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에서 전파를 쏴서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글로벌위치확인시스템(GPS)은 차량의 내비게이션, 항공기와 선박 운항에 사용된다. 지금은 민간에서 널리 쓰지만 1990년대 초만 해도 전투기나 미사일을 운용하는 군에서 사용했다. GPS는 미국이 제공하는 글로벌항법위성시스템(GNSS)이다. 현재는 미국(GPS)뿐 아니라 러시아(글로나스), 유럽(갈릴레오)에 이어 중국(베이더우)도 독자적인 GNSS를 구축하고 있다.

GPS의 심장은 시계다. GPS는 전파를 쏴서 도달한 시간으로 거리와 위치를 계산한다. 얼마나 시간을 정밀하게 제공하느냐에 따라 오차가 달라진다. GPS위성에는 정밀한 시간을 제공하는 원자시계가 들어간다. 미사일을 유도하고 촌각을 다투는 사이버전을 수행하는 군에서 시간은 금이다. 최근 중국이 미래전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정밀한 원자시계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영국도 그간 베일에 가려있던 국방연구소에서 양자 기술을 이용한 군용 원자시계를 개발했다고 공개했다. 국방 분야에서 정확하고 정밀한 시간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확산하고 있다.

◇군용 트럭에 싣는 아웃도어 원자시계

원자시계를 포함한 고정밀 시간 유지 시스템은 현대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수천㎞ 떨어진 스텔스 전투기를 탐지하는 레이더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려면 정확한 시간 정보는 필수적이다. 지난해 11월 중국 주하이에서 열린 차이나에어쇼에서 관람객들이 중국항공공업집단(AVIC) 부스에 전시된 J-20S(오른쪽)와 J-35A(왼쪽) 전투기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중국 지량대와 중국계량과학연구소, 첨단추적기술혁신센터 연구진은 지난 18일(현지 시각) 1.5m의 단문형 냉장고 크기의 소형 세슘 원자시계(NIM-TF3)를 개발했다고 공개했다.

세계 각국은 시간 표준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정밀한 원자시계를 보유하고 있다. 원자시계는 원자 껍질의 전자가 일정하게 진동하는 성질을 이용하는 시계다. 전자가 진동하는 횟수를 세는 방식으로 시간을 잰다. 원자시계에는 대부분 안정적인 세슘이 사용된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된 1초의 길이는 세슘 원자 시계로 정의된다.

원자시계는 대부분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특별히 설계된 연구 시설에서 운용된다. 연구진은 이번에 개발된 시계가 트럭에 실릴 정도로 작고 장거리 운송을 해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만큼 견고하다고 설명했다.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린 뒤에도 5000조분의 1초 미만의 정밀도를 유지한다. 이는 미국에서 운용하는 이동식 원자시계와 비교해 10배 이상 높은 수치다.

중국계량과학연구소가 개발한 새 원자시계는 분수와 비슷한 원리로 작동한다. 시계는 레이저를 쏴서 세슘 원자를 냉각한 다음 수직으로 쏘아 올린다. 이 원자가 중력에 의해 다시 아래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빛을 방출한다. 이 깜박임을 세면 정확한 시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미국과 정밀 시계 경쟁하는 중국

원자시계는 매우 복잡하고 비쌀 뿐 아니라 철저한 유지관리가 필요하다. 진동과 자기장 같은 외부 환경에 매우 취약하다. 원자시계 외에도 레이저, 마이크로파 시계도 정밀한 시간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들 기술은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거나 조금만 거칠게 다뤄도 오작동을 일으킨다. 연구진은 “새 원자시계는 최소한의 유지관리와 감독만 필요하며 장기간 자율적으로 작동한다”며 “군사적 응용에 이상적”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시계의 이온 펌프를 재설계하고 위치를 중앙으로 옮기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이런 노력은 결과적으로 원자시계 부피를 극적으로 줄이는 데 기여했다. 연구진은 시스템의 전반적인 효율성과 안정성을 개선하기 위해 지금은 거의 쓰지 않은 컴퓨터 언어를 되살렸다. 원자시계를 가동하는 프로그램을 1980~1990년대 개발자들이 사용하던 컴퓨터 언어인 어셈블리어로 다시 짰다.

