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잡아당기고 비틀어도 무선통신 성능을 유지하는 전자 피부를 개발했다. 전자 피부는 몸에 달라붙어 건강 정보를 수집하고 치료까지 하는 전자소자이다. 이번에 개발된 기술은 블루투스를 사용하는 웨어러블(wearable, 착용형) 기기나 종이처럼 말 수 있는 ‘롤러블(Rollable)’ 디스플레이를 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예환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연구진은 “탄성 고분자 소재로 만들어진 신축성 무선주파수(RF) 전자기기를 개발했다”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23일 발표했다.
이번 기기의 이름은 ‘유전-탄성 엘라스토머(DEE)’다. 연구진은 유전율(誘電率)이 높은 세라믹 나노 입자와 고무처럼 잘 늘어나는 탄성체인 엘라스토머를 혼합했다. 유전율은 매질이 저장하는 전하량의 단위로, 물질이 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특히 세라믹 나노 입자를 200㎛(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크기의 구형 뭉치 모양으로 배치했다. 구형으로 뭉쳐있는 세라믹 나노 입자는 소재를 늘렸을 때 납작한 타원체로 변한다. 나노 입자들은 구형에서 타원체로 변해도 입자 간 거리를 유지하고, 늘어나는 면적과 상관없이 같은 전기적 성능을 보인다.
연구진은 이번에 개발한 소재에 안테나와 근거리무선통신(NFC) 장치, 센서로 회로를 구성했다. 안테나는 무선주파수를 보내고 NFC 장치는 필요한 전기를 무선으로 충전하는 역할을 한다. NFC 장치로 충전하기 때문에 기기를 작동하는 데 배터리도 필요 없다. 다양한 센서를 탑재해 체온이나 뇌파를 측정하는 헬스케어 웨어러블로 사용할 수 있다.
무선주파수는 기기 사이 데이터를 전송할 때 주로 사용된다. 무선주파수는 교류(AC) 형태의 전류와 전압을 이용해 장거리 통신을 한다. 교류 전기는 전류 주변으로 자기장이 형성되는데, 이때 외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주로 안정적인 인쇄 회로 기판(PCB)을 사용하지만, 딱딱한 소재 때문에 사람 몸에 맞춰 형태를 바꿔야 하는 기기에는 쓰기 어렵다.
신축성 무선통신 기기를 개발해도 기판이 구부러질 때 무선주파수 세기가 낮아진다는 문제가 나타났다. 기기가 구부러지면서 면적이 늘어나게 되면 유전율이 낮아지면서 주파수가 떨어진다. . 기존 신축성 기기를 구부렸을 때 블루투스 주파수는 2.4㎓(기가헤르츠)에서 1.7㎓까지 떨어졌다.
연구진은 구형으로 배치한 세라믹 나노 입자로 변형에도 유전율을 유지해 무선주파수 문제를 해결했다. 새로 개발한 기판에 발광다이오드(LED)를 달아 성능을 검증한 결과, 무릎이 접히는 정도인 50% 변형률에도 주파수가 떨어지지 않았다. 기판 소재를 기존 면적의 4배 가까이 잡아당겨도 주파수 세기가 유지됐다. 통신 거리도 30m에 달해 데이터를 멀리 있는 기기로 보낼 수 있다. 설정 주파수를 바꾸는 것도 가능해 앞으로 나올 6세대 이동통신(6G)와 연계할 수도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새로 개발한 소재는 몸에 붙이는 전자 피부에만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정예환 교수는 이번 연구가 웨어러블을 주제로 하지만, 다른 산업에 쓰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현재 웨어러블보다는 다른 산업 분야에 적용하는 것을 특정 기업과 협의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롤러블 기기를 넘어 완전히 접고 다닐 수 있는 디스플레이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테나가 클수록 주파수를 더 멀리 보낼 수 있는데, 애드벌룬으로 만들어 넓은 지역에 와이파이(무선랜)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3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