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덴마크 정부는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3종이 너무 맵다고 제품 리콜(회수)을 지시했다.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 함량이 높아 급성 중독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리콜을 중단하라고 아우성을 치자 나중에 2종은 안전성을 인정받아 판매가 재개됐다.
전 세계를 휩쓴 K(한국) 열풍에 식품 회사마다 매운맛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개발자들은 매일 매운 시제품을 맛보느라 고역을 치르고 있다. 과학자들이 식품 연구자들의 혀를 지켜줄 대안을 찾았다. 사람과 똑같이 매운맛을 판정하는 전자 혀이다.
◇20대 매운맛 판정 결과와 일치
중국 화둥과기대 화학공학과의 후징(Jing Hu) 교수 연구진은 "탈지분유 젤로 만든 인공 혀로 고추나 소스의 매운맛을 사람처럼 판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지난달 국제 학술지인 '미국 화학회(ACS) 센서'에 발표했다.
고추는 겉모습만으로 순한 피망 정도인지 아니면 입에 불을 낼지 판단하기 어렵다. 단맛이나 쓴맛, 짠맛, 감칠맛은 맛을 내는 성분과 결합하는 수용체 단백질이 있어 전자 혀로 맛보기 쉽지만, 매운맛은 그렇지 않다. 캡사이신 자체가 맛을 내지 않고 대신 혀에 열감을 줘 매운맛이 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탈지분유에 아크릴산과 염화콜린을 섞어 혀처럼 말랑말랑한 젤 상태의 전자 혀를 만들었다. 평소 전자 혀는 (-) 전기를 띠는 염소 이온과 (+) 전기의 수소 이온을 자유롭게 오가게 해 전류가 통한다. 하지만 캡사이신에 닿으면 이온 이동이 줄어든다. 그만큼 전류가 감소한다. 연구진은 전류 감소 정도로 고추와 매운 식품을 각각 8종의 캡사이신 함량과 맵기 정도를 판단했다.
동시에 연구진은 평균 22세인 남녀 7명을 대상으로 전자 혀가 판정한 같은 고추와 식품을 맛보게 했다. 이들은 다른 사람보다 매운맛을 잘 안다고 선발한 사람들이었다. 섭씨 25도 실내에서 사람들이 판정한 맵기는 전자 혀 판정 결과와 거의 같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인공 혀는 식품 개발자들의 혀 미각 세포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식품의 맵기를 신속하게 시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앞으로 기기 크기를 줄이고 더 다양한 사람의 매운맛 판정과 비교해 판정 정확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 휴대용 맛 센서로 개발해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다른 맛 센서와 결합하면 인간형 로봇이 사람처럼 맛을 보며 요리할 수도 있다.
◇우유로 매운맛 잡는 데서 착안
매운 음식을 먹으면 캡사이신이 감각 신경 세포막에 있는 TRPV1이란 이온 통로를 연다. 칼슘이나 수소, 나트륨 같은 (+) 이온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면 전기 신호를 발생하고, 뇌는 이를 뜨겁거나 아프다는 통증으로 인식한다.
TRPV1은 원래 43도 이상 고온이나 산성 환경에 반응하도록 설계된 열통증 감지 센서인데, 캡사이신은 그보다 온도가 낮아도 뜨거운 느낌을 준다. 연구진은 이때 물 대신 우유가 혀의 통증을 줄이는 데 좋다는 점을 이용했다.
캡사이신은 물과 잘 결합하지 않는 소수성 물질이어서 물을 마셔도 혀에서 씻겨지지 않는다. 반면 우유에 포함된 지방은 캡사이신을 녹여 씻겨 가게 한다. 무엇보다 우유에 있는 카제인이란 단백질은 캡사이신을 감싸 이온 흐름을 막는다. 그만큼 혀에서 통증이 사라진다.
이번 전자 혀에서도 카제인 단백질이 캡사이신과 덩어리를 이루고 전류를 차단했다. 연구진은 전자 혀에 캡사이신이 닿고 10초 뒤부터 전류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전류가 많이 감소하면 그만큼 캡사이신이 많아 매운맛이 더 강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참고 자료
ACS Sensors(2025), DOI: https://doi.org/10.1021/acssensors.5c01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