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0일 러시아 시베리아 타이미르반도 789㎞ 상공에서 미국의 상업용 인공위성 ‘이리듐33′과 러시아의 퇴역 군사위성 ‘코스모스2251′이 정면 충돌했다. 지구 저궤도에서 위성끼리 정면으로 부딪히는 우주교통 사고가 난 것은 처음이다. 충돌 당시 두 위성은 초속 11.7㎞로 날고 있었다. 퇴역한 코스모스2251과 운용 중이던 이리듐33 모두 완전히 파괴됐다. 위성 충돌이 발생한 10일 이후 지구 궤도에는 10㎝가 넘는 우주 쓰레기가 1000개 이상 생겼다.
지구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지구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인공위성은 7178기로, 위성이나 로켓에서 떨어져 나온 잔해물까지 합치면 1만6000개가 넘는다. 이제는 위성과 잔해물의 움직임을 모두 파악하고 위성을 운용해야 하는 이른바 ‘우주 교통’의 시대가 도래했다.
복잡한 지구 궤도를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나타난 구세주는 다름 아닌 수학이다.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인 김덕수 스페이스맵 대표는 계산이론을 연구하던 공학자에서 최첨단 기술을 다루는 우주산업의 기업가로 변신했다. 스페이스맵은 위성의 충돌위험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우주 상황인식 소프트웨어의 엔진을 우주 기업에 제공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수많은 통신위성과 군집위성 발사가 예정된 현시점에서 국내외 우주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 기술이다.
김 대표는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시절부터 ‘보로노이 다이어그램(Voronoi Diagram)’밖에 모르던 연구자다.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이란 평면 위에 찍은 두 개의 점 사이에 수직이등분선을 그어 여러 개의 점 사이 수직이등분선을 연결한 그림이다. 수직이등분선을 모두 연결하면 각 점들의 영역이 생기게 되는데 각 점의 바로 옆 영역의 이웃 사이의 거리를 계산하면 주변을 탐색하기 쉽다.
스페이스맵은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을 컴퓨팅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움직이는 위성의 주변을 실시간으로 탐색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스페이스맵은 ‘다이내믹(Dynamic)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으로 불리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애스트로 1′ ‘애스트로 오르카’ ‘애스트로 라이브러리’라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 기술이 우주 질서의 수호자이자 우주의 신호등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캠퍼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이 위성의 충돌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건가.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은 주변 위성들의 거리를 계산한다고 했을 때 바로 옆 이웃들과의 거리만 계산한다. 이웃만 고려하기 때문에 계산할 양이 적고 위험요소를 빨리 찾아낼 수 있다. 특히 3차원으로 확장하면 정보량이 많아지는데, 선택적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입력되는 데이터가 많더라도 계산이 줄어든다.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을 이용하면 실시간으로 계산할 수 있다. 기존 기술로는 꿈도 못 꾸는 일이다.”
–기존 계산 방식과 비교해 얼마나 빠른 건가.
“기존 알고리즘은 1984년에 나온 알고리즘인데, 한 개 위성의 공간과 시간을 쪼개가면서 계산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물론 위성 주변 물체 하나만 가지고 계산했을 때 위험 상황을 분석하는 데 0.3초 소요된다. 좋은 속도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물체에 대한 위험도를 분석하면서 발생한다. 만약 위성 주변 물체 2만 개에 대해 계산한다고 치면 6000초가 걸린다.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셈이다. 반면 보로노이를 사용하면 실시간으로 위험도를 분석할 수 있다.
