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개봉한 영화 ‘하이재킹’은 1971년 강원도 속초를 떠나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F27 여객기가 납치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납치 항공기 부기장인 주인공 태인(하정우 분)은 납치범 협박으로 북으로 향하던 여객기 기수를 휴전선을 넘기 직전 극적으로 남쪽으로 되돌린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기수를 들어 올려 수직으로 반바퀴를 돌린 곡예비행은 ‘임멜만턴’이란 실제 항공기 기동 방식이다. 전투기 조종사들에겐 매우 익숙한 기동비행이자 생존의 기술이다. 과연 영화 속 상황처럼 실제 민항기도 전투기가 하는 기동이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영화에 나온 임멜만턴은 박진감과 긴장감을 주기 위해 제작진이 연출한 장면이라고 본다. 공군 조종사 출신의 공학자인 윤용현 국민대 미래모빌리티학과 특임교수(공사 25기)는 “당시 항공기 제작 기술과 기체의 구조, 엔진 성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최소한 승객을 태운 상태에서 고난도 기동은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영화 속 여객기는 엔진 약해 기동 불가능
영화에 나오는 임멜만턴 같은 기동비행은 일명 ‘도크파이트’로 불리는 전투기 간 교전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격 기술이자 생존술로 개발된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 기동이 1~2차 세계대전 중 개발됐다. 임멜만턴도 1차 세계대전 중 독일 조종사이던 막스 임멜만 중령이 개발한 것이다.
기동비행은 비행기를 띄우는 힘인 양력과 비행기를 아래로 잡아당기는 중력과의 싸움이다. 양력은 기체가 앞으로 갈 때 주날개에서 발생하는 힘이다. 양력이 중력보다 크면 기체가 뜬다. 양력과 중력이 같으면 일정한 속도로 수평으로 난다. 양력이 중력보다 작아지면 비행기는 내려간다.
윤 교수에 따르면 임멜만턴처럼 급히 방향을 바꾸거나 급격히 고도를 올리는 기동을 하면 항공기에 하중(무게)이 급격히 더해지고 속도가 떨어진다. 기체의 위치에너지를 높이면 운동에너지를 잃고, 고도를 급격히 내리면 기체 속도가 올라간다. 비행을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와의 싸움이라고 하는 이유다.
주인공 태인은 임멜만턴을 하려고 조종간을 당기기 전 추력을 높이는 조작을 한다. 기수를 들어 거꾸로 반 바퀴를 돌려면 속도를 잃지 않도록 엔진 출력을 높여 추력이라는 에너지를 계속 보충해야 한다.
영화에 나온 여객기는 1969년에 제작된 50인승 쌍발 프로펠러 기종인 F27기다. 이 비행기의 엔진은 기체가 반 바퀴를 돌만큼 출력을 내지 못한다. 이러면 자칫 양력을 잃고 항력이 증가하며 기체가 실속 상태에 빠졌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F27기가 전투기가 하는 과도한 기동을 시도하면 승객도 버티기도 어렵고 기체에 과도한 힘이 가중되면서 날개나 동체가 부러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볍고 날쌘 전투기에 적합한 기동비행
레이더로 보이지 않은 적을 보고 서로 마주 치지 않고 미사일을 주고받는 시대가 왔지만 기동비행은 지금도 생존을 위해 익혀야할 필수 조종술이다. 모든 공군 조종사들은 다양한 기동비행을 의무적으로 배운다. 윤 교수는 “임멜만턴은 전투기 조종사라면 누구나 익혀야 할 기동비행이고 비교적 기초단계에서 배우는 조종 기술”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지상 공격기보다는 적기와 맞서는 방공 전투기 조종사들이 더 많은 기동비행을 훈련한다. 국내에선 영공 수호임무를 맡은 KF-16조종사들이 가장 다양한 기동비행을 훈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직 조종사들에 따르면 KF-16 조종사는 최소 18가지 기동비행을 숙달한다. 대부분의 기동은 다른 기동과 연결해 실제 공중전에서 활용된다.
