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강원대 교수(가운데)가 6일 강릉에서 열린 '2024년 스마트수소에너지 기술개발교류회'에서 "한국은 현재 해외에서 수입한 수소를 저장·운송할 기술이 부족하다"며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액화수소, 암모니아를 저장·운송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한국과학기자협회

최근 전기차 화재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수소차가 주목받고 있다. 수소차도 전기차처럼 모터로 작동하지만 화재 위험이 낮다고 알려졌다. 화재 위험이 있는 배터리 대신 수소 연료와 공기 중의 산소가 결합할 때 나오는 전기로 모터를 돌리기 때문이다. 원래 수소는 가연성 기체이지만 탱크에서 누출되면 금방 공기로 확산해 화재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수소차는 배기구로 물만 나오는 친환경 자동차다.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면 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선호도는 전기차에 밀리고 있다. 연료인 수소를 쉽게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유소 역할을 하는 수소 충전소가 거의 없고, 수소 가격도 변동성이 크다.

김주영 강원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6일 강릉 세인트존스호텔에서 열린 ‘2024 스마트수소에너지 기술개발교류회’에서 “국내 수소 생산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수소차 활성화, 수소 발전(發電) 상용화를 하려면 해외에서 수입한 수소를 저장·운반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수소 전문가들이 수소차 확산에 도움이 될 아이디어를 모았다. 이날 행사는 교육부와 강릉시가 지원하는 스마트 수소에너지사업단의 최신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스마트 수소에너지사업단은 수소 경제 활성화와 지역 기업 육성을 위한 인력 양성과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액체 수소, 암모니아 운반 기술 갖춰야

전문가들은 국내 수소 경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내 생산량 부족을 해외 수입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수소 생산량은 210만t 수준이다. 대부분 석유화학 공정에서 부산물로 나오거나 천연가스(LNG)를 분해해 얻고 있다. 가솔린, 디젤 같은 화석연료 자동차를 대체하겠다면서 같은 화석연료를 쓰는 셈이다. 정부는 2040년까지 수소 공급량을 526만t 규모로 늘린다는 구상이지만, 이를 국내 생산량으로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은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해외에서 수소를 수입해오는 ‘수소 스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호주나 미국에서 저렴한 가격에 친환경 수소를 수입한다는 구상이다. 호주나 미국은 사막의 태양광 발전소나 먼바다의 풍력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고 그 힘으로 물을 분해한다. 여기서 나오는 수소를 액화하거나 공기 중의 질소와 반응시켜 액체 암모니아로 만든다.

암모니아는 수소를 먼 곳까지 보내는 데 유리하다. 암모니아는 섭씨 영하 10도에서 액체가 되므로 석유처럼 선박에 실어 어느 곳이든 수송할 수 있다. 수소는 액체로 만들려면 영하 253도까지 냉각해야 한다. 문제는 해외에서 수소를 수입하더라도 항구에서 내륙으로 운반하는 기술이 없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해외에서 수입한 수소는 액화 수소나 액체 상태의 암모니아로 들어온다”며 “액화 수소는 온도 유지, 암모니아는 유독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액화 수소는 기체인 수소를 극저온으로 냉각해 액체 상태로 만든 것이다. 액화 수소는 기체 수소보다 부피를 860배 줄일 수 있어 저장·운반 효율이 우수하다. 다만 극저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내구성과 신뢰성이 우수한 소재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주영 교수는 “액화 수소는 보관·운송 중 온도가 변하면 기체로 바뀌면서 누출될 가능성이 있다”며 “수소 온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용기 소재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암모니아는 질소와 수소가 결합한 물질로 상대적으로 취급은 쉬우나 독성이 강하다는 문제가 있다. 암모니아는 소량만 흡입하더라도 세포를 녹인다. 암모니아 운송 기술은 현재 갖춰져 있으나, 수소차 보급을 위해서는 도심에서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만큼 기술을 더 발달시켜야 한다.

암모니아 연료전지 추진 암모니아 운반선./삼성중공업

◇국내서 액화 수소 저장 탱크 기술 개발

액화 수소 운반 기술은 해외에서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독일 기업 지멘스는 ‘하이드로지니어스’라 이름의 액화 수소 운반 기술을 개발했다. 유기분자인 디벤질톨루엔은 수소와 결합했다가 특정 조건에서 다시 수소와 떨어지는 특성을 가진 액체 화학물질이다. 이를 이용해 수소를 대량 보관하고, 상온에서 재방출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유럽연합(EU)은 버스와 트럭 같은 대형 차량에 필요한 수소 충전소를 마련하기 위해 ‘수소 섹터(H2Sektor)’ 프로젝트를 가동해 수소 저장·운반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기술을 개발했다. 한국화학연구원 박지훈 박사와 한양대 서영웅, 포스텍 한정우 교수 연구진이 톨루엔과 피리딘이 결합한 형태의 액상유기물수소저장체(LOHC)를 개발했다. 역시 수소와 결합했다가 특정 조건에서 다시 수소와 떨어지는 특성을 가진 액체 화학물질이다.