메모리도 문제다. 모든 물체를 계산하려다 보니 필요한 메모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앞으로 발사될 위성이 많아질 걸 고려하면 비효율적이다. 답을 빨리 찾을 수도 없다. 이대로 가면 앞으로 우주에서의 위험을 분석하는데 메모리가 지금의 50배 이상으로 필요해질 거다. 결국, 알고리즘이 시간과 메모리에 갇혀 버리게 된다.”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미국 미시간대 산업공학과에서 유학하면서 당시 지도 교수가 첫 번째 연구실 세미나에서 논문을 고르라면서 논문 목록을 쭉 줬다. 그때 골랐는데, 당시에는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이 뭔지도 몰랐다. 그런데 연구해보니 정말 재밌고 아름다웠다. 한국으로 돌아와 2003년 ‘창의연구’와 2017년 ‘리더연구’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으며 연구를 이어왔다.”
김 대표가 창업의 길을 걷게 된 건 2015년쯤이다. 당시 미국 공군과학연구실(AFOSR) 아시아지부의 책임자이자 현재 스페이스맵의 상임고문인 마미순 소장과 인연이 닿았다. 당시 마 소장은 미 공군의 아시아 지역 과학기술 투자를 담당하고 있었다. 위성 간 충돌의 해결책을 찾고 있던 미 공군은 김 대표의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기술에 관심을 보였고, 이듬해부터 연구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미 공군은 내친김에 창업도 권유했다. 김 대표는 2021년 회사를 설립하고, 올해 정부와 민간이 3년간 최대 17억원을 투자하는 ‘딥테크-팁스’에 선정됐다.
스페이스맵은 다양한 방식의 플랫폼으로 우주 기업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다음 달 4일부터 미국 휴스턴에서 열리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제2차 국제궤도잔해물회의(IOC Ⅱ)’에 참가해 개발한 소프트웨어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각 기업이 자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아스트로 라이브러리’ 소프트웨어와 ‘아스트로 1′ 같은 저가형 서비스를 강조할 계획이다.
–NASA가 개최하는 국제궤도잔해물회의에 참석한다.
“4년 만에 열리는 회의다. 그동안 스타링크나 원웹 등 많은 통신위성이 궤도에 올랐고, 우주 쓰레기 문제가 대두됐다. 이번 회의를 위해 누리호 3차 발사 때 올라간 차세대소형위성 2호와 2013년에 발사된 아리랑 5호의 스타링크 위성 관련 위험도 분석을 했다. 자세히 보면 차세대소형위성 2호는 스타링크와 거리가 1~2㎞ 정도로 위험한 횟수가 많고, 아리랑 5호는 스타링크와의 거리가 대부분 7㎞ 이상으로 위험도가 낮다. 스타링크가 2019년부터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이 분석 결과는 스타링크는 자신들이 올라간 이후에 궤도에 올라오는 위성은 신경을 덜 쓰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스페이스맵이 개발한 도구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강조할 예정이다.”
–해외 우주 기업들과 소프트웨어 수출에 대한 논의는 진행 중인가.
“이미 몇몇 기업들과는 논의가 진척되고 있다. 저렴하게 제공하는 플랫폼과 각 기업이 파이선이나 C++로 최적화할 수 있는 엔진을 라이센싱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결국, 국내외 우주 기업들이 스페이스맵의 소프트웨어를 쓰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 우주 시장의 판을 흔드는 게 목표다.”
–우주는 주목받는 산업이지만,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도 많다. 앞으로의 전략은 무엇인가.
“우주기술 분야는 전 세계적으로 계속 투자가 일어날 산업이다. 지금까지는 생산성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지만, 스페이스맵은 생산성 있는 기술을 필두로 리더십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우주는 데이터 산업이 차지하는 부분이 굉장히 크다. 스페이스맵은 우주 상황인식 분야에선 이미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짧은 시간에 경쟁력을 바탕으로 돈을 벌 수 있다.”
–기초연구가 우주 분야에서 응용 기술로 나온 사례다.
“기초연구가 중요하다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학교수의 기초연구를 오랫동안 믿고 기다려준 국가에 감사하다. 결과물로 수학 이론이 응용문제를 만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기초연구가 이런 모델로 갈 수 있다는 하나의 모범사례가 되고 싶은 게 내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