기동비행은 가볍고 엔진 추력이 높은 기종이 유리하다. 전투기는 엔진 추력을 중량으로 나눈 ‘추력 대 중량비’가 커서 다양한 기동이 가능하다. 전투기 가속 성능을 나타내는 수치로 값이 클수록 기동성이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반면 여객기처럼 중량이 크면 상대적으로 기동성이 떨어진다.
모든 항공기는 기종마다 기동할 수 있는 속도, 항공기 중량에 따라 최대 허용되는 양력의 범위(하중계수 또는 하중배수)가 다르다. 보통은 작고 튼튼한 구조를 가진 전투기가 여객기보다 감당할 수 있는 최대 하중배수의 범위가 더 넓다. 그만큼 전투기가 기동비행을 하기가 훨씬 쉽다는 의미다.
조종사들은 새 항공기를 받으면 먼저 기종의 구조한계에 맞는 기동 조건을 먼저 익히는 훈련을 한다. 윤 교수는 “영화에서 조종사의 탁월한 조종 감각으로 기동이 결정되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속도와 기체에 가해지는 하중 증가를 반영하는 철저한 계산과 연습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예전엔 여객기도 시험 삼아 기동비행
물론 대형 기체라고 기동비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조종사이자 공학자인 리처드 앤더슨(Richard Anderson) 미국 엠브리리들항공대 이글비행연구센터소장은 최근 라이브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형 항공기로도 충분히 기동비행을 할 수 있다”며 “물리학은 비행기의 크기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말했다.
대형 항공기들이 곡예비행을 하는 모습을 봤다는 주장도 해외 항공 커뮤니티에 심심찮게 올라온다. 실제로 증거 영상도 있다. 미국 보잉사의 테스트 파일럿이던 앨빈 맬빈 존스턴은 지난 1955년 8월 6일 보잉 공장이 있는 시애틀 인근 워싱턴 호수에서 경영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형 제트기 보잉367-80을 몰아 배럴롤 2회와 샹델이라는 기동을 선보였다.
배럴롤은 긴 통속을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아 나가는 것이고, 샹델은 수평으로 날다가 기체를 옆으로 기울여 방향을 180도 꺾으며 상승하는 선회 방법이다. 급격한 기동이 가능한 항공기라는 건 그만큼 추력이 좋고 기체 구조가 튼튼하다는 의미다. 보잉사는 당시 대형 제트항공기의 상업성을 검증할 목적으로 이런 도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기체 크기에 따라 기동비행을 실현할 속도와 고도, 거리는 다르다. 대형 여객기로 배럴롤을 하려면 최소 수평거리로는 1만2000m, 위아래로 600m의 공역이 필요하다. 윤 교수는 “항공기 중량이 크고 사람이 많이 탑승하면 더 큰 추력이 필요하다”며 “보잉의 시험 비행은 승객을 태우지 않은 상태에서 하중배수가 급격히 늘어나지 않게 긴 거리에서 회전 반경을 크게 해서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제는 시험 비행이라도 민항기의 기동비행을 볼 수 없다. 보잉은 1994년 보잉777 기종의 첫 비행을 앞두고 롤(회전 비행) 기동을 금지했다. 특히 조종실이 컴퓨터가 조종하는 전자식으로 바뀌면서 조종사들이 급격한 기동을 할 이유가 더 없어졌다. 실제 위급할 때를 제외하고는 조종사가 기수를 20도 이상 급격히 들어 올리지 못하게 제한하고 있다. 기체를 좌우로 60도 이상 기울이지도 못한다. 1960년대 제작된 F27는 당시 이런 제한 장치는 없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하지만 이후 보도와 목격자 진술에선 실제 사건 발생 당시 기동비행을 했다는 증언은 없었다.
참고 자료
Aircraft Engineering and Aerospace Technology(2018), DOI : https://doi.org/10.1108/AEAT-01-2018-0042
AIAA Guidance, Navigation, and Control Conference(2005), DOI : https://doi.org/10.2514/6.2005-6352
JOHNS HOPKINS APL TECHNICAL DIGEST, VOLUME 18(1997)
SAE Technical Paper(1970), DOI : https://doi.org/10.4271/70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