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가항천국은 지난 14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막한 국제우주대회(IAC)에서 달 탐사선 창어6호가 사상 최초로 달 뒷면에서 채취한 달 암석 샘플을 선보였다. 창어6호는 지난 6월 암석 샘플을 싣고 북부 네이멍구 지역 사막에 착륙했다.
중국은 미국보다 앞서 달 뒷면에 탐사선을 보내는데 성공한 데 이어 달 유인 탐사 계획까지 내놓으며 미국과 경쟁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1969~1972년까지 아폴로 계획으로 6차례나 우주인이 달에 발을 디뎠고 달 토양을 가져왔지만 달 뒷면 토양은 한번도 가져오지 못했다. 로이터는 달 샘플 공개가 중국이 우주강국으로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로 평가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우주연맹(IAF)이 매년 개최하는 IAC는 우주 분야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행사로 불린다.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와 블루오리진을 이끄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도 직접 참석해 자신들의 우주선 개발 계획을 설명할 정도이다. 올해 행사 주제는 ‘지속 가능한 우주를 위한 책임 있는 우주활동’이지만, 현장에선 달 탐사와 우주정거장 분야에서 우위와 세를 확보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우주 외교전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우주정거장, 달 탐사 미·중 우주외교전 치열
중국은 우주에서 우리편 만들기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달 뒷면을 다녀온 창어6호에는 프랑스와 스웨덴 등 해외 실험장비 4개가 실렸다. 최근 완공된 톈궁 우주정거장 운영과 차기 달 탐사선 창어7호와 창어8호를 달 남극에 보내면서 글로벌 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번 IAC에서도 중국 국가항천국은 더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달 탐사 임무에 참여하기 바란다며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했다.
미국도 이번 행사에서 지난 2023년 베누 소행성에서 회수한 암석을 전시하며 중국의 달 암석 샘플 공개에 맞불을 놨다. 미국은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통해 내년에 달 궤도에 우주인 4명을 보내고, 2026년 9월 유인우주선 아폴로17호 이후 54년 만에 달 표면에 사람을 보내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도 다른 국가와 같이 추진한다.
미국은 지난 13일 에스토니아가 아르테미스 협정 45번째 서명국에 가입했다고 발표했다. 16일에는 한국을 포함해 45국 우주청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아르테미스 서명국 회의도 IAC 현장에서 개최하며 세 과시를 했다.
미국은 국가가 주도하던 우주정거장 사업을 포함해 지구저궤도를 우주사업을 하려는 민간 기업들에 넘겨주고 정부는 달, 화성처럼 좀 더 먼 우주에 집중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액시엄 스페이스와 오비털 리프, 스타랩 스페이스에 이어 최근 배스트 스페이스가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빌 넬슨 NASA 국장도 이번 행사에서 2030년 퇴역할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대체하기 위해 민간 기업을 활용하려는 전략에 대해 기업과 각국 우주기관의 지지를 호소했다.
◇유럽 발사체 위성 제조산업의 위기
IAC는 1950년대 냉전 시기에도 우주개발을 하는 나라들의 과학자, 엔지니어, 기업, 정치인들이 협력을 논의하는 장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과 함께 선도국 역할을 하던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이어지면서 올해 행사엔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는 불참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이번 불참이 최근 글로벌 우주 협력이 삐걱거리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우주에서 지위가 약화되고 있는 유럽의 고민도 엿보인다. 유럽은 에어버스와 아리안스페이스, 탈레스 같은 굴지의 우주항공 기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최근 눈에 띄게 시장을 빼앗겼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가 재사용발사체 팰컨9에 이어 팰컨 헤비, 달과 화성 이주용으로 개발하는 대형우주선인 스타십까지 성공하면서 러시아와 함께 발사체 시장을 나눠 갖고 있던 유럽의 입지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유럽의 위성 제조 산업도 압박을 받고 있다. 한때 유럽 정지궤도 위성 기업들이 호황을 누리던 위성 시장이 저궤도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이스X는 통신위성 서비스인 스타링크로 저궤도 시장 붐을 일으켰다. 유럽의 에어버스디펜스앤스페이스와 탈레스, 레오나르도가 위성 분야를 합병하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10년 가까이 별다른 진전은 없다.
유럽 국가들은 우주 생태계 재편에 나섰다. 올해 행사 주최국이자 유럽우주국(ESA)의 주축인 이탈리아는 2026년까지 예산 79억달러(한화 약 10조원)을 투입해 우주산업 생태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계획이다. 아돌포 우르소 이탈리아 산업부 장관은 “국가 우주 생태계에 목표를 달성하고 지속 가능하고 유용한 방식으로 우주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우주 쓰레기, 보험료가 상업화 장애물”
올해 행사는 점점 늘어나는 우주물체와 우주쓰레기 문제를 각국 정부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사안으로 제시했다. 스타링크와 원웹 같은 저궤도 군집 위성의 교통량이 급격히 늘면서 우주에선 어느 때보다 충돌 위험이 커졌다.
연구자들은 우주물체와 우주 잔해 탐지, 추적과 관련 법률, 정책·경제적 고려 사항에 대한 100여 편에 가까운 논문을 발표했다. 또 각국 우주 정책 담당자들과 국제 전문가들도 모여 우주 상황 인식, 적극적인 잔해 제거와 자동 충돌 회피에 대한 논의도 진행했다.
최근 시도되고 있는 우주관광도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 스페이스X와 액시엄 스페이스, 블루오리진과 버진 갤럭틱은 최근 지구 저궤도와 우주의 경계에서 우주관광을 추진하고 있다. 네덜란드 컨설팅 회사 PwC스트래티지는 상업용 준궤도 우주 여행사가 참가자들의 위험을 보장하는 보험을 들려면 한동안 막대한 비용을 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우주 관광객 79명이 우주를 다녀왔는데 우주선 고장률은 5~8%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발사 횟수가 늘면서 고장률은 내려갈 것으로 확신하지만 한동안 값비싼 보험료를 감당해야 것으로 보고 있다. PwC스트래지에 따르면 버진 갤럭틱의 6인승 우주선 탑승객 1인의 보장액을 300만 달러로 했을 때 전체 보험료가 130만~210만달러를 내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폴로 시대 이래 가장 흥미로운 시기”
클레이 모우리 IAF 회장은 이번 행사 개막식에서 “1960년대 아폴로 시대 이래로 우주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기가 왔다”고 평가했다. 중동에 이어 아프리카 국가들이 우주에 뛰어드는 것도 단적인 사례다.
이집트와 알제리,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 우주 관계자들은 이번 행사에서 내년 4월 이집트에서 아프리카우주국(ASA)를 공식 출범한다고 발표했다. 아프리카 우주국 위원회 의장인 티디안 오우아타라 박사는 “ASA가 앞으로 각국 정부와 협력해 각국의 이해와 소형위성 분야를 포함해 우주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국제 무대로 나서는 한국 우주기업들도 늘었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은 “다양한 우주벤처 기업들이 IAC에 부스를 마련하면서 해외 전문가들도 한국 우주산업의 변화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4~5년 전만 해도 IAC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부스가 거의 유일했다. 올해는 국내 첫 민간 우주기업인 쎄트렉아이를 비롯해 이노스페이스, 텔레픽스,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 등 9개 기업이 대규모 전시부스를 마련했다. 우주 헬스케어 분야에 직접 투자한 보령도 올해 행사에 스폰서로 참여하고 창업 경진 대회인 휴먼인스페이스 결선 대회를 개최하면서 해외 참가자들의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