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항공우주국(NASA·나사) 연구진이 기존 합금보다 변형을 견디는 내구성이 1000배나 뛰어난 합금을 개발했다. 섭씨 1000도 넘는 온도를 견디고 3D 프린터로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 수 있어 혹독한 환경에서 사용되는 항공기와 우주선 부품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나사는 지난 9일 미국의 소재기업인 펜터 테크놀로지와 엘레멘텀3D, 린데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 테크놀로지스, 파우더 얼로이에 초합금 'GRX-810′의 상업적 생산과 판매를 독점 허용하는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나사 글렌우주센터는 지난해 4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고온 환경에서 전례 없는 강도를 가진 새로운 초합금 'GRX-810′을 개발했다고 공개했다. 1년 만에 상용화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글렌우주센터 연구진은 "GRX-810은 3D프린팅으로 생산할 수 있는 획기적인 고온 소재"라며 "가장 가혹한 환경을 견디고 연료를 적게 쓰는 항공기와 우주선의 미래를 열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 첫 샘플로 3D프린터로 제작한 나사 휘장도 공개했다.
◇1000도 이상 견뎌 로켓 엔진에 적합
합금은 여러 금속을 붙이거나 섞어 강도와 내구성을 높인 소재다. 대표적으로 로켓 엔진이나 원자로처럼 고온에서 사용하는 부품들이 합금으로 만든다. GRX-810 이름도 글렌연구센터(GR)가 극단(X)의 온도인 810도에서 실험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GRX-810은 니켈과 코발트, 크롬 금속 분말에 세라믹 산화물을 섞어 만든 산화물분산강화합금(ODS)이다. 3D프린터가 GRX-810을 원하는 모양대로 쌓으면서 레이저로 금속을 녹이면 산화물이 골고루 섞여 고온에도 강도를 유지하고 변형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사는 GRX-810이 고온과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에 강해 기존 니켈 합금보다 2500배나 오래 쓸 수 있다고 밝혔다. 부러지지 않고 휘어지는 능력도 4배나 되고 산화 손상도 2배 잘 견딘다. 특히 섭씨 1093도까지 견딜 수 있어 제트 엔진과 로켓 부품 같은 고온 분야에 이상적이라고 나사는 밝혔다. 기존의 다른 적층 방식 합금보다 강도가 2배에 이르고 최첨단 합금보다 내구성이 1000배 이상 뛰어나다.
금속 합금에 산화물을 섞으면 강도, 연성, 경도가 올라간다는 사실은 이전부터 얼려졌다. 나사는 1980년대부터 ODS 합금 생성을 연구했다. 하지만 당시의 제조 기술은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금속이 녹으면 거벼운 세라믹 산화물 입자가 위로 떠올라 균일한 합금이 되지 않았다.
글렌우주센터 연구진은 컴퓨터 시뮬레이션(가상실험)과 3D 프린팅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연구진은 시뮬레이션 30번 만에 최적의 합금 구성을 찾았다. 다음으로 지름이 10~45㎛(마이크로미터·1㎛는 100만 분의 1m)에 불과한 니켈·코발트·크롬 입자로 금속 분말을 만들었다. 입자 지름이 20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인 산화물 분말도 개발했다. 3D프린터로 두 분말을 쌓으면서 레이저를 쏘면 산화물 입자가 금속에 고르게 섞이면서 최적의 고온 특성과 전례 없는 특성을 보인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장거리 여행용 원자력 추진선에 적합
전문가들은 GRX-810이 항공우주 기술에 미칠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보고 있다. 당장이라도 제트 엔진에 적용하면 연료 소모와 부품 교체 횟수를 줄여 유지 관리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엔지니어들도 기대가 크다. 예를 들어 엔진을 만들 때 운용 기간을 늘리기 위해 열 출력을 낮추는 식으로 성능을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
데일 홉킨스(Dale Hopkins) 나사 혁신도구기술프로젝트 부국장은 "GRX-810으로 만든 제트 엔진과 로켓 부품은 더 오래 쓸 수 있고 연료 효율성을 끌어올려 기업들의 운영 비용을 낮출 수 있다"며 "이 합금의 채택은 지속 가능한 비행과 우주 탐사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GRX-810의 판매권을 확보한 미국 파우더 얼로이사는 이미 인공위성과 우주선 구조물, 항공기 엔진 생산업체에 초합금을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온을 견디는 초합금은 우주선의 한계를 돌파할 기술적 대안이라는 평가도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장거리 우주여행에 원자력 엔진을 장착한 우주선을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나사는 원자로에서 나오는 핵분열 에너지를 이용하면 무게 3.5톤의 우주선이 15분 만에 초속 12㎞까지 가속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정도 속도면 화성까지 6개월만에 도달할 수 있다. 화학연료를 쓰는 우주선보다 3개월은 빠른 속도다.
참고 자료
Nature(2023), DOI : https://doi.org/10.1038/s41586-023-058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