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15일 엠폭스(MPOX)에 대해 국제적 공중 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언했다. 국제적 공중 보건 비상사태는 최고 수준의 보건 경계 태세다. 지난 2022년 7월 처음으로 엠폭스에 대한 비상사태가 선포됐다가 지난해 5월 해제된 후 1년여 만에 재선포가 이뤄진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조류인플루엔자(AI)에 이어 엠폭스로 인한 감염병 확산 사태가 시작됐다. 감염병은 박테리아(세균)나 바이러스에 감염돼 발생하는 질병이다. 주로 호흡기를 통해 전파가 이뤄지며, 성관계나 혈액에 오염된 물질이 접촉해 발생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감염병을 초기에 예방하지 않으면 확산세는 더 거세진다. 코로나19 사태 당시에도 초기에 감염병 정보가 공개되지 않으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감염병은 단체 생활을 하는 군인들 사이에서 더 빠르게 확산된다. 특히 야전에서 활동하며 군용 텐트에서 생활하는 경우에는 더 큰 문제다. 감염병에 걸리더라도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도 없다. 실제 전쟁터에서 감염병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방역 조치와 항생제, 항바이러스제 정도가 전부다. 의료 인프라(기반 시설)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감염병으로 인한 피해는 더 확산된다. 전 세계 군에서 감염병을 막기 위한 기술에 투자하는 이유다.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다르파)은 ‘인터셉트(INTERCEPT)’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가동해 군인들의 감염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목표는 바이러스와 유사하게 인간 세포에 감염되지만 감염병은 일으키지 않는 ‘결함 간섭 입자(DIP)’를 개발하는 것이다.
DIP는 바이러스에서 복제에 필요한 효소와 단백질을 제거해 만들어진다. 유전자 변형으로 복제 능력이 사라진 바이러스는 체내에 감염되더라도 질병을 일으키지 못한다. DIP가 이미 감염된 세포에는 정상적인 바이러스도 감염될 수 없어 감염병 전파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
다르파는 2017년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해 DIP가 실제로 감염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을 확인했다. DIP은 최근 실제 바이러스성 감염병을 치료하는 약물로 연구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다. 에이즈를 유발하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복제 능력을 없앤 인공 바이러스 ‘치료용 간섭 입자(TIP)’를 이용한 실험에서 한 번 주사로도 장기간 증상 완화 효과를 확인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 당시에도 이 같은 기술을 이용한 치료제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다.
다르파는 지난해 군인들이 외상을 당했을 때 혈액 감염을 막을 수 있는 기술의 개발도 시작했다. ‘실드(SHIELD)’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감염을 원천 차단하는 일종의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먹는 약으로 만들어 한 번 먹으면 일주일 동안 감염 예방 효과를 내게 하는 방식이다.
다르파 관계자는 “군인들이 임무 중 외상을 입어 감염되는 일은 자주 발생한다”면서 “군인들은 전장에서 적절한 치료를 즉시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감염병을 신속하게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이 국방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감염병 확산 초기에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치료하거나 격리 조치하는 방식이다.
이관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체분자인식연구센터 센터장이 이끄는 연구진은 반도체 기반 초고감도 센서를 활용한 다중 진단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군 부대에서 필요한 감염병 진단을 간편하게 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센터장은 “군인들이 해외에 파병을 갔을 때 감염병이나 풍토병에 노출되는 사례가 많다”며 “이런 사례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KIST 연구진이 개발한 센서는 소변을 이용해 감염병은 물론 건강 상태까지 확인할 수 있다. 반도체 바이오 센서를 이용해 소변에 포함된 물질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휴대용 혈당 측정기 수준으로 만들어 외부에서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어 군부대에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소변은 혈액이 신장에서 한 번 걸러진 불순물인 만큼 진단에 필요한 박테리아, 바이러스의 농도가 매우 낮아 고감도의 센서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미세한 전류 변화를 측정하는 반도체 센서로 이 같은 한계를 해결했다. 가령 소변에 포함된 바이러스가 반도체 센서에 닿으면 센서에서 흐르는 전류가 미세하게 바뀌는 데, 이를 분석하면 감염병 감염 여부를 손쉽게 알 수 있다. 감염병 감지 외에도 소변 속 영양분을 분석하면 군인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센터장은 “일반적으로 감염병 검사에 사용하는 PCR은 전문 인력과 큰 장비가 필요해 군부대에서는 활용하기 어렵다”며 “반도체 센서를 사용하면 전문 장비 없이도 누구나 쉽게 감염병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