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미니장기’인 오가노이드를 살아있는 상태로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오가노이드 내 세포는 물론 세포 내 염색체가 분열하는 과정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해상도가 높아 약물이나 진단법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이다.
박용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 교수 겸 토모큐브 최고경영자(CEO) 연구진은 구본경 기초과학연구원(IBS) 단장 연구진, 토모큐브 바이오연구팀과 3차원 구조체인 오가노이드(organoid)를 이미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달 16일 생명과학 분야의 온라인 논문사전공개 사이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공개했다.
오가노이드는 인간의 장기와 유사한 장기유사체 또는 미니 장기를 의미한다. 약물 개발부터 발달생물학, 진단 시스템 개발을 위해 중요하게 연구되고 있지만, 3차원 구조라 내부 구조 측정과 분석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동안은 오가노이드를 5㎛(마이크로미터) 정도의 두께로 얇게 잘라 염색 등 전처리 과정을 거쳐 2차원 이미지를 얻고, 이를 합쳐 3차원 정보를 만드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기존 방식은 시료 전처리 과정에서 단백질이나 유전자가 변형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진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3차원 세포 이미징 전문 스타트업 ‘토모큐브’의 2세대 홀로토모그래피 기술을 사용해 살아있는 오가노이드를 관찰하는 방법을 연구했고 이에 성공한 것이다.
연구진이 이름 붙인 ‘홀로토모그래피(HT)’는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인체를 보듯 세포의 구조를 층층이 볼 수 있는 현미경이다. 레이저와 같은 빛이 어떤 물질을 통과하면 속도가 느려지는 데, 이 정도를 나타내는 ‘굴절률’을 측정해 2차원의 홀로그램을 얻는 방식이다. CT에서는 엑스레이가 회전하며 이미지를 얻는 것처럼, 홀로토모그래피에서는 레이저가 오가노이드 주변을 회전하며 다양한 2차원 이미지를 얻고, 이를 합쳐 3차원 정보를 만든다.
홀로토모그래피 기술은 염색과 같은 별도의 화학물질 처리가 필요 없다. 따라서 소포체나 미토콘드리아, 세포막 등의 기관은 물론 살아있는 세포 분열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토모큐브는 홀로토모그래피 현미경 안에 오가노이드를 키울 수 있는 인큐베이터를 장치해 일주일 넘게 하나의 오가노이드를 관찰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이를 이용해 살아있는 오가노이드가 자라는 모습을 관찰하며 부피를 측정하고 특정 성분의 농도도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홀로토모그래피 기술에서 물질에 빛을 쪼아 측정하는 굴절률은 물질의 농도에 비례한다. 따라서 역으로 굴절률을 측정하면 물질의 농도를 결정할 수 있다. 이 방법으로 간 오가노이드에 있는 지질 덩어리들의 크기를 측정하고, 지질 성분의 농도도 측정했다.
이 기술로 최대 150㎛ 두께의 오가노이드를 3차원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오가노이드를 5㎛로 잘라 분석하는 것과 비교하면 30배 두께까지 전처리 없이 관찰이 가능한 셈이다. 연구진은 “홀로토모그래피 기술을 이용해 체외 수정에 쓰일 수정란도 골라낼 수 있다”며 “세포가 약물에 반응하는 모습을 직접 관찰해 약물 개발 과정에서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대전에 위치한 토모큐브 본사에서 본 홀로토모그래피 작동 방식은 매우 간단했다. 이날은 30㎛ 두께의 간 오가노이드를 관찰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오가노이드 시료가 담긴 페트리디쉬를 현미경에 넣고, 버튼 하나를 누르자 3차원 이미지 측정이 끝났다. 이미지를 띄워 마우스 휠을 돌리면 오가노이드의 높이에 따른 구조도 볼 수 있었다. 얻은 이미지에서는 오가노이드 내의 빈 곳은 물론 5㎛ 크기의 세포 하나하나도 구별할 수 있었다.
박용근 교수는 “세포로 치료하는 산업이 성장하며 사람 몸에 들어가는 세포를 전처리 없이 관찰하는 기술이 필요해질 거라 예상했다”며 “관련 인프라를 깔기 위해 연구와 상업화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은 기존 현미경보다 해상도와 속도가 높고 세포 상태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어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스위스 연방공대 등은 물론 국내 기업과 연구소, 대학에서 쓰이고 있다.
박 교수는 홀로토모그래피 기술을 개선해 나가며 인공지능(AI)을 접목할 계획이다. 오가노이드는 최대 1㎜까지 자라는 만큼 관찰할 수 있는 두께를 점점 늘려나갈 예정이다. 또 홀로토모그래피 이미지를 AI에 학습시켜 소기관을 구분해 시각화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 밝혔다. 일일이 이미지를 볼 필요 없이 세포 내 구조를 자동으로 파악하고, 세포 종류를 구분해 진단에 쓸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박 교수는 “기술이 좋더라도 무엇보다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만족해야 한다”며 “편리하게 기술을 이용해 중요한 생물학적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사용자 친화적인 기술을 만들기 위해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참고 자료
BioRxiv(2023), DOI: https://doi.org/10.1101/2023.09.16.558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