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12월 17일 오전 10시 35분(한국시각 18일 0시35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 호크에서 자전거 가게 주인인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가 프로펠러를 단 플라이어1호를 타고 이륙했다. 지상에선 동생 윌버(Wilbur)가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비행기는 시속 43㎞의 강한 맞바람을 받으며 12초 동안 37m를 비행했다. 속도는 시속 약 11㎞이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사상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한 지 120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라이트 형제의 도전 정신을 이어받아 비행 영역을 지구의 하늘에서 심우주(深宇宙)로 확장했다고 밝혔다. 2021년 화성에서 소형 무인(無人) 헬리콥터인 '인저뉴어티(Ingenuity)'가 비행에 성공했을 때 나사는 "다른 행성에서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과 같은 일이 성공했다"고 했다. 인저뉴어티의 동체에는 플라이어기 일부가 붙어 있었다.

인류 최초의 비행이 있었던 키티 호크 근처에 있는 라이트 형제 국립기념관. 비행기와 당시 비행을 지켜본 인물들의 동상들이 있다./미 국립공원관리청

◇인류 항공 시대 개막한 12초 비행

인간은 고대부터 하늘을 나는 꿈을 꿨다. 하지만 하늘을 날다가 실패하면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는 하늘을 날다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는 바람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땅으로 떨어져 죽었다. 라이트 형제 이전까지 이름 없는 숱한 이카로스들이 비행에 도전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라이트 형제는 자전거 가게 사업에서 얻은 기계적인 경험과 3축 제어라는 획기적인 발명을 결합해 항공기를 조종하고 평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형제는 이날 모두 네 차례 비행을 성공시켰다. 형제가 번갈아 가며 조종하며 59초 동안 260m를 비행하는 최장 비행 기록도 세웠다. 비행 고도는 3m가 최고 기록이었다.

1903년 12월 17일 인류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 왼쪽이 동생 윌버이고 오른쪽에 형인 오빌이다./Carillon Historical Park

네 번째 비행이 끝날 무렵 돌풍에 기체가 뒤집혀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을 입었다. 오빌은 잔해를 오하오이주 테이턴의 집으로 가져가 복원했다. 이 비행기는 영국 런던 과학박물관에 전시됐다가 1948년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으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현재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NASM)에 있다.

라이트 형제는 항공기를 점점 발전시켜 1905년에는 플라이어 3호로 39㎞ 비행에 성공했다. 이후 인류는 항공 시대에 진입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에서 처음으로 항공기가 전쟁에 사용됐다. 1914년 1월 1일 미국 플로리다주의 세인트피터즈버그와 탬파를 오가는 최초의 정기 여객기 운항이 시작되면서 두 도시 간 이동 시간이 90분 이상 단축됐다.

1971년 달에 내린 아폴로 14호의 키티 호크 착륙선.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에 성공한 지역의 이름을 붙였다./NASA

◇비행기 일부가 우주 탐사에 참여

이제 인류는 우주로 눈을 돌렸다. 1958년 우주 탐사를 지휘할 NASA가 설립됐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NASA에 10년 안에 달에 인간을 보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마침내 1969년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이 달에 인류 최초로 발자국을 남겼다. 1971년 아폴로 14호 우주비행사들은 라이트 형제를 기려 달착륙선을 '키티 호크'로 이름 붙였다. 바로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기가 처음 이륙한 곳이다.

플라이어기도 일부나마 인류의 우주 탐사에 동참했다.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들은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기 왼쪽 프로펠러에서 나온 나무 조각과 왼쪽 날개 상단에서 나온 천 조각을 갖고 달에 갔다. 이 나무와 천 조각은 스미스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에서 전시돼 있다. 우주탐사의 실패도 같이했다. 1986년 1월 28일 미국의 챌린저 우주왕복선이 발사 73초 만에 폭발해 7명의 대원이 희생됐다. 당시 우주왕복선에 플라이어기의 나무와 천 조각이 실렸는데 다행히 나중에 바다에 추락한 잔해에서 수습됐다.

화성으로 간 무인 헬기의 태양전지판 아래 케이블에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기에서 가져온 천조각이 들어갔다./NASA

플라이어기는 심우주 탐사까지 따라갔다. 나사의 무인 헬리콥터인 인저뉴어티는 지난 2021년 4월 19일 12시 30분 화성에서 첫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한낮에 태양전지판을 완전히 충전한 인저뉴어티는 날개 두 개를 초고속 회전시켜 3m 높이까지 상승했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인저뉴어티의 태양전지판 아래쪽에 우표 크기만 한 플라이어의 천조각이 붙어 있었다.

인저뉴어티는 무게 1.8㎏, 높이 49㎝에 길이 1.2m의 회전 날개 두 개를 장착하고 있다. 2021년 2월 18일 나사의 화성 탐사 로봇인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의 배 밑에 붙어 화성에 도착했다.

라이트 형제가 단 12초의 첫 동력 비행으로 인류 역사를 바꾼 것처럼, 인저튜어티도 단 39초 비행을 통해 지구가 아닌 곳에서도 인류가 만든 동력 비행체가 하늘을 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달과 화성 같은 지구 밖 천체를 지상뿐 아니라 공중에서 탐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20년 전 키티 호크의 거센 바람을 이겨낸 라이트 형제의 도전정신이 심우주로 이어지고 있다.

화성 탐사 헬기인 인저뉴어티가 2021년 4월 19일 첫 비행 이후 2년 만인 2023년 4월 13일 50회 비행기록을 세웠다. 그동안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모은 영상이다./NASA/JPL-Caltech/ASU/MS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