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파르나스타워의 법무법인 율촌 렉처홀에서 우주항공산업 발전 방향과 우주항공청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법무법인이 개최하는 우주 세미나라는 점도 특이했지만, 이준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 전무(우주사업부장)와 노경원 우주항공청 차장 등 국내 우주산업을 이끄는 주역들이 발표자로 나서며 더욱 관심을 받았다.

우주청의 역할과 비전에 대한 노 차장의 발표가 끝나고 단상에 오른 이 전무는 한국과 미국의 우주 기술 격차를 설명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이 전무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의 기술 격차는 발사체가 18년, 인공위성이 10년, 과학탐사는 15년의 차이가 난다. 탑재용량은 6.9배, 발사 비용은 13.6배의 차이가 나는 만큼 지금의 수준으로는 경쟁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 전무는 “스페이스X는 올해 들어 일주일에 두 번씩 로켓을 발사하고 있는데, 누리호는 2027년까지 4년 동안 3차례 발사하는 게 전부”라며 “대량 생산을 해야 개발에 참여한 300여 기업도 생존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작년 5월 25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 고도화 사업 체계종합기업에 선정돼 2027년까지 3차례 누리호 추가 발사를 책임진다. 다만 고도화 사업은 기존에 설계된 누리호를 설계 변경 없이 그대로 만들어서 띄워야 한다. 반복 발사를 통해 누리호 신뢰성을 확보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을 통해 만든 누리호는 재사용 기술도 없기 때문에 발사 비용이 스페이스X의 ‘팰컨9′에 비해 2~3배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재 중량도 1.5t으로 23t의 팰컨9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지금 상태로는 민간 발사 서비스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는 셈이다.

정부도 이를 알고 지난 5월 발표한 우주항공청 정책방향에 누리호 성능 개량 사업을 명시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알려진 바 없었다. 이날 이 전무가 처음으로 누리호 성능개량사업의 청사진을 공개했다. 이 전무는 “누리호 고도화사업을 추진하는 2025년부터 2027년까지 성능개량 사업을 함께 진행해 상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2028년에는 개량형 누리호를 발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돈이 되는’ 누리호를 위해 이 전무가 제시한 키워드는 ‘원가 절감’과 ‘경사궤도’다. 이 전무는 누리호 발사비용을 현재 대비 20% 절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작 비용을 줄여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는 것이다.

누리호에 사용되는 75톤(t)급 엔진. 이 엔진에는 75만개에 달하는 부품이 들어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스마트팩토리에서 부품을 생산해 발사 비용을 절감한다는 구상을 공개했다./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정부는 누리호 개발에 1조9600억원을 투입했다. 개발에 투입된 국가 R&D 비용을 모두 발사 비용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실제 발사 비용도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팰컨9은 1회 발사 비용이 6200만달러(약 851억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팰컨9 수준은 아니더라도 누리호 발사 비용을 낮추지 않으면 민간 발사 서비스에 활용하는 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전무는 구체적인 원가 절감 방안도 언급했다. 공정개선과 소재통합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줄이는 방안이다. 또 상용부품 활용을 통해 원가를 줄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누리호 같은 발사체는 수많은 부품이 들어가는데 이때 사용되는 부품을 ‘우주급’이 아닌 상용부품을 사용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뿐 아니라 국내외에서 발사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우주급 부품을 대체할 수 있는 상용부품 활용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누리호에도 상용부품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부품 비용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키워드는 ‘경사궤도’다. 지금까지 누리호는 태양동기궤도로만 위성을 발사했다. 태양동기궤도는 태양과 위성의 궤도면이 이루는 각도가 항상 일정한 궤도를 말한다. 태양동기궤도에 올라간 위성은 매일 두 차례 같은 장소를 같은 시간에 방문할 수 있다.

반면 경사궤도는 적도를 중심으로 살짝 기울어진 궤도를 말한다. 경사궤도는 일정하게 같은 장소를 방문할 수는 없지만 대신에 하루에도 여러 차례 같은 장소를 방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특성 덕분에 군사용 위성은 경사궤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군이 지난 4월 발사한 군사정찰위성 2호기도 경사궤도로 돈다. 국방부 관계자는 “경사궤도를 택한 군사정찰위성 2호기는 하루 4~6회 정도로 한반도를 자주 방문해 촬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무는 “최근 중간경사궤도 수요가 글로벌 위성 발사에서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며 “상업 서비스를 위해서는 누리호도 경사궤도 비행 시험을 통해 경사궤도 발사가 가능하다는 걸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지난 4월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관계자들과 함께 우리 군 군사정찰위성 2호기 발사 현장 중계 장면을 바라보며 성공을 축하하고 있다. '합성개구레이더'(SAR)를 탑재해 주·야간과 기상 악화 시에도 전천후 고해상도 영상·정보 수입이 가능한 군사정찰위성 2호기는 미국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국방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6년부터 누리호 경사궤도 비행시험을 추진해 2028년 개량형 누리호 발사 때 경사궤도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누리호가 경사궤도로 운용된다면 군 정찰위성을 싣는 것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우리 군이 발사한 군사정찰위성은 스페이스X 팰컨9에 실려 우주로 가고 있다.

이 밖에 이 전무는 누리호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일종의 짐칸 같은 성격인 페어링을 키우고, 제주 남단 해상 발사장 활용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전무는 누리호를 제주 남단 해상에서 발사하면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할 때보다 탑재 중량을 3배 정도는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사장이 적도에 가까워질수록 로켓 발사에 필요한 힘이 작아지는 효과도 있어 그만큼 연료 대신 화물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R&D 사업으로는 대성공을 거둔 누리호를 놓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이렇게 고민하는 건 이제부터는 ‘돈이 되는’ 누리호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누리호가 우리 힘으로 만든 발사체를 우주로 보낸다는 꿈과 열정의 결과물이었다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누리호는 스페이스X처럼 우주 발사 서비스 시장에서도 돈을 벌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민간 주도의 우주개발인 뉴스페이스 시대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이 전무는 “지금까지는 R&D 위주의 우주 개발이었기 때문에 경제성이 최우선 과제는 아니었다면, 앞으로는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누리호를 바탕으로 우주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개발 성과물에 대한 소유권, 공공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 개발 비용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않는 문제 등 우주항공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제도를 정부가 개선해줘야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우주 산업에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