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NIGT) 소장은 “’기후테크는 바로 이런 것’이라는, 근거에 입각한 좀 더 분명하고 뚜렷한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박근태 과학전문기자

마이크로소프트웨어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한때 IT(정보기술) 거물로 불렸지만 이제는 ‘기후 산업의 큰 손’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최근 수년 새 투자자들은 빌 게이츠가 낙점한 소형원자로모듈(SMR)과 핵융합, 온실가스 흡수 콘크리트 같은 기후테크들을 유망 투자 대상으로 주목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기후테크에 대한 관심은 한풀 꺾인 모습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총 113억달러(한화 15조 1307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떨어졌다.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가녹색기술연구소(NIGT) 사무실에서 만난 이상협 소장은 “기후테크에 대한 투자가 포화상태에 접어든 데다 성과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관심이 떨어졌다”며 “많은 사람들이 기후변화의 시급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후테크가 식품부터 에너지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루는 기술이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접근은 기업가와 투자가의 눈길을 더는 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기후테크는 바로 이런 것’이라는, 근거에 입각한 좀 더 분명하고 뚜렷한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가녹색기술연구소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연구소다. 임무는 정부 과학기술 출연연구기관이 확보한 기술과 특허, 연구 결과를 분석해 국가 전체의 탈탄소 기술 개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 올해로 설립 11년째를 맞은 연구소는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녹색기후기금(GCF)과 함께 기후변화 대응에서 한국의 국제적인 리더십을 유지하는 3대축을 맡고 있다. 연구소는 원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설의 녹색기술센터(GTC)로 운영됐다가 2022년 이름을 바꿨다. 수처리 분야의 전문가인 이 소장은 KIST 물자원순환연구단장과 한국연구재단 에너지환경기술단장을 거쳐 2022년 11월 제4대 소장으로 임명됐다.

이 소장은 취임 직후 ‘녹색 기후 기술 분야의 하버드대 도서관’을 만들자며 데이터 센터를 강화했다. 올 연말에는 탄소중립 외교의 길라잡이가 될 국제협력전략지도도 공개를 앞두고 있다. 이 소장은 “연구소는 기후변화, 탄소중립과 관련해 국내 기술 관련 정보를 가장 많이 수집하고 있다”며 “데이터와 숫자가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과 기업의 경영에 반영되는 모델을 만들겠다”고 했다. 앞서 녹색기술연구소는 과학기술연구회, 현대자동차 정몽구 재단과 함께 ‘그린 소사이어티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글로벌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가형 연구자를 육성하는 프로젝트이다.

–기후테크에 대한 투자가 줄었다고 한다.

“기후에 대한 관심을 갖기엔 미국 대선이나, 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시급한 이슈가 너무 많다. 한편에선 기후테크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진 것도 있다. 다양한 기후테크에 투자를 했는데 성과가 곧바로 나지 않다 보니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 기후테크 5대 분야를 보면 탄소저감 기술부터 식품, 지구까지 다 포괄하는데 어떻게 투자하라는 건지 이정표가 없는 것도 투자를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지금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다양한 기술이라는 식으로 기후테크를 설명한다. 그런 말은 결국 기후테크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들리게 한다. 많은 시민이 충분히 실감하는 상황에서 눈에 확 와 닿을 사례를 보여주고 숫자로 설득하면 투자도 늘고 파급력도 생길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해서 생긴 결과로 보인다.”

–기업들이 기후테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한국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대 산업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석유화학, 제철처럼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이 주를 이룬다. 유럽의 탄소국경세는 우리 기업들에 가장 시급히 대응해야 할 문제다. 잘못하면 우리 수출의 27%에 해당하는 철을 유럽에 팔기 어려워질 수 있다. 올해 통과된 유럽의 탄소중립산업법인 ‘넷제로 인더스트리 액트(NGIA)’도 잘 봐야 한다. 공급망까지 규제가 시작되면 한국 산업은 암담해진다. 다행히 아직 국내엔 기회가 있다. 한국이 최근 유럽의 과학기술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에 합류했다. 한국의 과학기술이 유럽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국내 기술은 해외 시장에서 어떤 기회가 있나.

“미국이나 유럽 같은 기후기술 선도국들은 이미 시장이 형성돼 경쟁이 치열하다. 반면 개도국은 우리 기업에 기회가 많다. 출연연의 연구 성과 중에는 개발도상국의 탄소중립에 도움을 줄 기술이 꽤 있다. 가령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개발한 과일수송용 화차는 유체역학을 이용해 수송칸에 바람을 잘 통하게 해서 과일을 썩지 않고 수송한다. 더 많이 싣고 수송 횟수를 줄일 수 있어 탄소배출을 걱정하는 개도국에 맞는 기술이다. 이런 기술은 국제기구의 공여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국내 기업들의 수준은 어떤가.