중국 지량대와 계량과학연구소, 첨단추적기술혁신센터 연구진은 지난 18일(현지 시각) 1.5m의 단문형 냉장고 크기의 소형 세슘 원자시계(NIM-TF3)를 개발했다고 공개했다. NIM-TF3는 트럭 뒤에 실어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정도로 작고 견고하다. /중국 국가계량연구소

중국은 정밀한 시간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정확한 원자시계는 여전히 미국이 보유하고 있지만 중국 연구자들이 이끄는 팀이 만들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양국의 관계가 악화하면서 이들 과학자 중 일부는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NIM-TF3와 같은 혁신적인 원자시계를 잇따라 내놓으며 기술 격차를 빠르게 줄이고 있다. 중국판 GPS로 불리는 베이더우 위성의 원자시계는 미국의 GPS 위성에 들어가는 원자시계보다 성능이 뛰어나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우주정거장 텐궁2호에 실린 수소 원자시계는 우주에서 시간 유지 정확도의 세계 기록을 깼다. 지난해엔 중국에서 세계에서 가장 길고 정확한 시간 동기화 광섬유 네트워크도 가동을 시작했다.

과학계에서는 이런 추세라면 중국이 수년 내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 인민해방군(PLA)이 전자전과 레이저 무기, 무인 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누르고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자전·사이버전의 핵심

미국 콜로라도 볼더대 연구실에 있는 스트론튬 원자시계. /NIST

원자시계를 포함한 고정밀 시간 유지 시스템은 현대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수천㎞ 떨어진 스텔스 전투기를 탐지하는 레이더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려면 정확한 시간 정보는 필수적이다. 레이저나 마이크로파를 적을 파괴하는 엄청난 에너지 무기로 활용하려면 정밀한 시간 정보가 필요하다.

암호화된 보안 통신 시스템은 고도로 동기화한 시간에 의존한다. 유도 미사일과 같은 첨단 무기 시스템의 정확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궤적을 계산하고 공격을 조정하는 데도 정밀한 시간 정보가 필요하다. 사이버전처럼 수 밀리초(ms)의 촌각을 다투는 작전에선 정확한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원자시계를 넘어서는 ‘핵(Nuclear)시계’로 응수하고 있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원(NIST)과 콜로라도볼더대는 희소 동위원소인 토륨-229를 이용해 수십억 년간 1초의 오차도 발생하지 않는 ‘핵시계’를 개발하고 있다. 핵시계는 전자 전이에 의존하는 원자시계와 달리 외부 힘의 영향을 덜 받는 원자핵이 전이될 때 주파수를 기준으로 활용한다.

연구진은 지난 9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핵 전이의 첫 번째 고해상도 스펙트럼을 발견하고 오스트리아 빈대 연구진과 토륨-229 결정을 사용해 핵시계 장치를 개발했다고 공개했다. 연구진은 사불화 토륨(ThF4) 박막을 사용해 방사능을 1000분의 1로 줄이고 비용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확보했다. 과학자들은 2~3년 이내에 핵시계가 정확도에서 원자시계를 앞지를 것으로 예상한다.

미 국방부는 이와 별도로 국방 분야를 비롯해 은행과 전력시스템에 같은 국가 주요 인프라에 적용할 발전된 원자시계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작은 칩 크기이지만 성능은 1000배 끌어올린 칩 스케일 원자시계(CSAC)를 개발하고 있다.

◇핵시계·사양자시계도 개발 중

영국 국방부는 실험적 양자 기술을 통해 수십억 년 동안 1초의 오차도 생기지 않는 양자시계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국방부

국방 분야에서 정밀 시간 체계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은 확대되고 있다. 영국 국방부는 지난 2일 영국군의 정보와 정찰 작전을 강화할 양자시계를 개발하고 있다고 깜짝 공개했다.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영국 국방과학기술연구소(DSTL)가 개발 중인 이 시계는 실험적 양자 기술을 통해 수십억 년 동안 1초의 오차도 생기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다. 영국 해군과 육군의 의견을 수렴해 첫 실험도 마쳤다.

영국 국방부는 “양자시계가 적국의 방해를 받고 차단될 수 있는 GPS에 대한 의존을 줄이며 통신망을 보호하고, 첨단 무기의 정확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며 “향후 5년내 군사 작전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DSTL은 “양자시계는 영국의 양자기술의 중요한 성과이자 항해와 항법의 운용 역량을 강화하고 산업과 과학의 발전을 촉진하며 고도로 숙련된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호주 국방부와 애들레이드에 본사를 둔 퀀트엑스랩스(QuantX Labs)도 지난해 9월 30억분의 1초의 오차를 보이는 양자시계를 개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양자기술은 미국과 영국, 호주로 구성된 3국 안보 협력체인 오커스(AUKUS)가 공유하는 8개 핵심 기술 중 하나다. 호주군은 이미 양자 광학 전자시계를 인수해 호주군 통신과 항법 시스템에 제공하고 있다. 또 올해 안에 원자시계를 추가로 도입해 이동 환경에서 테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호주군은 GPS신호가 재밍 공격을 받은 상황에서 각종 무기 운용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도록 양자시계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참고 자료

Acta Metrologica Sinica(2024), http://jlxb.china-csm.org:81/Jwk_jlxb/EN/10.3969/j.issn.1000-1158.2024.12.19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8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