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반도체보다 효율과 성능이 뛰어난 자성 반도체의 상용화가 10년 이내에 가능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나왔다. 자성 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기초적인 문제는 해결됐고, 이를 공학적으로 개선하는 일만 남았다는 진단이다.
이영희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 연구단장은 13일 "스핀트로닉스의 상용화에 필요충분 조건으로 여겨지던 자성체의 작동 온도를 높이고 스핀의 정렬을 조절할 수 있는 물질이 개발되고 있다"며 "이제는 어떻게 이 물질을 대면적 웨이퍼로 만들지에 대한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 단장은 지난달 20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의 '전문가의 목소리' 코너에서 이 같은 내용의 논평을 내고 스핀트로닉스의 상용화를 위한 전 세계 과학자, 공학자의 관심을 촉구했다.
스핀트로닉스는 전자를 이용하는 반도체 기술과 달리 '스핀(전자의 회전)'을 이용해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이다. 전자기기의 크기가 점차 작아지고 소자의 집적도는 증가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소비전력과 발열의 증가를 해결할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스핀트로닉스를 활용하면 전자기기의 에너지 효율을 크게 끌어 올릴 수 있다.
스핀트로닉스를 상용화하려면 최적화된 자성체를 우선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자성체가 전자기기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하드디스크를 꼽을 수 있다. 하드디스크는 자석의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저항 변화로 데이터를 저장한다. 반면 스핀트로닉스는 자성체 내부의 스핀 정렬 변화로 저항을 조절해야 하는 만큼 특별한 자성체가 필요하다.
스핀트로닉스에 쓰이는 자성체는 상온에서 스핀 정렬을 유지해야 하고, 전압에 따라 정렬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반도체로 사용하려면 넓은 면적으로 만들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맞추기 위해 기존 반도체에 자성 물질을 소량 넣는 연구가 이뤄졌으나, 일부 조건만 만족했을 뿐 아직 모든 조건에 충족하는 소재는 개발되지 않고 있다. 사이언스가 창간 125년을 맞아 2005년 발행한 특별호에서 지적한 '과학 분야 125가지 미해결 질문'에서도 스핀트로닉스가 선정됐으나 여전히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단장은 "최근 2차원(2D) 반데르발스층 자성 물질을 사용해 주목할만한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다"며 "특히 칼코제나이드 반도체의 활용이 과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칼코제나이드는 주기율표의 16족 원소와 양이온이 결합된 화합물로, 독특한 물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 단장이 이끄는 연구진도 2020년 칼코제나이드인 텅스텐이셀레늄화합물에 바나듐 원자를 주입해 상온에서 외부 자기장 없이도 자성을 띠는 반도체 소재를 개발했다. 지난 8월에는 이 물질을 이용해 전압에 따라 스핀 방향을 바꾸는 소자로 구현하는 데도 성공했다.
스핀트로닉스 상용화를 위해 필수적인 자성 반도체의 작동 온도, 스핀의 정렬을 조절할 수 있게 된 만큼 이후 과정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 이 단장의 진단이다.
이 단장은 "현재 개발된 물질을 단일 결정으로 웨이퍼 크기로 만드는 것이 마지막 남은 과제"라며 "이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연구 성과들도 최근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분석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 공학자가 스핀트로닉스의 상용화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Science,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l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