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버스는 선박 풍력추진 보조장치(로터세일)가 달린 3척의 선박을 만들고 있다. 6개의 로터세일이 달린 이 선박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5~25%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airbus

유럽의 다국적 항공기업인 에어버스는 작년 하반기 프랑스 선박업체인 루이 드레퓌스(Louis Dreyfus Armateurs)에 풍력추진 보조장치(로터세일)가 달린 배 3척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항공기 제조사인 에어버스가 왜 친환경 선박을 만들어 달라고 한 걸까.

에어버스는 전 세계에 항공기 제조시설을 두고 있다. 미국의 앨라배마 공장에서 A320 항공기를 조립하려면 프랑스를 비롯해 전 세계에 흩어진 부품 공장에서 만든 부품을 배로 실어 옮겨야 한다. 이 때 화물선들이 화석연료를 사용해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최근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면서 산업계가 석유가 아닌 풍력을 이용해 배를 움직이는 로터세일 선박에 눈을 돌린 것이다. 영국 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1일 첨단 돛을 이용한 풍력 추진 장치가 해운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로터세일의 기본 원리인 마그누스 효과를 설명해주는 그림. 마그누스 효과는 축구의 바나나킥, 야구의 커브볼처럼 스포츠에서 많이 활용되는 원리지만, 친환경 기술인 풍력추진 보조장치의 원리이기도 하다./나무위키

에어버스의 친환경 선박 3척에 들어갈 로터세일(rotor sail)은 핀란드의 노르스파워라는 회사가 만든다. 노르스파워는 100년 전 처음 등장한 플레트너 로터라는 기술을 현대적으로 적용한 로터세일을 만들고 있다. 독일의 발명가인 안톤 플레트너가 처음 만든 플레트너 로터는 구조물 주위의 압력 차이를 이용해 추진력을 얻는 ‘마그누스 효과’를 돛에 적용한 기술이다.

마그누스 효과는 야구의 커브볼이나 축구의 바나나킥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공이 날아갈 때 주변으로 공기가 흐른다. 이때 공이 회전하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공기는 속도가 빨라져 공기 압력이 약해진다. 반면 반대쪽은 속도가 느려지고 공기압력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공은 압력이 약한 쪽으로 휜다(위 그림 참조).

마그누스 효과가 적용된 로터세일은 배의 갑판 위에 원통형 기둥이 솟아 오른 것처럼 보인다. 원통형 기둥이 회전하는 동안 바람이 불면 압력이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휘어지면서 힘을 받는 방식이다.

노르스파워는 이미 선박 8척에 로터세일을 장착한 경험이 있다. 로터세일 한 대 가격은 100만유로(약 14억8000만원)에 달한다. 선박 한 대에 로터세일 6개가 장착되기 때문에 선박 3척에 들어가는 로터세일 가격만 270억원에 가깝다.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로터세일 덕분에 연료 소비를 줄일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이득이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노르스파워는 “운항 중인 선박 8척을 보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5~25% 정도 줄었다”며 “짧게 3년, 길게는 10년이면 연료 절감액이 로터세일 가격을 넘어선다”고 설명했다.

로터세일은 수백년 전 바다를 누비던 선박에 달려 있던 돛과는 형태가 다르지만, 바람을 이용해 배를 움직이게 한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선박용 엔진 기술의 발달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돛이 다시 등장하게 된 건 탄소 중립이라는 시대적 요구 때문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해 7월 열린 해양환경보호위원회에서 해운업계의 탄소중립 목표 시점을 2050년으로 잠정 합의했다. 당초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대비 50% 감축하겠다는 방안이 유력했지만, 최종적으로 훨씬 더 강화된 안이 통과됐다. IMO는 2030년 20%, 2040년엔 70%까지 줄이겠다는 중간 목표도 함께 내놨다. 해운업계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인류 전체가 배출하는 양의 3%에 달한다.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을 위해서라도 친환경 선박 기술의 발전이 시급한 셈이다.

핀란드의 노르스파워가 만든 로터세일을 장착한 실제 선박의 모습. 다리를 지날 때나 풍력추진이 필요 없을 때는 사진처럼 세일을 아래로 내리고 운항할 수 있다./norsepower

스페인의 바운드포블루(bound4blue)라는 회사는 로터세일의 일종인 흡입형 돛인 ‘이세일(eSAIL)’이라는 기술을 선보였다. 흡입형 돛은 원통 형태의 구조물을 선박의 모퉁이에 세우고, 원통 안으로 바람을 빨아들인 뒤 원통 바깥과 내부에 발생하는 압력 차이로 추진력을 얻는 방식이다. 기존의 로터세일보다 효율을 높인 것으로, 글로벌 해운사인 오드펠은 이세일을 자신들의 유조선에 장착해 연료를 절감하고 있다.

바운드포블루의 베르무데스 최고경영자(CEO)는 “이세일은 기존 기술보다 추진 효율성을 높인 덕분에 최대 7배 정도 더 큰 힘을 만들 수 있다”며 “이세일을 아래로 내릴 수도 있어서 화물선뿐만 아니라 크루즈 여객선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조선업계도 로터세일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현대중공업은 일찌감치 로터세일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고,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도 소음과 진동을 낮춘 마그네틱 베어링 방식의 로터세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경남 거제시는 지난 4월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이 개발한 로터세일 기술을 실증할 수 있는 실증센터 구축에도 착수했다.

전통적인 돛의 모습을 한 풍력추진 보조장치도 있다. 다국적 곡물 기업인 카길은 지난해 전통 방식의 대형 돛을 장착한 피식스 오션(Pyxis Ocean)을 시범 운항하는 데 성공했다. 4만3000t급 벌크선인 피식스 오션은 배의 우측 면에 윈드윙(WindWing)이라는 거대한 돛 2개를 달고 있다.

높이 37.5m의 돛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고, 역풍이 불 때는 돛을 내릴 수도 있다. 카길은 6개월 간 피식스 오션을 운영한 결과 윈드윙 덕분에 연료 사용을 14% 줄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본격적으로 윈드윙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연료 사용량을 30%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프랑스의 스타트업 에어시즈(Airseas)는 거대한 연의 일종일 파라포일을 이용해 선박을 끄는 씨윙(Seawing)이라는 풍력추진 보조장치를 개발했다./Airseas

스웨덴의 해운사인 오션버드는 2027년 취항 예정인 자동차 운반선 오르셀 윈드(Orcelle Wind)에 대형 돛 6개를 설치하고 있다. 자동차 7000대를 선적할 수 있는 대형 운반선인 오르셀 윈드는 돛을 설치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50~60% 절감하는 게 목표다.

거대한 연을 만들어서 선박을 움직이는 기술도 있다. 일본의 해운업체인 가와사키 기선(汽船)은 프랑스의 스타트업 에어시즈(Airseas)를 올해 초 인수했다. 에어시즈는 뱃머리에서 선박을 끄는 거대한 연인 파라포일(Parafoil)을 만들고 있다. 이 파라포일은 고도 200m 정도에서 바람을 받아 100t 수준의 견인력을 낼 수 있다고 한다. 에어시즈는 “연을 펼치면 선박의 연료 사용량을 20% 정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