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일본이 세계 최초로 고철 선물거래를 시작한 이후 고철은 전 세계 금융투자업계의 중요한 투자 상품이 됐다. 중국의 경제 성장으로 기초금속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덩달아 고철의 가치도 뛰어올랐다. 다만 고철은 지속적인 공급선을 확보하는 게 기초금속보다 어렵기 때문에 가격의 변동성도 크다. 그만큼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투자의 위험도 높은 상품인 셈이다.
고철 선물거래의 불확실성을 줄여줄 수 있는 해답을 국내 위성 스타트업인 텔레픽스가 찾았다. 27일 우주항공업계에 따르면, 텔레픽스는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글로벌 우주 기술 컨벤션(GSTC) 2024′에서 글로벌 투자은행(IB)을 고객사로 둔 금융정보 제공업체와 기술 실증(PoC) 계약을 체결했다. 조성익 텔레픽스 대표는 “금융투자 분야의 위성영상 분석 솔루션을 글로벌 투자업계에 수출한 것”이라며 “정확도와 지속성의 측면에서 상용 수준의 기술력을 갖췄다고 인정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텔레픽스가 글로벌 투자회사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기술력과 빠른 실행력이었다. 싱가포르의 금융정보 제공업체는 텔레픽스 외에도 두 군데의 글로벌 위성 기업에 프로젝트를 맡겼는데, 텔레픽스가 가장 먼저 솔루션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조 대표는 “금요일에 연락을 받고 반드시 계약을 따내야 한다는 생각에 연구진이 주말 내내 개발에 매달려 사흘 만에 초기 결과를 얻었다”며 “고객사와 꾸준히 소통하면서 피드백을 받은 덕분에 솔루션 개발 한 달 만에 PoC 계약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텔레픽스는 위성 영상을 활용해 산업, 환경,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분석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이번에 텔레픽스가 개발한 솔루션은 위성영상을 이용해 전 세계 야적장에 쌓여 있는 고철의 종류와 무게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다.
텔레픽스는 공간 해상도가 0.3m 수준인 초고해상도 광학위성과 수십m급의 공간해상도를 가진 가시광-적외선(IR)대역 다분광위성, 합성개구레이다(SAR) 위성 등 수백 기의 위성을 이용했다. 전 세계에서 고철이 모이는 주요 야적장 수십 곳을 선정하고, 이 곳을 촬영할 수 있는 위성들을 골라 일정한 관측 주기를 정해 야적장에 쌓이는 고철을 분석했다. 텔레픽스는 앞으로 솔루션을 고도화해 관측지점을 늘리고, 관측 주기도 단축할 계획이다.
이렇게 확보한 위성영상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분석했다. 고철은 종류와 오염도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진다. 텔레픽스는 7종의 주요 고철의 실제 데이터를 AI에 학습해서 위성영상만으로 야적장에 쌓여 있는 고철의 종류와 오염도, 무게까지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텔레픽스는 엔비디아의 DGX H100 시스템을 도입해 위성영상 분석에 쓰고 있는데, 국내 우주 기업 가운데 DGX H100을 도입한 건 텔레픽스가 처음이다.
조 대표는 “텔레픽스에는 천리안 위성을 직접 운영하고 분석 서비스를 제공해 본 경험이 있는 전문인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근무할 때부터 화물선 침몰 사고 등 다양한 실제 상황을 10년 이상 겪으며 노하우를 쌓았다”고 설명했다.
텔레픽스는 오는 5월 원자재 공급망 모니터링을 위한 위성영상 분석 솔루션을 공개하고 본격적인 서비스에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