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프트가 조종하는 드론(파란색)이 인간 챔피언인 알렉스 배노버의 드론(빨간색)과 레이싱을 펼치고 있다. 스위프트는 25번의 경주에서 15번 승리했다. /레너드 바우어스펠드

출발 신호가 울리자 파란색의 드론이 먼저 하늘로 솟구쳤다. 빨간색의 드론이 한 발 뒤늦게 출발했지만 순간적인 격차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파란색의 드론은 재빠르게 저공 비행을 하며 첫 번째 게이트를 통과했고 복잡하게 놓여 있는 게이트를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한 번 뒤처진 빨간색 드론은 한 번도 파란색 드론을 추월하지 못했다.

파란색 드론을 조종한 건 드론 레이싱 세계 챔피언이었다. 2019년 드론 레이싱리그 세계 챔피언인 알렉스 배노버와 2019년 멀티GP 우승자인 토머스 비트마타, 스위스의 드론 레이싱 챔피언인 마빈 샤퍼가 인간을 대표로 출전했다. 빨간색 드론을 조종한 건 드론 레이싱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AI) ‘스위프트(Swift)’였다. 모두 25번의 경주에서 스위프트는 15번을 이기며 승률 60%를 기록했다.

바둑과 스타크래프트, 도타, 그란 투리스모 같은 게임에서 이미 인간을 넘어섰던 AI가 드론 레이싱마저 인간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스위프트를 만든 연구자들은 시뮬레이션 환경이 아닌 실제 물리적인 시합에서 AI가 인간을 이긴 것은 AI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자평했다.

스위프트는 스위스 취리히 대학의 레오나르드 바우어스펠드(Leonard Bauersfeld) 박사 연구팀이 만들었다. 스위프트는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게이트의 위치를 파악하고 초당 400회라는 빠른 업데이트 속도를 통해 드론의 위치를 정밀하게 제어했다. 바우어스펠드 박사는 “밀리미터 단위의 정밀도와 빠른 업데이트를 통해 드론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 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와 인간 챔피언의 드론 레이싱 경주 영상]

드론 레이싱이 펼쳐진 경기장은 가로와 세로가 각각 30m에 높이가 9m밖에 되지 않지만, 드론이 움직여야 하는 거리가 75m나 된다. 그만큼 복잡한 코스에서 드론은 최대 시속 100㎞의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 정밀한 주행 능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스위프트는 25번의 레이스에서 15번을 이겼는데, 최고 기록에서도 인간 챔피언을 앞섰다. 인간 챔피언 중에 가장 빠른 속도를 기록한 건 배노버의 17.956초였다. 스위프트의 최고 기록은 17.465초로 배노버보다 0.5초 정도 빨랐다. 평균 기록도 스위프트는 16.98초로 배노버(17.38초)나 비트마타(17.98초), 샤퍼(21.65초)를 앞섰다.

연구팀은 이 기술이 군사용은 물론 드론 배송의 속도와 정확도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드론 배송은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2013년 처음 언급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충분한 기술적인 완성도를 갖추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기술의 완성도만 높인다면 성장 가능성은 얼마든지 충분한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데이터는 상업용 드론 시장이 연평균 34.5% 성장해 2028년에는 1670억달러(약 220조원) 규모로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에서도 최근 이마트24가 드론 배송 시범 운영을 시작하는 등 한국에서도 드론 배송 시대가 열리고 있다.

스위프트의 연구 성과를 지켜본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하위도 데 크룬 교수는 “드론이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으면 배터리를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며 “배터리를 아끼면서 실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 결과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참고자료

nature, DOI :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3-06419-4