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blueberry)는 이름처럼 파란색(블루)을 띠는 열매지만, 껍질에 파란색 색소(色素)가 없다. 오히려 짙은 붉은색을 띠는 색소가 있다. 영국 과학자들이 블루베리의 껍질에 있는 지방층이 파란색과 자외선을 산란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로 인해 블루베리는 사람에게는 파란색으로, 새에게는 파란색과 자외선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과일의 왁스층을 검은색 기판에 구현해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에도 성공했다. 과일이 내는 파란색을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블루베리가 파란색을 내는 원리를 모방하면 무독성 화장품이나 자외선 차단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파란색 열매마다 비슷한 나노 구조
영국 브리스톨대 생명과학과의 헤더 휘트니(Heather Whitney) 교수 연구진은 지난 7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블루베리나 포도, 주도 같은 과일들은 껍질에 있는 천연 왁스층 덕분에 짙은 파란색을 띤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블루베리나 포도에는 안토시아닌(anthocyanin)이란 색소가 고농도로 들어있다. 이 색소는 주로 붉은색 빛을 반사한다. 하지만 열매는 파란색을 띤다. 연구진은 포도나 블루베리는 껍질 표면에 하얀 가루처럼 보이는 과분(果粉·bloom) 덕분에 파란색을 낸다고 밝혔다.
과분은 종종 과수원에서 뿌린 농약이 껍질에 남은 것이라고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껍질에 있는 지방 성분의 왁스(wax)가 가루 형태로 된 것이다. 먹어도 건강에 아무 영향이 없다. 왁스는 벌집을 만드는 밀랍에 많은 성분이다. 지금까지는 과분이 물을 밀어내는 지방 성분이라는 점에서 연잎처럼 껍질을 깨끗하게 유지한다고만 생각했다.
브리스톨대 연구진은 블루베리와 포도, 자두, 두송실 같이 파란색을 띠는 다양한 열매의 과분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과분은 두께가 2㎛(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로 얇았다. 미세 구조는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파장이 500㎚(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 이하인 청색광과 자외선 영역의 빛을 잘 반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색소 없이 파란색 구현, 태양전지에도 활용
연구진은 파란색을 띠는 오리건 포도(학명 Mahonia aquifolium) 껍질에서 왁스를 추출해 녹였다. 섭씨 120도 온도에서 1시간 이상 기체 상태의 포도 왁스를 검은색 기판에 입혔다.
왁스가 마르자 포도처럼 파란색이 나타났다. 왁스층의 나노구조가 검은 기판 위에 다시 생겨나 파란색을 반사한 것이다. 기판에 생긴 왁스층도 블루베리 표면에 있는 것과 같은 미세 구조를 보였다.
논문 제1 저자인 럭스 미들턴(Rox Middleton) 박사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착색 메커니즘이 우리 코앞에 있는 과일들에 있었던 것”이라며 “천연 왁스의 모든 가능성을 인공 재료에 구현하는 것은 꿈만 같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파란색 열매의 왁스층을 모방한 코팅은 화장품이나 식품에서 플라스틱 성분의 청색 필름을 대체하는 무독성 착색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블루베리와 포도의 왁스층은 열매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같은 원리로 환경에 해가 없는 자외선 차단제가 될 수 있다. 또 태양전지의 노화를 일으키는 자외선을 차단하는 코팅제로 개발될 수도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자동차 온도 30도 낮추는 나비 날개 필름
과학자들이 자연에서 안전하게 파란색을 내는 방법을 배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공작 깃털이나 나비 날개의 파란색도 블루베리처럼 색소가 아니라 표면의 광결정(光結晶) 구조에서 나온다. 광결정은 파란색 파장의 빛만 반사하고 다른 빛은 그대로 통과시킨다. 이 때문에 나비 날개가 파랗게 보이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나비 날개의 광결정 구조를 다양한 곳에 활용했다.
중국 선전대의 구오 핑 왕(Guo Ping Wang)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23년 국제 학술지 ‘옵티카(Optica)’에 “모포 나비의 표면 구조를 모방한 필름으로 한낮의 자동차 내부 온도를 30도 이상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페인트도 파란색을 반사하지만 동시에 다른 노란색 계열의 빛은 흡수한다. 흡수된 빛은 자동차 온도를 높인다. 모포 나비 날개를 모방한 필름은 기존 페인트처럼 빛을 흡수하지 않고도 원하는 색상을 구현할 수 있다.
영국 엑시터대와 미국 뉴욕주립대, GE연구소는 지난 2015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모포나비의 표면 구조를 똑같이 모방한 가스 센서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모포나비의 날개가 특정 화학물질을 만나면 색이 바뀌는 데 주목했다. 에탄올이 있으면 파란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고, 톨루엔을 만나면 갈색을 띠는 것이다. 기체 분자에 따라 광결정에 결합하는 곳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반사하는 빛의 파장이 바뀌기 때문이다.
자연의 지혜를 모방해 새로운 식용 파란색 색소도 개발됐다. 식용 파란색 색소는 대부분 석유화학 제품이다. 이 색소들은 인체에는 해가 없지만, 환경에는 좋지 않다고 알려졌다. 미국 제과회사인 마스 리글리의 레베카 로빈스 박사는 지난 2021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적양배추의 안토시아닌(anthocyanin) 성분으로 파란색을 내는 식용 색소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안토시아닌은 붉은색을 내지만 산성도에 따라 파란색을 띠기도 한다. 연구진은 적양배추에서 파란색을 잘 내는 안토시아닌인 P2를 찾았다. P2는 전체 안토시아닌에서 5%에 그쳤다. 연구진은 미생물 효소를 이용해 안토시아닌의 절반까지 P2로 바꿨다. 이 색소는 아이스크림과 도넛, 콩과자를 파랗게 물들였으며 30일 이상 색이 유지됐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4),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k4219
Optica(2023), DOI: http://doi.org/10.1364/OPTICA.487561
Science Advances(2021), DOI: https://doi.org/10.1126/sciadv.abe7871
Nature Communications(2015), DOI: https://doi.org/10.1038/ncomms8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