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손으로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사람의 인대와 힘줄을 구현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이 로봇손은 여러 부품을 이어 붙이지 않고, 3차원(D) 프린팅 기술로 한 번에 만들어 주목받고 있다. 3D 프린팅으로 로봇손뿐 아니라 6개의 다리가 달린 로봇, 펌프질이 가능한 심장까지 다양한 구조물 제작이 가능하다.
로버트 카츠슈만(Robert Katzschmann)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소프트로봇공학연구소 교수와 보이치에흐 마투시크(Wojciech Matusik)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과학부 교수 연구팀은 섬세한 로봇을 만들 수 있는 고해상도 적층 3D 프린팅에 대한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지난 15일 발표했다.
동물과 식물 같은 자연 유기체의 복잡한 구조와 기능을 재현하는 것은 로봇 공학의 오랜 목표다. 전통적으로 로봇은 금속이나 단단한 복합 재료로 만든 부품을 조립하고 교정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조립 방식으로 만들어진 로봇은 부품 수를 많이 늘리더라도 금속 재료의 한계 때문에 뻣뻣할 수밖에 없다.
연구팀은 기존 잉크젯과 유사한 원리로 작동하는 '비전 제어 분사' 방법을 제안했다. 3D 프린팅은 '티올엔(Thiol-ene)'이라는 탄성 폴리머 재질의 재료를 사용한다. 이 재료는 상업용 3D 프린터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고무 같은 재료인 아크릴레이트보다 탄성이나 내구성이 훨씬 높다. 여기에 왁스 재료를 동시에 분사한다. 폴리머는 자외선으로 새로운 화합물로 중합되고, 왁스는 냉각하면 굳어진다. 재료 당 4개의 프린트 분사 헤드를 갖는데, 헤드는 1024개의 노즐로 구성됐다. 총 4096개의 노즐이 작동하는 셈이다.
사실 3D 프린팅으로 로봇손을 만드는 것이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MIT 연구진은 '잉크비트(Inkbit)'라는 3D 프린팅 업체를 창업하고 한 번에 가로·세로 2㎝ 영역의 이미지를 캡처해 구조물을 만드는 방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미지를 분석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마저도 섬세한 로봇손을 만들기엔 해상도가 낮았다.
새로 개발된 비전 제어 분사는 가로 64㎛(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세로 32㎛, 높이 8㎛로 매우 정확한 이미지 분석이 가능하고, 인쇄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인쇄 속도가 느려지면 굳어지는 속도에 변해 3D 프린팅 재료가 번지거나 찌그러질 수 있다. 이 기술은 기존 방식보다 660배 빠른 속도로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
연구팀은 사람 손을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해 로봇손을 만들었다. 특히 뼈와 손가락을 움직이는 힘줄을 구현하고 손가락에 튜브를 3D 프린팅으로 만들었다. 튜브 끝에는 압력 센서가 있는데, 손가락 끝에 물체가 닿으면 구멍이 압축돼 튜브 내 압력이 상승한다. 또 손가락이 특정 압력에 도달하면 손가락이 말리는 것을 멈춘다. 로봇손을 사용해 펜이나 물병 등 다양한 물체를 각 손가락 끝부분으로 잡을 수 있다.
로봇손뿐 아니라 6개의 다리로 앞뒤로 걸으며 물체를 집을 수 있는 보행 로봇과 내부 압력 센서를 장착한 인공 심장도 3D 프린팅으로 만들었다. 보행 로봇은 1초당 1㎝씩 나아가 최대 35㎪의 힘으로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다. 새로 만든 인공심장은 1분에 2.3L의 액체를 분출한다.
연구팀은 센서와 몇몇 제어부품을 제외하면 모두 단 한 번의 3D 프린팅으로 만들어진 점이 주목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카츠슈만 교수는 "이번 작업에서 참신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실제로 한 번에 구조나 로봇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라며 "추가 부품을 달아야 할 수도 있지만, 복잡한 로봇의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거의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Nature,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66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