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가 2002년 설립한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는 재사용 발사체 팰컨9를 앞세워 전 세계 우주 발사체 시장을 석권했다. 우주산업 컨설팅업체인 애스트랠리티컬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발사한 위성 2850기 중 1986기가 팰컨9를 이용했다. 전체 위성 중 69.7%가 스페이스X를 이용한 것이다.
재사용 발사체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가격이다. 화물차가 1회용이 아니고 여러 번 쓸 수 있어 화물비도 줄었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팰컨9의 화물 발사 비용은 1㎏ 당 약 3800달러(약 534만원)이다. 이전보다 10분의 1 수준의 저렴한 가격이다. 시티은행은 2022년 뉴스페이스 시대를 분석한 보고서 ‘새로운 시대의 새벽’을 내고 2040년에는 발사체 비용이 1㎏ 당 33~300달러 수준으로 저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재사용 발사체의 기술적 가치가 증명되면서 한국도 본격적인 개발에 나섰다. 26일 우주항공청에 따르면 내년 2월 ‘혁신형 재사용발사체 핵심기술 선행 연구 사업’ 공고를 내고 국내 재사용 발사체 기술을 개발할 기업을 선정한다. 이노스페이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같은 민간 기업이 자체적으로 재사용 발사체를 개발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으나, 정부가 직접 투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주청은 재사용 발사체 개발 사업을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구상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한 나로호, 누리호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단독으로 주관해 하나의 초대형 사업으로 완성했다면, 재사용 발사체는 여러 기업이 경쟁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내 우주기업들의 셈법은 다르다. 한국항공우주(047810)(KAI)를 비롯해 발사체 개발을 추진하는 국내 기업들은 재사용 발사체 개발이 경쟁 방식이 아닌 협력으로 가야한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KAI는 현대로템, 이노스페이스, 페리지항공우주와 컨소시엄 구성을 구성했다. 우주산업 기반이 약한 국내 실정을 봤을 때 여러 기업이 협력해 기술을 확보하고,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지홍 KAI 미래융합기술원장은 “한국이 재사용 발사체를 개발해 스페이스X와 경쟁한다는 것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며 “기업들이 역할 분담을 해서 함께 재사용 발사체 기술을 확보하고, 이후 본격적으로 각자 경쟁 구도로 가는 게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주청이 최근 개최한 공청회에서도 경쟁이냐, 협업이냐가 중요한 화두였다. 우주청은 선행 연구 사업에 기업 4곳을 선정해 각각 8억원씩, 총 32억원을 투자하는 방향을 발표했다. 이후 기업 4곳 중 1곳을 선정해 280억원을 투자하고 재사용 발사체용 엔진 개발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반면 KAI를 비롯한 일부 기업은 순서를 바꿔 컨소시엄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이후 컨소시엄 참여 기업들이 스스로 역할을 찾는 방식으로 재검토해달라는 의견을 우주청에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들의 동상이몽(同床異夢)에서 경쟁 방식에 더 무게를 실었다. 조광래 전 항우연 원장은 “국내에 재사용 발사체 기술이 있다면 컨소시엄 방식으로 협력하는 것이 맞는다”며 “하지만 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바로 대형 사업을 추진한다면 시행착오만 거치면서 기술 개발이 더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나 다른 우주 선진국은 소규모로 기반 기술부터 마련하고, 이후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이 최종 개발을 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도 경쟁을 통한 기술 개발을 선호한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이다. 나사는 2021년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서 달 착륙선 개발을 맡을 기업 후보로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을 비롯해 다이네틱스, 록히드 마틴, 노스롭 그루먼 등 기업 5곳을 선정했다.
나사는 20세기 중반 아폴로 프로그램 이후 달 착륙선을 보낸 경험이 없다. 사실상 착륙선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개발해야 한다. 나사는 예산 부족 문제로 스페이스X만 달 착륙선 개발 기업으로 선정했다가 작년에 블루 오리진도 추가했다. 나사는 “아르테미스 임무에 여러 경쟁자를 추가해 납세자가 내는 비용을 줄이고 정기적인 달 착륙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나사의 미래 임무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장(직무대리)은 “한국은 민간 주도로 해본 경험이 거의 없어 어떤 방식이 적합한지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면서도 “경쟁 방식은 그간 국내 우주 연구개발(R&D)에서는 시도되지 않은 만큼 우선은 정부 계획대로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