“국내 기업들 중에는 해외 진출을 하고 싶어하는 기업들이 꽤 많다. 하지만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정작 어떤 방식으로 진출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기후테크 기업이라고 스스로 인식하는 기업들조차 해외 진출에 필요한 영문제안서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장이 있어도 준비가 전혀 안 돼있는 것이다.”

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장./박근태 과학전문기자

–기후테크의 해외 진출은 왜 중요한가.

“일본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와 비슷한 성격의 자이카의 국제개발원조(ODA) 프로그램을 통해 동남아 일대에서 영향력을 무섭게 확대하고 있다. 한국은 2030년 4억3600만t을 감축하는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갖고 있다. 이 가운데 3750만t을 국외에서 감축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기후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이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외교부가 문을 열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기술을 제공하고 산업통상부가 가서 실증을 하는 식으로 이제는 전 부처가 나서야 할 시점이다.”

–기업을 어떻게 돕고 있나.

“자금 지원도 중요하지만 기업에겐 정보도 중요하다. 서울시만 해도 2000~3000개 기후테크 기업이 있다. 2년 전 처음 부임하면서 그리너스 리그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에게 지속적으로 기술 트렌드와 현지 진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해외에 진출할 때 어디서 예산이 나오는지 수집해 알려준다. 지금까지 18개 기업이 도움을 받고 있다. 서울시 녹색산업지원센터와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기후테크 기업 발굴과 지원 프로그램도 지원하고 있다. 정몽구 재단의 경우 기후와 자원, 생태 분야의 9개 기업을 발굴해 3년간 5억~7억원을 아무 조건 없이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발굴 기준을 제공한다.”

–기후테크 기업을 발굴하는 기준은 뭔가.

“연구개발(R&D) 단계나 창업 단계 있는 기업보다는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지 우선 고려한다. 기술의 우수성과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중요한 지표지만 시장이 있는지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보통 기술력과 감축 효과만 보는 경우가 많다. 정몽구 재단의 경우엔 ‘랩 투 소사이어티(lab to society, 연구실에서 사회로)’라는 철학이 분명하다. 선정 과정에 기술이 미치는 사회적 파급력도 중요하게 본다.”

–국제협력전략지도는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나.

“한국이 개발한 기후 기술을 개도국에 보급해 국내 감축분으로 인정받는 모델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다양한 전략지도가 개발됐는데 주로 논문과 특허를 분석한 다음 누구와 협력할지 알려주는 용도로 사용됐다. 올 연말 공개되는 전략지도는 정부가 추진하는 17대 탄소 중립 전략기술을 바탕으로 각국의 정치와 외교, 경제, 사회적인, 더 복잡한 정보들을 포함하고 있다. 한국이 수출산업인 중화학, 중공업의 강점을 버리지 않고 반도체, 인공지능, 인공지능(AI) 같은 신산업을 발전시키면서 탄소중립 전략을 이어갈 협력 방안이 무엇인지 제공할 목적으로 구축했다. 지정학적인 문제들이 포함돼 있어 상당 부분 일반에 공개하지 못한다.”

–데이터에 역점을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기후기술 분야는 전 세계 시장을 두고 누가 먼저 차지하는가를 두고 정보전이 치열하다. 연구소는 우리나라의 모든 기후 기술 R&D 정보가 한데 모이는 이 분야 유일의 통계청 인증기관이다. 해외 연구소와 리서치기관의 정보도 받아서 가공한다. 탄소중립과 관련한 정보는 가장 빨리 제공할 수 있다. 데이터가 탄소중립과 기후테크 발굴 정책에서 활용되는 시대를 열고 싶다”

–한국의 탄소중립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KDI와 맥킨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싱크탱크다. KDI가 연초에 발표하는 경제성장률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 맥킨지 보고서는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연구소는 기후기술과 탄소중립 분야의 세계적인 싱크탱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도 연간 배출량 예측을 하긴 하지만 아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모니터링도 어렵고 기업들의 기준도 제각각이라 발표 결과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앞으로 KDI가 올해 성장률을 발표하는 것처럼 올해 한국의 이산화탄소 감축량이 얼마인지, 우리 사회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권위를 인정받고 싶다. 꾸준히 이 분야의 데이터를 제공해 존재감을 알리고 권위를 얻어가겠다.”

이상협 소장

고려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환경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물자원순환연구단 단장과 한국연구재단 에너지·환경기술단 단장을 거쳤다. 환경 분야 특히 수(水)처리 연구분야 권위자로 기후기술을 포함한 에너지·환경 관련 분야의 다양한 신규사업기획, 정책 수립 등 R&D 기획 전반에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