이번 결과는 형태를 바꿔 공간과 과업에 맞게 전개되는 로봇이 피지컬 AI(인공지능)의 실용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 Robotics(2025), DOI: https://doi.org/10.1126/scirobotics.adv46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