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호주법인이 현지 암 센터 '크리스 오브라이언 라이프하우스'와 함께 가상현실(VR) 체험으로 암 환자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프로젝트를 하는 모습. 최근 미국 연구진은 암 환자가 겪는 통증을 VR로 줄여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스타트VR

암 환자가 느끼는 극심한 통증을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마약성 진통제를 대신할 새로운 기술이 나왔다. 게임, 영상 콘텐츠로 주목 받는 가상현실(VR) 장치가 그 주인공이다. 정신질환, 기분장애의 디지털 치료제로 VR이 주목 받는 가운데, 의료용 VR의 활용 분야는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미국 조지타운대 연구진은 8일 국제 학술지 ‘암(Cancer)’에 “극심한 통증을 앓는 암 환자에게 VR 체험을 시키자 느끼는 통증이 감소했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밝혔다.

통증은 암 환자가 겪는 가장 흔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증상이다. 초기 암 환자의 30~50%, 말기 암 환자의 80~90%가 극심한 통증을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환자의 절반 이상은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암으로 인한 통증은 마약성 진통제로 조절할 수 있으나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사용을 꺼리기 때문이다.

암 환자에게 사용하는 마약성 진통제는 치료 효과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내성이 생기면 효과가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진통제 사용 2~3주차부터 내성이 생기기 시작하고, 내성이 생기면 다른 진통제를 사용하거나 복용량을 늘려야 한다. 마약성 진통제를 장기간, 고용량으로 사용할 경우 중독의 우려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암 환자들은 통증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진은 마약성 진통제를 대신해 VR로 암 환자의 통증을 줄일 수 있는지 직접 확인에 나섰다. 심각한 통증을 앓는 암 환자 128명을 모집해 10분간 VR 체험을 하거나 2차원(2D) 영상을 시청한 후 느끼는 통증 정도를 스스로 진단하게 했다. VR과 2D 영상에서는 환자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자연 환경을 보여줬다.

이번 실험에 참여한 환자들은 자신이 느끼는 통증을 0부터 10까지 점수로 나타냈다. 2D 영상을 시청한 경우 평균적으로 0.7점의 통증 감소 효과를 나타낸 반면 VR을 사용했을 때는 통증이 1.4점이 감소했다고 평가했다. VR을 사용했을 때 환자들이 느끼는 통증의 감소 폭이 컸다는 의미다.

VR 시청 후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 감소 효과는 오히려 커졌다. VR 시청 후 24시간이 지난 후 환자들에게 통증의 정도를 다시 평가하게 하자 통증 점수가 1.7점 낮아졌다고 보고했다. 반면 2D 영상을 본 환자들은 통증이 0.3점 낮아졌다고 해 통증 감소 효과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졌다.

헌터 그로닝거 조지타운대 교수는 “몰입형 VR이 암 환자가 느끼는 통증을 줄이는 새로운 전략이 될 수 있다”며 “머지않아 암 환자에게 진통제와 함께 VR을 처방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VR을 이용해 환자의 통증을 줄이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의료계에서는 진통제를 대체할 수단으로 VR을 주목하고 있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퀸즈대 연구진은 지난해 VR을 이용해 통증 완화 효과를 확인한 31건의 논문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VR은 환자의 고통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투병생활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감도 낮춰줬다.

벨파스트퀸즈대 연구진은 “환자의 통증이 완화되는 이유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면서도 “VR이 주의를 분산시켜 환자의 통증과 우울감을 덜어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호주 현지법인을 통해 암 환자의 투병 스트레스를 줄이는 VR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환자들은 비록 가상공간이지만 답답한 병원을 벗어나 스트레스 수치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통증 완화뿐 아니라 환자 관리, 의료진 교육, 디지털 치료제로 VR을 사용하려는 시도가 늘면서 의료산업계에서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아이마크(IMARC)에 따르면 2022년 의료용 VR 시장 규모는 7억5700만달러(약 1조원)에서 2028년 33억6610만달러(약 4조 5543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참고자료

Cancer, DOI: https://doi.org/10.1002/cncr.35282

BMJ Supportive & Palliative Care, DOI: https://doi.org/10.1136/spcare-2023-004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