한국 연구진은 또 플라스틱, 탄소섬유 복합체를 수소 저장 탱크 소재로 주목하고 있다. 기존 LNG 저장 탱크보다 치밀한 구조를 구현할 수 있어 수소 저장에 탁월하다는 판단이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작은 분자인 만큼 금속 같은 기존 탱크 소재를 사용하면 미세한 틈 사이로 누출될 가능성이 있다.

김 교수는 “플라스틱 수소 저장 용기가 우선 상용화될 것으로 보이며, 탄소섬유 복합체는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한 단계”라며 “기술적인 과도기를 극복하기 위해 플라스틱과 탄소섬유 복합체를 융합한 신소재를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그린 수소’ 생산 기술도 필요

수소 생산도 장기적으로는 국산화할 필요가 있다. 국내 수소 생산량 절반 이상은 석유화학 공정에서 나오는 부생 수소가 차지하고 있다. 부생 수송와 LNG에서 분리한 정제 수소는 생산 과정에서 탄소가 발생하는 만큼 친환경 수소 생산 기술도 확보해야 한다. 최원열 강릉원주대 교수는 “한국은 2030년까지 수소 경제에서 소비하는 수소 중 부생수소를 10% 이하로 낮추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말했다.

연구단은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그린 수소를 만드는 기술도 찾고 있다. 그린 수소는 신재생에너지로 얻은 전기를 이용해 물을 분해해 얻은 수소를 말한다. 수소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전혀 없어 진정한 의미의 청정 수소 에너지로 불린다.

유럽은 그린 수소 생산 기술에서도 앞서나가고 있다. EU 수소은행은 지난 5월 보조금 경매를 진행하고 그린 수소 프로젝트 7개에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총 158만t의 그린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 2억2000만유로(약 1조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EU는 2050년까지 전체 에너지 사용 비중의 23% 이상을 그린 수소로 사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은 아직 그린 수소 생산이 전체 수소 생산량의 4%를 밑돈다. 신재생에너지 생산량이 날씨 문제로 불규칙해 수소 생산 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물을 분해해 수소를 얻는 수전해 시스템의 비용도 큰 문제다. 한국은 현재 수전해 시스템에 들어가는 부품 대부분은 유럽,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설비 비용이 해외에 비해 큰 만큼 수소 생산 효율을 끌어 올리는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독일 지멘스가 오스트리아 린츠에 건설한 6메가와트(MW) 규모의 수소생산기지 'H2 Future'. 수전해 기술을 이용해 청정 수소를 생산하고 있다./지멘스

◇물 분해, 연료전지에 모두 쓸 전극도 개발

신중호 강릉원주대 교수는 물 분해와 수소차의 연료전지에 모두 쓸 수 있는 양방향성 전극을 소개했다. 신 교수는 “양방향성 전극은 수소 경제 구현의 혁신적인 기술”이라며 “수소의 가장 큰 문제인 경제성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방향성 전극은 수전해 시스템과 연료전지 생산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전극 소재는 현재 귀금속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금, 은 같은 귀금속은 가격이 비싸고 수전해 시스템과 연료전지에 각각 다른 귀금속을 써야 한다. 내구성도 떨어져 전극의 수명도 4~5년 이내로 짧은 편이다.

연구진은 귀금속 대신 세라믹과 탄소섬유에 주목했다. 세라믹은 도자기처럼 고온에서 만드는 물질이다. 구조가 안정적이어서 작동 환경이 다른 수전해, 연료전지 모두에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전기전도성이 떨어진다는 한계는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신 교수는 “최근 결함 화학이라고 부르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라믹의 전기전도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며 “세라믹을 탄소 섬유와 결합해 전기전도성을 높이려는 시도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라믹을 사용하면 수소 생산과 연료전지에 드는 비용을 최대 100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권기현 강원대 교수는 “수소는 경제성만 고려했을 때 석유 기반 화석연료의 절반 수준에 못 미치지만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수소 경제 활성화는 불가피하다”며 “인공지능(AI), 신소재 개발, 저장·운송 기술 개선을 통해 경제성을 최대한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