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진이 개발한 미세진동 증폭 메타물질. 자연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진동을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의 효율을 4배까지 높일 수 있다./한국표준과학연구원

국내 연구진이 자연에서 발생하는 미세 진동을 전자제품의 전력원으로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버려지는 에너지를 유용한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에너지 하베스팅의 단점이었던 전력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이다.

이형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음향진동초음파측정그룹 선임연구원이 이끄는 연구진은 27일 일상에서 만들어지는 미세 진동을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만드는 '에너지 하베스팅'의 전력 효율을 4배 이상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에너지 하베스팅은 버려지는 에너지를 다시 '수확(harvest)'해 전기를 만드는 기술이다. 1954년 미국 벨 연구소가 태양전지 연구를 하면서 만들어진 개념으로 진동, 음파, 정전기 같은 버려지는 에너지를 모아 실생활에 필요한 전기를 얻는 방식이다. 풍력발전, 조력발전 같은 신재생에너지 발전도 큰 틀에서는 에너지 하베스팅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버려지는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사물인터넷(IoT), 모바일 같은 소형 전자기기에 활용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나, 낮은 효율 문제는 개선해야 한다. 워낙 적은 에너지를 이용하는 만큼 효율이 낮아 실제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표준연 연구진은 미세 진동을 증폭하는 메타물질을 이용해 에너지 하베스팅의 전력 생산 효율을 높였다. 진동 에너지는 시간과 장소에 관계 없이 어디서나 쉽게 얻을 수 있어 에너지 하베스팅의 좋은 재료로 꼽힌다. 일정한 전력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장점을 갖는다. 24시간 내내 일정한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 IoT 센서와 혈압·혈당을 실시간 측정하는 웨어러블 의료기기의 전력원으로 진동 에너지 하베스팅이 주목 받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진이 개발한 진동 증폭 메타물질의 작동 원리. 메타물질에 전달된 미세 진동(왼쪽 아래 그래프)이 최대 45배까지 증폭된다(오른쪽 위 그래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번에 개발한 메타물질은 내부로 들어온 미세한 진동을 가둔 뒤 축적해 증폭하는 특성이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진동은 최대 45배까지 증폭된다. 적은 수의 소자를 이용해 큰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실제 성능 시험에서도 진동을 이용한 기존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에 비해 4배 많은 전기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손바닥 정도의 작은 크기에 얇은 평면 형태로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진동이 발생하는 곳 어디든 쉽게 붙일 수 있고, 붙이는 곳의 모양에 따라 알맞게 형태를 바꿀 수도 있다. 연구진은 에너지 생산뿐 아니라 고층 건물과 다리의 손상을 점검하는 진단 센서, 환자의 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소형 바이오 센서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선임연구원은 "이번에 개발한 메타물질은 일반 센서로 측정이 어려운 초미세 진동을 크게 증폭할 수 있다"며 "차세대 고정밀·고감도 센서 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기계 시스템 및 신호 처리'에 지난 달 15일 소개됐다.

참고자료

Mechanical Systems and Signal Processing, DOI: https://doi.org/10.1016/j.ymssp.2023.110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